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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23)] 바울 선교의 거점 수리아 안디옥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전초기지로 활용
등록날짜 [ 2015년12월15일 22시03분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안디옥은 알렉산드리아, 로마와 더불어 로마 시대 3대 도시였습니다. 이방인이 예수를 처음 믿었던 현장, 안디옥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바울 1차 전도여행 이동 경로.



터키 남동부 수리아 지역의 오론테스 강가에 있는 수리아 안디옥. 현재는 ‘안티오키아’라고 부른다. 바울 시대 당시 이곳은 로마 3대 도시로 경제·예술의 중심지였고, 사도 바울의 이방 전도 전초기지였다. 지중해성 기후로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해 품질 좋은 과실이 풍성하고,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사도 바울도 이 풍성한 과일들을 먹으면서 당시 전도 과정에서 쌓인 피로를 풀었으리라. 이곳 안디옥에서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담당한 예수의 사도로서 사역을 시작했다.

 

 

윤석전 목사: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00km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합니다. 바울의 전도여행 출발지인 안디옥은 어떤 지역적 특징이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은 사도행전 13장과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출발→실루기아→구브로(살라미→바보)→밤빌리아 버가→소아시아 내륙 지방 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밤빌리아 버가→앗달리아→수리아 안디옥.

 

이처럼 안디옥은 바울 전도여행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였습니다. 세 차례 전도여행을 모두 안디옥에서 출발했습니다.

 

안디옥은 과일과 곡식이 풍부한 비옥한 평야 지대였는데 그 이유는 안디옥을 중심으로 오론테스 강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오론테스 강은 특이하게도 안티레바논 산맥 사이를 북쪽으로 흘러 터키령에서 서쪽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대부분 강이 남쪽으로 흐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안디옥은 교통 중심지여서 이곳을 거쳐 서쪽으로는 지중해, 서북쪽으로는 소아시아 지역으로 뻗어 나갔고 동쪽으로는 동방으로 향하는 실크로드와 연결됐습니다. 이처럼 안디옥은 세계 전도 중심지로 적합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안디옥(안티오키아).


 

윤석전 목사: 바울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서 전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무슨 이유로 안디옥으로 갔는지 궁금합니다.

 

조광호 교수(서울 장신대 신약학): 다메섹 체험 이후 바울의 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왔고 3년 후에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다. 그 후 바울은 고향 다소를 포함한 길리기아와 시리아 지역에 가서 전도활동을 하면서 지냅니다.

 

그 즈음, 안디옥에는 많은 크리스천이 생겨납니다. 헤롯 안디바의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흩어졌던 기독교인들이 안디옥에 교회를 세웠고 바나바는 그곳 안디옥교회 초대 목회자로 파송받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당시, 바울을 예루살렘 지도자에게 소개해 주었던 인연으로 그와 친분을 맺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 목회자가 되자 다소에 있던 바울을 불러 동역을 요청했고, 바울이 이를 받아들여 안디옥으로 왔습니다. 당시 안디옥에는 많은 유대인과 회당이 있었고 인구 80만 명 정도 사는 큰 도시였기에 바울이 전도하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안디옥에는 어떤 기독교 유적이 있습니까?

 

홍순화 원장: 안디옥이 유명한 이유는 ‘안디옥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3세기경까지는 교회를 짓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당시 성도들이 어디서 모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베드로동굴교회’라고 부르는 곳에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모이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베드로동굴교회’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한 이후, 베드로가 그곳에 와서 말씀을 가르쳤다는 전승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잡으려는 자들이 들이닥치면 그 동굴을 통해 뒷산으로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동굴교회’는 입구 벽돌과 외벽이 있어 건물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십자군들이 와서 쌓은 것입니다.

 

 

베드로동굴교회(안티오키아 동쪽 실피우스 산에 위치).



안티오키아는 당시 외항 셀레오키아를 거쳐 지중해 각지와 연결되고, 또 동쪽으로 이어지는 대상로(隊商路)가 있어 당시 통상 무역의 요지였다. 안티오키아 동쪽 외곽에 있는 실피우스 산 중턱에 베드로동굴교회가 있다.

 

주후 47~54년 사이, 바나바와 바울 사역 당시 지은 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베드로도 이 동굴교회에 머무르며 예배와 설교를 했다.

 

동굴교회는 당시 4km 되는 굴을 뚫어 비밀 통로로 사용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배 중에 들이닥칠 박해자들을 대비했던 비상구였다고 한다. 이 어둡고 비좁은 공간에서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올렸고,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구원을 선포했으리라. 이 속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수의 참제자들이 탄생했다.

 

이러한 위대한 사도들의 가르침이 함께했기에,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영광을 안았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유대인과 이방인을 상대로 전도했고, 그 결과 바울이 일생 동안 걸어가야 할 세계 전도의 전초기지가 굳건히 세워졌다.

 

교회 내부 모습.


 

윤석전 목사: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베드로 사이에 큰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조광호 교수: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이방 크리스천과 식사합니다. 그때 유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자 베드로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인에게는 매우 부정한 일로 치부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보고 베드로에게 외식(外飾)했다면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여기서 베드로를 파송한 예루살렘교회와 바울이 사역한 안디옥교회의 견해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루살렘은 유대 본토에 있었으니 주로 유대인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교회의 기본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율법도 중요시했습니다. 즉 율법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견해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구원론 속에서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뜻이지요?

 

조광호 교수: 네, 그렇습니다. 한편, 안디옥교회에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 색채를 사람들에게 나타냈습니다. 즉 ‘율법에서 자유로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바울이 사역했기에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교회의 견해가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친(親)율법적인 태도’를 지녔고, 안디옥교회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태도’를 취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의 견해 차이 때문에 일어날 분란을 염려해 베드로가 자리를 피했던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안디옥 성도들의 믿음은 특출했기에 그들에게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오늘날에도 예수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참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는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풍속을 보면 어떤 조직의 명칭을 정할 때 그 무리 대표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당시에는 지명을 따라 나사렛에 살면 나사렛인, 갈릴리에 살면 갈릴리인이라고 말했지만 안디옥 교인만은 ‘안디옥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2세기경에 ‘그리스도인’을 기독교 공식 명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기독교는 유대교와 완전히 구분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안디옥교회는 바울의 사역에서 깊은 의미가 있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조광호 교수: 갈라디아서 2장 11절을 보면 바울은 베드로에게 외식했다고 비판했고, 바나바와 다른 이들도 베드로와 함께 외식했다고 꾸짖었습니다. 결국 바울이 가르쳐 준 복음을 버리고 유대주의적인 성향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그 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떠났고, 그 어디에서도 안디옥이라는 지명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안디옥을 지나쳐 가기는 했지만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만 나옵니다. 그 후 바울은 안디옥교회를 떠나 유대교 성향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소아시아나 유럽으로 전도를 떠납니다. 그런 점을 보면, 안디옥 사건은 바울에게 아픈 체험이기도 하지만, 전화위복이 되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과 바나바의 친분은 어느 정도로 깊었는지요?

 

조광호 교수: 바울이 다메섹 체험 후 3년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있던 사도들이 긴장합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복음을 박해하던 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변해서 나타났으니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바울의 본심이 무엇인지 몰라 두려움에 빠졌던 것이지요. 이때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에게 소개합니다(행9:26~27). 바나바와 바울은 둘 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기에 서로 잘 이해한 듯합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에게 소개해서 예루살렘교회는 바울을 받아들입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틉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해서 예수의 도를 좇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려고 다메섹에 갔을 때 홀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목소리에 무릎을 꿇었고,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가 풀렸습니다.

 

예수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의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해 예수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어찌하랴.’ 그는 불타는 구령의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안디옥을 거점으로 세계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그때는 비행기도 없고 자동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바다의 광풍까지 뛰어넘어 단 한 가지 생각,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일념으로 자신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알았다면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수를 줄이고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도 바울의 위대한 복음 전도 현장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큰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에 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463호(2015-12-12)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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