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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73)] 잊혀진 철의 나라, 히타이트 왕국 이야기
등록날짜 [ 2017년05월24일 06시49분 ]

최초로 철기 사용해 BC 18~12세기 소아시아 일대
강력한 제국 이루며 많은 토판문서 남겨

모세의 시내산  언약은 히타이트 ‘종주권 계약’과 유사

구약성서에서 히타이트는 ‘헷 족속’ 미천한 존재로 묘사되어 있어

BC 12세기 멸망 후 수천 년간 잊혀
강대국의 흥망성쇠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 기억해야


윤석전 목사: 구약성경에 ‘헷 족속’이라고 기록된 ‘히타이트’는 세계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다른 나라의 용병(用兵)이 돼 전쟁터를 전전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히타이트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주전 2250년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 강력한 민족이 이동해 왔다. 그들은 이집트, 아시리아와 함께 고대 중근동 지역의 3대 제국으로 부상해 히타이트 왕국을 건설했다. 히타이트인은 강력한 전차 부대와 기마병을 앞세워 ‘아나톨리아’(Anatolia, 오늘날 터키 영토에 해당하는 반도) 일대 소국들을 정복해 나갔다. 당시 강대국 이집트와 바벨론까지 떨게 했다는 천하무적 히타이트 군사력의 원동력은 철기(鐵器)였다. 히타이트는 최초로 철을 만든 민족이었다. 당시 철제 무기는 지금의 핵폭탄처럼 강력했고 제조법은 히타이트만의 것이었다.

히타이트 전사(戰士)들이 통과했을 사자문을 비롯해 당시 이 강대국의 영광은 아직도 수도 ‘하투샤’에 남아 있다. 또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있는 히타이트 문양 속의 전사(戰士)는 당시 이 왕국이 얼마나 강성했는지를 가늠케 한다. 세련미 넘치는 금속 제품들은 이 민족의 뛰어난 제련 기술을 보여 준다. 토판문서 역시 히타이트가 계약에 뛰어났음을 말해 주는데, 하나님은 이 계약 방식을 모세와 맺은 시내산 언약 형식의 모델로 삼으셨다.


윤석전 목사: 히타이트 민족에 관해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오택현 교수: ‘히타이트’는 구약성경에 헷 족속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창23:3;출3:8;수1:4). 소아시아 중앙에 있는 ‘하투샤’를 수도로 삼고 동서로 강력한 세력을 뻗쳤습니다. 히타이트는 세력을 확장하다가 출애굽 당시 바로로 알려진 람세스 2세가 다스리던 이집트와 부딪히자 카데시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카데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는데 이것이 ‘카데시 평화협정’입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카데시 평화협약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협정 조약문입니다. 히타이트는 주전 13세기까지 강력한 세력을 이어 가다가 주전 12세기 소아시아 서쪽으로 들어온 해양민족에 멸망합니다. 나라가 멸망한 후 히타이트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사진설명> 이집트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하투실리 3세 사이에 체결된 인류 최초의 평화조약문인 ‘카데시 평화협약’이 기록된 토판문서. 1906년 터키의 ‘보가즈코이’에서 발견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조약문에는 히타이트의 뛰어난 조약 규정 형식이 나타난다.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윤석전 목사: 히타이트 문화유산의 특징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유윤종 교수: 히타이트는 인종이나 언어로 볼 때 ‘인도·유럽’에 속합니다. 그러나 동서를 가로지르는 교통 요지에 자리해서 일찍이 아시리아가 히타이트에 무역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따라서 인도·유럽 문화와 셈족의 문화가 섞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히타이트가 있던 지역이 은과 철의 주 생산지여서 철기문화를 최초로 이룩할 수 있었고, 기마병과 전차가 유명했습니다. 그들이 남긴 ‘키쿨리(Kikkuli) 문서’에는 말 조련술을 기록해 놓았는데 오늘날에도 활용할 정도로 조련 기술이 뛰어납니다. 자국 글자가 없었기에 셈족의 쐐기문자를 빌려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근동과 인도·유럽 문물을 혼합하여 법률, 관습, 종교 면에서 자기 나라의 독특한 문화로 재창조해 냈습니다.

윤석전 목사: 히타이트는 이스라엘과 아주 근접한데 그들의 문화가 구약성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히타이트는 군사력이 막강했고 문화와 문명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문명은 주변 국가에 영향을 끼쳤고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수도 하투샤(Hattusha)에서 발굴한 왕실 문서 보관 창고에서 토판문서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 토판문서들을 분석해 보니, 강력한 히타이트 제국과 약소국 사이에 맺은 ‘종주권 계약’이 많습니다. 이 종주권 계약을 분석한 미국 학자 조지 멘덴홀(George Mendenhall)은 ‘히타이트의 종주권 계약이 출애굽기 19장 이하에 기록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은 시내산 언약 형식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유사하다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말합니다. 종주권 계약문의 형식을 살펴보면, 전문(前文), 역사적 서원, 계약 조항, 정기 낭송, 증인 목록, 축복과 저주 등 구약성서 시내산 언약에 나타나는 부분이 히타이트 종주권 계약에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멘델홀은 구약성서의 시내산 언약이 형식면에서 히타이트의 종주권 계약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해 구약학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주장은 상당히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당시는 주전 13세기경인데, 그때는 히타이트가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히타이트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계약 조건에 간접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봅니다.


<사진설명> 주전 18세기에 제국을 건설해 12세기에 해양민족에게 멸망해 역사 속에서 홀연히 사라진 히타이트의 유적이 1907년 발굴됐다. 위 사진은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의 신전 터다. 하투샤는 이중 성벽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았다. 그 안에 왕국의 역사, 경제, 종교 등을 쐐기문자로 기록한 토판문서 이만여 개를 보관했다. 하투샤 신전 터는 44×64미터이며, 방 70개로 둘러싸여 있다.



주전 1400년경 키프로스 남쪽에서 에게 해 서쪽까지 이르는 히타이트 제국 수도는 ‘하투샤’였다.

해발 1000m 고원지대에 세운 하투샤는 두 도시로 구분되는데, 왕궁, 도서관, 신전이 있던 남쪽 도시와 아시리아 상인들이 거주하던 북쪽 도시다. 풍부한 농산물과 철기 제조 기술의 독점은 히타이트에 부(富)를 안겨 주었다. 하투샤는 약 8km에 달하는 이중 성벽을 쌓아 적의 침입을 방어했다. 이 도시 안에서 귀족들은 엄격한 법 규정에 따라 왕국의 제반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왕국을 이끄는 각종 조약과 규정이 정해지면 왕실 도서관으로 옮겨 도서관 관리자들이 기록했다. 왕국의 역사, 경제, 종교 등과 관련한 각종 조항을 토판에 새겨 보관했다.

도서관 관리자들은 토판 위에 쐐기문자를 새겨 문서를 만들었는데, 그중 이만여 개가 발굴됐다.

이집트와 맺은 세계 최초의 평화협정 ‘카데시 협약’도 히타이트의 뛰어난 조약 규정 형식이 낳은 결과물이다. 그러나 히타이트는 주전 12세기 해양민족 도리아인(Dorians)에게 멸망해 폐허가 됐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암5:8~9).


윤석전 목사: 성경에는 히타이트 왕국을 구성했던 헷 족속은 노아의 세 아들 중 함의 후손 가나안이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10:15). 성경에서 헷 족속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유윤종 교수: 구약성경에 히타이트 왕국을 직접 언급한 구절이 나오지 않지만, 헷 족속은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등장합니다. 가나안의 아들로 나올 뿐만 아니라, 창세기 15장 20절에는 가나안을 구성했던 열 부족 중 하나로 나옵니다. 이미 가나안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민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이 막벨라 동굴을 사는 장면부터는 우호적인 관계로 나옵니다. 그러나 출애굽 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는 멸족해야 할 일곱 부족 중 하나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 후 헷 족속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난한 이방인에 속하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키고 보호하라고 명하신 대상입니다(신10:18;출22:22;말3:5).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헷 족속은 정복시대에는 섬멸할 대상이고, 사회가 안정된 다음에는 보호해야 할 이방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가나안 정복 당시 하나님께서 헷 족속을 멸망시키라고 명하신 말씀과 상충하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유윤종 교수: 성경에서 섬멸하라고 한 구체적인 시기는 가나안 입성(入城)이라는 한정된 역사공간에만 적용됩니다. 성서는 멸족해야 하는 이유를 종교에서 찾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절에 보면 솔로몬이 사랑한 여인들 중에 헷 족속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열상11:2)”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과 연애하여 마음을 빼앗기자 그 여인들을 위해 이방 신전을 세워 줍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을 통해 우상숭배가 들어올 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섬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또 에스겔서 16장 3절과 45절에서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에 만연한 우상숭배를 설명하는 부분이기에 그 이유를 종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방인 나그네를 대할 때는 그 종교를 본받지 말되, 사회적 약자이기에 도우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히타이트는 세계 역사 속에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강대국인데 성경에서 강대국 히타이트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헷 사람’이라는 약한 이름으로 언급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창세기 23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묘지로 쓰려고 막벨라 동굴을 사는데 땅 주인이 헷 족속입니다. 또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부정을 저질렀는데 우리아가 헷 족속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에서 헷 족속은 부정적이고 미천한 존재로 나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헷 족속은 아내를 잃고 경황 없는 아브라함에게 막벨라 동굴을 비싼 가격에 판, 비열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또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 사건에서는 우리아가 다윗 왕궁에 들어가서 용병 생활을 하고, 이방인 나그네로서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 헷 족속에 대한 평가가 비천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둘 다 헷 족속의 전성기와 동떨어진 시기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주전 18세기 이전 사람입니다. 이는 헷 족속이 강력한 나라를 형성하기 이전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사건 때는 이미 헷 족속의 나라가 멸망해 유민들이 다른 나라의 용병이나 노예로 전락한 처지였습니다. 헷 족속이 주전 18세기부터 12세기까지 세계를 뒤흔든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윤석전 목사: 19세기에 히타이트 왕국을 발견했는데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유윤종 교수: 히타이트 왕국이 멸망한 후 그 왕국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후 19세기 들어와서 히타이트 왕국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자 온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전까지 성서학자들은 성경 속 헷 족속을 ‘허구’라고 생각했는데 히타이트 왕국을 발굴하면서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율법, 종교, 언어에서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히타이트 유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보아즈칼레’가 있습니다. 이 도시가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하투샤’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 터키 정부가 대대적으로 하투샤를 발굴했는데 히타이트 제국의 위엄을 입증할 수많은 유적과 문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앙카라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히타이트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박물관입니다. 또 2003년에는 미국과 합작으로 히타이트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히타이트인(The Hittites)’을 제작해서 방송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히타이트는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강대국이지만 멸망하자 다른 민족에 동화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리저리 유랑했지만 하나님이 그 민족을 항상 보호하시고 배경이 되어 주셨기에 지금까지 건재합니다. 유대인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죽였지만 그 죽음이 우리를 구원했다는 사실이 만방에 전해지면서 우리는 그 복음으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문명과 모든 강대국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영원한 축복이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529호(2017-05-20)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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