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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68)] 산르우르파에 전해진 욥의 이야기
등록날짜 [ 2017년04월03일 21시57분 ]

욥이 병에 걸린 후 고난을 견딘 고난바위, 고난동굴 존재하지만
대부분 전승일 뿐 성서적 근거 희박해
그러나 고통 중에도 끝까지 원망 않고 하나님 붙든 절대적 믿음만큼은
모든 성도가 본받을 만해


-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 오택현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구약학)
- 유윤종 교수(평택대학교 구약학)

 

윤석전 목사: 욥은 평생 하나님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겪으며 산 인물이었습니다. 욥기서 1장과 2장을 보면 악한 사단이 욥을 시기 질투해서 온갖 고통 속에 몰아넣었지만,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고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시다”라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결국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꼭 승리할 줄 믿습니다. 그런 바른 교훈을 준 욥, 그의 무덤이 있다는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산르우르파에 있는 욥의 고난 동굴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욥의 무덤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장소가 있다. ‘선지자 욥의 마을’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연중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욥은 고난을 겪은 후에 140년을 더 살았고 그 후 이곳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욥의 무덤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은은한 향기가 감도는 무덤 안에 욥의 관이 있다. “오 주님, 당신이 친히 나를 보증해 주십시오. 내 보증인은 주님밖에 없습니다”(욥17:3). 고난 중에 부르짖는 욥의 외침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욥은 건강을 회복했고, 아들과 딸도 낳았다. 욥의 무덤은 믿음으로 승리한 자의 끝을 보여 주었다. 욥의 무덤 부근에 욥의 고난과 관련한 또 다른 장소가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욥이 산르우르파의 고난 동굴로 가기 전 잠시 머물렀던 장소라고 하는데, 바로 욥의 고난 바위다. 욥이 고통스러울 때 기대고 의지했던 돌이라고 한다.

재물을 모두 잃고, 열 자녀도 한꺼번에 잃고, 몸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모조리 악창이 나서 견딜 수 없는데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했을 때, 욥이 이 고통의 장소에서 절대 놓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다.



<사진설명> 터키 동쪽 도시 산르우르파는 ‘선지자의 도시’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의 고향이라고 전해지는 이곳에는 아브라함의 탄생동굴이 있고, 아브라함의 박해와 관련된 잉어 호수와 아브라함 사원이 있다. 또 동방 의인 욥의 우물이 있고,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욥의 무덤과 엘리사의 무덤이라 부르는 장소도 있다. 산르우르파 뒷산에서는 코린도 양식의 거대한 두 기둥을 볼 수 있다. 윤석전 목사와 함께 산르우르파를 방문한 침례신학교 교수진.


윤석전 목사: 욥의 무덤이 산르우르파 어느 지역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욥의 무덤은 욥이 고난을 겪은 장소로 알려진 곳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지리상으로는 산르우르파보다 하란에 가깝습니다. 욥의 무덤이 있는 곳은 ‘선지자 욥의 마을’이라고 부를 정도로 만방에 알려진 장소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욥의 무덤과 더불어 욥 아내의 무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주인인 욥의 부인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던 첫째 부인이 아니라 둘째 부인이라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욥기서 2장을 보면 욥의 아내는 욥이 고난에 처했을 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저주했습니다. 그러면 욥이 회복한 후에 만난 아내는 다른 인물이라는 말씀인데, 이 점을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유윤종 교수: 위경(僞經)에 나와 있는 욥의 유언이나 여러 전승을 살펴보면, 욥이 회복한 다음에 만난 아내를 둘째 부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학자가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말하기도 합니다.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던 원래 아내가 회복됐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42장에서 욥이 회복한 모습을 살펴보면, 모든 재물이 두 배로 늘어났으나 자식은 예전과 똑같이 열 명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재물은 숫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람의 가치는 수치화하거나, 재물의 가치처럼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욥의 아내는 욥이 회복한 다음에 돌아온 원래 아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욥이 한창 고난받을 때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했지만, 자식을 열 명이나 한꺼번에 잃은 여인의 심정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욥의 무덤에 관한 성서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윤종 교수: 욥과 관련한 유적지들은 대부분 전승에 따른 것입니다. 역사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서에는 욥이 고난을 겪은 후에 아들 일곱, 딸 셋을 낳고 140년을 더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욥42:13~16). 후대 전승에도 욥은 21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성서는 이 땅에서 누리는 장수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욥이 그만큼 축복을 받았다는 의미겠지요.

윤석전 목사: 선지가 엘리사가 당시 동방의 의인인 욥을 찾아왔다는 전승이 있다고 합니다. 엘리사는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뒀는데, 그의 무덤이 욥의 무덤과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합니다. 엘리사의 무덤이라는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욥의 무덤 부근에 있다는 엘리사의 무덤을 향해 달렸다. 빗줄기는 그칠 줄 몰랐고 비에 젖은 몸은 추위로 얼어붙을 듯했는데···. 한국 사람이 이곳에 처음 왔다고 현지인들이 따뜻하게 대접해 주었다. 추위를 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엘리사의 무덤에 대한 궁금증 탓에 지체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50년간 활동했던 선지자 엘리사, 그의 무덤이 왜 터키 땅에 있을까? 계단을 오르는 다리엔 신바람이 절로 붙었지만, 이 엘리사의 무덤에서 과연 어떤 역사와 마주칠 것인가?

창살로 보호하는 무덤엔 특이한 전설이 있다. 당시근동 지역에서 유명한 의인 욥을 만나러 온 선지자 엘리사에게 마귀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엘리사가 욥을 보러 와 욥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욥이 오래전 떠나서 볼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한탄하며 “오!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엘리사는 절망했고, 기운을 잃고 죽어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전설에 불과했지만 이것은 의인 욥의 이름이 고대 근동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욥이 다시 열 자녀를 낳았는데, 맏딸 이름을 여미마, 둘째 딸을 긋시아, 셋째 딸을 게렌합북이라고 지었다. 그 온 땅에 욥의 딸들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없었다고 한다. 욥은 딸들에게도 유산을 분배해 주었다. 그 후 욥은 140년을 더 살면서 자손을 4대까지 보았고, 나이 많아 수명이 다해 죽었다(욥기 42장 14절~17절).

<사진설명> 산르우르파 욥의 고난동굴에서 1시간 거리에 욥의 무덤이 있다. 동방의 의인 욥의 소문을 듣고 선지자 엘리사가 찾아왔으나 사탄의 방해와 계략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전승도 있다. 그래서 산르우르파에는 욥의 무덤과 가까운 거리에 엘리사의 무덤이라는 곳이 있다.


윤석전 목사: 선지자 엘리사의 무덤이 왜 욥의 무덤 근처에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이것도 역시 산르우르파 지역의 독특한 전승입니다. 욥의 명성이 고대 근동 지역에 아주 넓게 퍼져 있었고, 엘리사가 살고 있었던 북이스라엘 지역에도 넓리 퍼져 있었나 봅니다. 동방의 의인 욥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성서 속의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사를 억지로 인용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열왕기하 13장 20절에 엘리사는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죽은 장소는 말하지 않았지만 모압 사람들이 그 지역을 차지했다는 얘기로 봤을 때 요단강 동편 엘리사의 고향 아벨 므홀라 지역에 엘리사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윤석전 목사: 욥과 엘리사가 만나는 것이 실제로 가능했나요?

오택현 교수: 성서를 보면, 욥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환난 이후에 욥이 140년을 더 살았다는 얘기뿐입니다. 엘리사의 정보는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아합 시절에 엘리야와 함께 활동했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당시에는 요아스가 북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당시 연도로 보면 주전 9세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욥이 전승대로 에서의 사람이라면, 주전 16세기 사람으로 추정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두 사람이 만나기가 당연히 불가능했겠지요.

윤석전 목사: 욥기서 42장을 보면 욥이 하나님께 통쾌하게 복 받은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을 일컬어 사람들은 ‘전통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 신학을 재확인해 주는 좋은 예’라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유윤종 교수: 욥이 고통을 잘 견뎠고 인내하였기에, 욥기서의 주제를 ‘욥의 인내와 그에 따른 보상’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다만 인과응보론을 재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 욥기서 전체적인 신학적인 주제를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과 세 번에 걸친 대토론회를 펼치고 회상과 연설 등을 통해서 인과응보적인 신학 자체에 철저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42장 7절에서 17절까지 나와 있는 의미는, 친구들에 대한 욥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심과 그에 따른 욥의 회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욥이 받은 복이 배가됐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욥기서에 나타난 의미를 제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고 보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욥기서에 나타난 궁극적인 신학적 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유윤종 교수: 욥기서에 나타난 신학적인 주제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알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초월적인 하나님을 우리의 인식 안에 가두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 속에 갇힐 수 없는 분입니다. 따라서 기계적인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욥기서에 나타난 신학의 주제를 ‘지평선(地平線)’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지평선은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면 그만큼 뒤로 물러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 욥기서는 우리에게 ‘초월적인 하나님’을 보여주고 ‘자유하신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욥기서에 생소한 동물 이름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택현 교수: 40장에 ‘베헤못’이라는 짐승과 41장에 ‘리워야단’이라는 짐승이 나옵니다. 이 둘은 고대 근동의 신화(神話) 속 존재일 뿐, 실제로 살았던 짐승은 아닙니다. 참고로 개역성경에서는 베헤못을 ‘하마’, 리워야단을 ‘악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욥기서에는 욥을 의인이라고 했는데 로마서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 차이점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윤종 교수: 욥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잘 섬겼지만 42장에 보면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다는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의인(義人)이라는 의미가 상대적 완전함이지 절대적 완전함을 나타내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여러분에게 불가능과 어려운 상황이 있어 대처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당신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을 꼭 붙들고 해결해야 합니다. 욥기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욥과 같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승리하여 영광스러운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522호(2017-04-01)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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