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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28)] 고난 중에 세워진 데살로니가교회
로마가 깔아 놓은 도로 따라 유럽에 복음 전해
등록날짜 [ 2016년01월20일 15시38분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고자 열정을 쏟았던 곳, 복음의 격전지 ‘데살로니가’로 가 보려 합니다. 먼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기 전에 들렀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암비볼리 옛 교회 유적지.

‘아볼로니아(Apollonia)’는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거쳐 간 도시 중 하나다. 이곳은 바울의 다음 기착지 데살로니가에서 61km 떨어진 교통의 요지였다. 작은 마을인 아볼로니아에는 바울이 설교했다는 바위가 아직 남아 있다. 그 위에 있는 기념 동판에는 사도행전 17장 1절이 새겨져 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행17:1).

지금은 비록 지도에서도 찾기 어려운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바울 당시 아볼로니아는 로마제국의 주요 군사·상업 도시였다. 사도 바울의 설교 현장은 20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가치를 발한다. 바울기념교회는 바울이 이 도시에 들렀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아볼로니아 주민이 사도 바울의 한시적 방문에 어떠한 비중을 두었는지 짐작케 한다.

윤석전 목사: 암비볼리는 어떤 곳이었나요?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암비볼리(Amphipolis)’는 마게도냐 지방에서 둘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곳에 들른 것은 로마의 고속도로 ‘에그나티아(Via Egnatia)’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스티리몬(Sterimon) 강을 끼고 있었고, 목재와 금광이 풍부해 아주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지리적으로 는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6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당시 빌립보에서 암비볼리까지 가는 데 2~3일 정도 걸렸으리라 추정합니다. 지금도 스티리몬 강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대 도시 암비볼리의 유적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로 원정갈 때 이곳에서 출발해 유명해진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에서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아볼로니아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 사도 바울은 에그나티아 도로를 따라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암비볼리에서 서쪽으로 40km 거리에 아볼로니아가 있습니다. 걸어가면 하루 이틀 정도 걸립니다. 아볼로니아는 인구 500명 정도인 아주 조그만한 마을입니다. 사도 바울이 거쳐 갔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사실 이스라엘은 물이 적고, 쉴 만한 그늘도 없습니다. 지형상 걸어서 오가기에 힘든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곳이기에 세계적으로 주목하고 역사 속에 유명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역사 속에 아름답게 남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주로 해로(海路)나 큰 도로를 따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발달된 도로는 사도 바울 사역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심상법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에그나티아’와 ‘아우그스타’라는 두 도로는 로마제국이 군사 대국으로 성장해 세계를 정복하는 데뿐만 아니라 로마 문화를 보급·확대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이 도로들은 폭 6m 정도였는데, 도로뿐 아니라 보도도 따로 있었습니다. 로마의 도로들은 바울의 전도 활동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안전하고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전도 활동은 이런 발달한 도로를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로 가는 바울에게도 이런 도로들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로마서 15장 1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이처럼 복음 전파에 로마제국에서 건설한 도로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에 사도 바울이 지나갔다는 흔적을 말해 주는 유적이 있습니까?

홍순화 원장: 암비볼리는 매우 큰 도시였지만, 현재 안타깝게도 사도 바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적은 없습니다. 그 대신 스티리몬 강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크로폴리스 유적에 교회 4곳의 흔적이 있고, 그 지역을 연구해 놓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굳이 사도 바울과 관련 있는 유적을 꼽으라면, 길에 놓인 ‘사자상’을 들 수 있습니다. 주전 4세기경에 만든 사자상인데, 사도 바울도 빌립보 감옥에서 석방된 후에 데살로니가로 가던 길에 보았을 것입니다(행17:1). 또 아볼로니아에 가면 사도 바울이 설교했다는 강단 자리가 있습니다. 조그만 대리석판에 성경 말씀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설교했구나’ 하는 감격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드미트리우스교회.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성서의 땅’을 찾아가는 대장정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주요 거점 ‘데살로니가’로 향하고 있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로마 속주(屬州) 마게도냐에 딸린 도시로 빌립보에서 서쪽으로 약 161km 떨어져 있었다.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는 유럽 땅의 행정 중심지로 로마제국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문턱과 같은 곳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드미트리우스교회’가 있어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바울 당시 유대인 회당 터 위에 자리한 드미트리우스교회는 주후 306년, 로마 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드미트리우스의 신앙을 기념하고자 지었다.

로마 황제의 부관(副官)이었던 드미트리우스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한 복음을 듣고, 로마 황제에게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다가 로마군에게 창을 맞고 피를 쏟으며 장렬하게 죽었다.

드미트리우스교회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모자이크로도 유명하다. 북서쪽 문설주에 있는 모자이크에는 아이 두 명과 함께 헌금하는 손을 한 드미트리우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지금도 미술 전문가들이 모자이크를 계속해서 보수하고 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바울 일행은 유대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다. 이곳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했고, 점잖은 그리스도인들과 많은 귀부인이 바울과 실라의 가르침을 따랐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일부 유대인이 시기하여 바울 일행을 ‘황제 법령을 어기는 자’들로 모함했다. 바울 일행은 또다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자들로 고발됐다.

바울과 실라는 소란을 피해 깊은 밤에 데살로니가를 빠져나갔다. 훗날 바울은 디모데 편으로 데살로니가에 격려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바로 데살로니가 전·후서다. 이런 지역이기에 드미트리우스의 순교도 바울이 남긴 또 하나의 결실이리라.

윤석전 목사: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는 어떤 곳이었나요?

홍순화 원장: 성경에 기록될 당시에는 대도시로서 번영을 누렸으나 지금은 폐허로 변한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는 바울 당시에도 마게도냐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지금도 여전히 거대한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 인구는 천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수도 아테네에 100만, 아테네 부근 지역에 300만 명 정도 삽니다. 데살로니가에도 수도와 맞먹는 100만 명 정도 삽니다. 데살로니가는 현재 상공업 중심지고, 대학도 여럿 있는 학문 도시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해변에 있는 항구 도시면서 에그나티아 도로를 비롯한 모든 육상 도로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는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하려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서 강론했다고 했는데(행17:2). ‘자기 규례’란 무슨 말인지 알려 주세요.

심상법 교수: 바울은 전도여행 할 때 자기 나름대로 규례를 정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절에 기록되었듯이 첫째, ‘전도 방법’에 관한 규례입니다. 안식일을 중심으로 회당에 가서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한 후, 길가와 강가 같은 회당 밖 저잣거리로 나와 헬라인에게 전파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강론 방법’에 관한 규례입니다. 회당에 들어가면 먼저 두루마리 성경인 구약성경을 읽은 후, 회당장의 요청이 있으면 강론을 합니다. 강론은 구약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했습니다. 즉 ‘자기의 규례’란 유대인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윤석전 목사: 데살로니가에 가면 지금도 사도 바울 당시의 유대인 회당 터가 있습니까?

홍순화 원장: 데살로니가는 비잔틴 시대 기독교 중심지로서 수백 개 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4세기, 5세기, 8세기 대표적인 교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교회는 5세기 때 지은 드미트리우스교회입니다. 많은 학자가 그곳을 사도 바울 당시 회당 자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데살로니가 회당에는 여자들도 들어갈 수 있었나요?

홍순화 원장: 성전이 아니라 회당이었기에 여자들도 들어가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세워진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심상법 교수: 사도행전 17장 1절부터 9절에 교회를 세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이 동역자 실라와 수석 선교사 디모데를 데리고 고난의 빌립보 사역을 마친 후,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도착한 곳이 데살로니가였습니다. 그곳에서 3주라는 짧은 기간에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때 많은 유대인과 귀부인과 경건한 무리가 회당을 찾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성령의 기쁨을 받아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상숭배에서 돌아선 이방인이 특히 많았습니다. 1세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은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쓴 데살로니가 전.후서에서 말세를 경고하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 서신을 데살로니가에 보낸 배경은 무엇입니까?

심상법 교수: 사도행전 17장 1절부터 9절에는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잘 기록돼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짧은 기간에 회당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배척도 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폭동을 일으키고, 법정에 고소당해 급기야 바울이 야반도주를 합니다. 그 후 바울이 다시 데살로니가에 돌아오지 않아서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은 바울을 당시 돈을 갈취하던 순회 전도자 같은 엉터리 전도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 바울의 명예와 그가 전한 복음이 손상되었습니다. 이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생긴 다른 문제들에 대한 당부와 더불어 서신을 쓰게 됩니다. 서신을 읽어 보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어떻게 교회로 오게 되었고, 복음과 일꾼의 관계는 무엇이며, 복음과 세상 삶은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복음과 미래의 소망에 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서신은 최초의 바울 서신으로 1세기 교회의 문을 연 대단히 중요한 기록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그 고백대로 사도 바울은 온 생애를 주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는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불탔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전도하고자 가슴에 품은 사람이든 어디 가서 처음 만난 사람이든 그들이 예수를 몰라 멸망할까 두렵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바울과 같은 구령의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떠한 핍박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목숨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의 식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468호(2016-01-16)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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