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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36)] 로마 항해의 마지막 항구 보디올
핍박과 고난이 있을 것을 알고도 간 전도 여정
등록날짜 [ 2016년04월25일 13시21분 ]


<사진설명>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기 전에 도착했던 보디올 항구의 오늘날 모습.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사람들은 자기를 인정해 주고, 환영하며 영접해 주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이 땅의 인간으로서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도 바울은 언제나 고통과 핍박이 기다리는 현장, 죽음이 기다리는 현장을 마다하지 않았고 달려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려 할 때 많은 사람이 만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교의 정통성을 위반했기에 수많은 핍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체포된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 소유자여서 로마법대로 재판받고자 로마로 호송돼 가는 중에 수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였고,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했습니다. 발길 닿는 그 자리가 복음 전하는 장소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나타낸 이적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위대한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직전에 들렀던 곳이 보디올입니다. 이번 호에는 보디올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수라구사와 레기온을 거쳐 나폴리 만(灣)의 보디올에 도착했다. 당시 보디올(Puteoli)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 로마로 가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곳에 들러 배를 기다려야 했다. ‘보디올’은 ‘유황 샘’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160도 넘는 뜨거운 유황 가스가 솟아나고 모래와 진흙이 끓어오르고 있다. 지금은 이곳을 ‘포추올리’라고 부른다.

이 도시가 바울 당시에 얼마나 화려했는지는 시내에 남아 있는 거대한 복합 건축물 ‘세라피스 신전’이 대변해 준다. ‘세라피스’는 의술의 신으로서 지중해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이방 신이다. 이 신전 주변에는 번화한 상가가 줄지어 형성되어 있었다.

이방 종교가 번성한 부유한 항구 도시 보디올에서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무릎 꿇어 로마에서 이루어 낼 복음 사명을 위해 기도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윤석전 목사: 바울은 보디올에 도착하기 전, 어떤 섬들을 거쳐 갔나요?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사도 바울이 탄 배는 풍랑을 만나서 난파했는데 배에 탄 일행은 가까스로 멜리데 섬, 지금의 몰타에 상륙합니다. 바로 여기서 지나가는 배를 타고 당시 항로를 따라 시칠리아(시실리) 섬 수라구사로 갔습니다. 지금은 쾌속선을 타면 몰타에서 시칠리아 섬까지 2시간 걸립니다. 사도 바울 때는 물론 더 오래 걸렸습니다. 수라구사(Syracuse)는 동쪽 해안에 있는 아주 큰 항구였습니다. 지중해에 있는 중요 항구인데 정치.예술.문화의 중심지로서 인구 1만 5000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극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카타콤(Catacomb, 초대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들어 예배하며 생활한 곳)도 있습니다. 바울은 수라구사에서 레기온(Rhegion)으로 갔습니다. 대개 이탈리아 지형을 장화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레기온은 그 발가락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수라구사와 레기온, 두 섬은 1.6km 거리로 매우 가깝습니다. 지금은 철도가 놓여 바로 갈 수 있습니다.

레기온도 당시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수라구사를 떠나 레기온에 도착한 사도 바울 일행은 역풍을 만나 그곳에서 하루 더 머물다가 당시 보디올을 거쳐 로마로 향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직전에 들렀던 보디올은 당시 어떤 곳이었습니까?

홍순화 원장: 보디올은 사도 바울 당시에는 그 부근에서 가장 큰 항구였습니다. 나폴리에서는 북쪽으로 20km 떨어져 있습니다. 자동차로는 20분 걸립니다. 당시 보디올은 상업 중심 거대 항구로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많은 물자가 오면 보디올 근처에 있는 ‘아피아 가도(假道)’를 거쳐 로마로 갔습니다. 그곳에 ‘사도바울 도착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또 보디올은 유황으로 유명하고, 세라피스 신전과 대형 극장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항구 도시 나폴리는 그때 당시 보디올의 위상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행전 28장 14절을 보면 바울은 보디올에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난 ‘형제’를 믿음의 동역자라고 여겨도 좋을 듯합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믿음의 사람을 만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김판임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신약학): ‘형제’라는 말에 ‘믿음의 형제’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보디올에서 ‘믿음의 형제를 만났다는 것’ 외에 성경에 따로 보디올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언급한 부분이 없습니다. 다만 선교 과정이나 당시 상황을 두고 미루어 짐작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에는 다른 나라에 가려면 국가 간에 경계가 확실해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출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수많은 나라가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지배 아래 있었기에 여러 민족이 국경선에 구애하지 않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보디올은 유동 인구가 많은 항구 도시였기에 기독교인이 보디올에 유입됐다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방인인지 유대인인지는 알 수 없고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유입되었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윤석전 목사: 보디올 근처에 아름다운 항구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항 나폴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직접 들르지는 않았지만 ‘성서의 땅을 가다’ 탐사팀이 찾아가 보았습니다.

 


<사진설명>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나폴리.


보디올 11km 동쪽에는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나폴리가 있다. 바울 당시 나폴리는 고대 로마 황제들과 수많은 예술가를 매료시킨 휴양 도시로,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고 토질이 좋아 맛 좋은 과일들이 풍성했다.

17세기 초에 세워진 바로크 건축물 레알레 왕궁과 신고전주의 양식 바울 성당은 나폴리의 명소 플레비시토 광장의 중심 볼거리다.

이 광장은 1809년 공화주의자 뮬러가 시민광장으로 지어 1815년 브루봉 왕가 페르난도 1세가 완성했다. 광장 중앙에 있는 부르봉 왕가 카를로 3세 기마상과 바울 성당 입구에 세워진 바울상은 정욕의 세상과 복음의 세계가 대비되는, 이 광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나폴리항은 1924년 제노바 다음 가는 이탈리아 제2의 상업항구로 확정됐는데, 건설 후 현재까지 이 지역 항만의 중심이다. 또 인근 카프리 섬 같은 크고 작은 섬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제적 명소다. 보디올을 향하던 바울의 눈길에 잠시 담겼을 나폴리. 이 위대한 사도의 눈길이 머물렀던 사실만으로도 나폴리는 아름다운 도시다.



윤석전 목사: 보디올과 매우 가깝다는 나폴리는 바울 당시 어떤 곳이었나요?

홍순화 원장: 성경적으로 보디올을 중요히 여겼는데 나폴리도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보디올은 당시 상업 중심 항구였고, 나폴리는 입지 조건이 보디올보다 좋은 휴양 도시였습니다. 로마 황제들이 그곳에 정원을 만들어 일광욕을 즐겼습니다. 지역적으로는 보면, 보디올에서 남쪽으로 20km, 폼페이에서 북쪽으로 40km, 소렌토에서 북서쪽으로 50km 거리에 있습니다. 현재 나폴리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이고 천연 항구입니다. 인구가 100만 명 정도이고 과실과 곡식이 유명합니다. 또 많은 이가 좋아하는 음식, 피자의 원산지입니다. 지금도 제노바 다음가는 제2의 항구로 알려져 있고 주변 일대 문화.예술.정치의 중심지입니다. 나폴리 땅이 비옥한 까닭은 폼페이를 멸망시킨 화산 폭발 때 그 화산재가 떨어져 토질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온은 겨울철에도 8도를 유지해 휴양하기 좋습니다. 지금도 나폴리 시내에서는 로마 시대 도로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나폴리를 비롯해 전 세계는 헬라 문화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사역을 할 때 헬라 문화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합니다.

김판임 교수: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엄밀히 말하면 ‘헬라 문화’, 즉 ‘헬레니즘’이 장악하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헬라 문화’는 그리스 문화를 말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전 세계를 지배하자 그리스 문화의 세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이 헬레니즘 문화를 선교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아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첫째, 언어 면인데요, 바울은 헬라어를 구사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라틴어보다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요즘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생각하면 됩니다. 바울은 학문의 도시 다소에서 태어나 헬라어를 제대로 배웠는데 그 헬라어를 전도하는 데 유익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둘째는 ‘도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잘 닦아 놓은 도로를 따라 선교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도시’입니다. 헬라니즘의 특징이 ‘도시 문화’인데 바울은 고린도와 같은 많은 도시에서 ‘도시 중심’으로 복음을 활발히 전파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전도여행 총 거리는 어느 정도입니까?

홍순화 원장: 사도 바울의 전도 코스를 따라다니면서 생각했습니다. ‘참 많이도 돌아다니셨구나’라고요. 지금도 힘든데 바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요. 학자들이 예상하는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거리는 약 2만km입니다. 엄청납니다. 당시 도로 사정과 교통 수단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합니다. 더구나 섬들과 험한 산악지대를 많이 다녔기에 아주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헬레니즘의 종교와 철학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했나요?

김판임 교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5~6절에서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당시 종교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어떠한 신앙태도를 보였는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이후 정복하는 곳마다 여러 신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많은 신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신과 교제를 끊고 오직 주님만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어서 유대적인 요소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당시 통용되던 헬레니즘 문화 속의 자유, 양심, 덕(德) 같은 용어들을 자주 사용했고 자족(自足), 본성(本性) 등 당시 지배적인 스토아 철학의 개념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헬레니즘 문화의 모든 지식과 철학을 총동원해 복음 사역에 활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복음 전파한 모습을 보면 지역.거리.도시도, 사상.철학.문화도 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는 사실을 보여 주고 나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바울이 머문 곳마다 아름답고 위대한 역사를 나타낸 것은, 기독교 눈으로 바라볼 때 복음 전도, 그것이었습니다. 복음 전도 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 걸어간 발자취를 보면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우리도 역시 우리 속에 복음의 열정과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가득하다면 어디에 가든지 주님의 산 역사를 드러낸 바울의 생애를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우리 속에서 넘쳐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감사와 그것을 전하고 싶은 구령의 열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477호(2016-04-23)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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