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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06)] 성경 속 이스라엘과 오랜 적대관계 ‘모압’
요르단 편
등록날짜 [ 2018년05월25일 13시26분 ]

롯과 큰딸 사이 잘못 태어난 모압족속
이스라엘 약해지자 독립을 선언
‘모압 석비’엔 모압 메사왕 승전보 기록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은 모압을 다윗왕(재위: B.C. 1077~1037)에서 아합왕(재위: B.C. 873~852)에 이르기까지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모압은 이스라엘이 약해질 때마다 이스라엘에 도전하고 대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였던 모압으로 가 보겠습니다.

사해 동편 모압 평지로 향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 광야의 마지막 시간을 모압 싯딤 골짜기(valley of Siddim)에서 보냈다. 3700년 전 하나님은 출애굽하면서 광야에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실 때 싯딤 나무로 지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성막의 널판과 덮개를 싯딤 나무로 만들었다. 싯딤 나무가 무성했던 싯딤 골짜기는 하나님의 기물(器物)을 위한 거룩한 ‘자재 창고’였다.

윤석전 목사: 모압은 어떤 나라였나요?

오택현 교수: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딸과 잘못된 관계로 탄생한 민족입니다. 이스라엘과 계속 적대 관계였고,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거나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로 기록돼 있습니다. 모압의 지리 경계는 서쪽은 사해, 동쪽은 사막 지역, 남쪽은 세렛강, 북쪽은 아르논강입니다. 모압은 높이 700~900m인 넓은 고원지대며 위는 평지입니다. 모압은 도로와 상업이 발전했고 대표 도시는 마다바(Madaba)입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 모압에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을 소개해 주세요.

정중호 교수: 성경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에서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이 나타납니다. 특히 모압 땅은 비옥해 목축을 하고 포도를 많이 재배하는데 예레미야는 이런 모압 땅에 끔찍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모압이 심판받은 이유는 첫째로 모압이 자기 힘만 믿고 교만해 여호와를 거슬렀고, 둘째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고, 마지막으로 우상 ‘그모스(Chemosh; 소 머리에 사람 몸을 가진 형상)’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목사: 예레미야의 심판 내용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정중호 교수: 처음에 예레미야가 모압을 언급할 때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라고 표현합니다(렘48:17). 모압은 군사적으로 매우 강했고 경제적으로 무척 풍요롭고 윤택했습니다. 또 오랫동안 평화롭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심판당할 때 예레미야는 ‘포도주 틀에 포도주를 없게 하겠다’고 합니다(렘48:33).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셔서 흉년이 들어 열매를 거둘 수 없게 하겠다’는 심판 내용을 표현했습니다. 덧붙여 예레미야는 심판 내용에서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렘48:46)’라며 머리와 수염이 깎여지고 허리를 동인 채 포로로 끌려가는 처참한 모습을 말했습니다. 이처럼 통곡과 슬픔이 가득 찬 내용을 보면 절망만 있지만,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모압 사람들을 말일에는 반드시 귀환시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48:47). 모압 백성이 저지른 죄는 무겁고 벌이 엄중하지만 그 속에서 모압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압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모압 땅 느보산 꼭대기에 광야에서 놋뱀을 들었던 모세의 역사가 담긴 놋뱀십자가가 있다. 모세의 최후 장소로 여겨지는 곳에 모세 기념교회를 세웠는데 사람들은 이곳에서 모세를 생각한다. 그 옆에는 느보산 유물 전시관이 있다. 이곳에는 많은 유물이 있는데 특히 열왕기하 3장을 입증하는 모압 왕 메사(Mesha)의 석비(石碑) 탁본은 세계적인 고고학 자료다. 메사왕은 석비가 발견된 디본(Dibon, 당시 모압의 수도)에서 이스라엘에 반기를 들었다. 모압의 배반에 격분한 이스라엘 연합군은 모압 산맥 케락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때 이스라엘 연합군의 요청을 받은 선지자 엘리사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전쟁의 기선은 이스라엘 연합군이 빼앗았다. 그러나 수도 길하레셋(Kir-Hareseth)의 케락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사진설명> [케락성] 한때 모압 왕국의 수도였던 케락성은 해발 1050m로 깊은 계곡에 둘러싸였지만 모든 방향이 보이는 천혜의 요새다. 이스라엘은 다윗왕(제2대)부터 아합왕(제7대)까지 모압을 지배했지만 여호람왕(제9대) 때 모압이 이스라엘에 반기를 들어 둘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여호람 군대가 승전을 거듭하자 모압 왕은 케락성으로 후퇴해 맏아들을 산 채로 그모스신에게 바쳤다. 현재 케락성은 옛 요새 한 부분과 중세 십자군이 그 위에 다시 지은 성채 유적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모압 땅 느보산 정상에 세워진 모세 기념교회] 모세의 최후 장소로 여겨지는 곳에 세운 교회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의 신앙을 기린다.


<사진설명> [느보산 정상의 놋뱀십자가] 모세가 출애굽 후 광야 40년을 보내고 모압 땅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최후를 마친 곳에 모세를 기념해 세운 상징물이다. 이곳을 찾은 순례객은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최후를 마친 노년의 모세의 심정을 기린다.

<사진설명> 메사 석비 원본(왼쪽), 메사 석비 탁본(가운데),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차 느보산 유물 전시관을 찾아 메사 석비 탁본을 보고 있는 윤석전 목사(오른쪽). 모압 왕 메사가 마다바 지역, 느보 지역을 비롯해 많은 지역을 이스라엘에서 빼앗았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원본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윤석전 목사: 구약성경에서 길하레셋이라 말하는 오늘날의 케락성에서 벌어진 모압과 이스라엘 전투를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먼저 모압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이 모압을 점령한 후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린다”(삼하8:2)라고 할 정도로 이스라엘은 모압을 철저하게 점령하고 파괴합니다. 그 후 모압은 이스라엘에 종속한 나라로 존재했습니다. 왕권이 강력했던 아합왕 시대에는 모압이 이스라엘에 엄청난 조공(朝貢)을 바치면서 나라를 유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이 죽고 난 후 그의 아들 여호람이 다스리던 시절에는 이스라엘이 약해지니 모압이 독립을 선언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유다, 에돔과 연합해서 모압을 정벌합니다. 전쟁이 일어난 곳은 길하레셋, 오늘날의 케락성입니다.

윤석전 목사: 모압 왕은 장남을 번제로 드렸는데(왕하3:27)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오택현 교수: 당시 모압 수도는 디본입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연전연승을 거두자 모압 왕은 마지막 항전지 길하레셋에 숨습니다. 길하레셋은 고대에서 십자군 시대에 이르기까지 최고 요새로 각광받은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철저하게 포위한 후 모압 왕을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이때 모압 왕은 몰래 도망쳐서 에돔과 야합하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압 왕이 최후에 선택한 것은 그모스신에게 맏아들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신18:10~11). 성경은 이런 행위를 철저히 금하지만 모압 왕은 이교도라서 자기 신에게 인신(人身) 제사를 지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압 수도 디본에서 중요한 석비를 발견했다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모압 석비를 발견한 과정은 드라마틱합니다. 1868년 독일 선교사가 모압에서 선교를 하던 중 어느 부족에게 석비를 발견했다는 얘기를 듣고 예루살렘에 있는 독일 고고학자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독일 고고학자가 그곳에 가서 확인해 보니 고대 모압 왕 메사의 기록이 적힌 가치가 큰 석비였습니다. 원주민에게 그 석비를 사려고 접촉을 시도하던 중에 그만 영국에까지 소문이 나서 원주민에게 그 돌을 팔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원주민은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아 계속 버티고 탁본도 못 뜨게 했지만, 프랑스인에게 사주받은 아랍인이 몰래 탁본을 뜹니다. 나중에 이 탁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원주민은 많은 사람이 사려는 걸 보니 분명 비싼 돌이라 여겨 조각을 내면 이익을 더 많이 얻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모압 석비는 좀처럼 부서지지 않는 돌인데, 원주민들이 그 돌을 불에 달구고 찬물을 붓기를 반복해 마침내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한편으론 돌 껍데기에는 별 것 없지만 돌 안에 무언가 귀중한 것이 들어 있기에 서양 사람들이 찾는다는 생각에 조각을 냈지만 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 후 돌 조각들은 여러 부족에게로 넘겨져 뿔뿔이 흩어집니다. 훗날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그 돌들 65%를 회수해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했습니다. 탁본 덕분에 아직 회수하지 않은 부분도 복원할 수 있었고 석비에 적힌 모압어를 분석해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해석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압 석비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을 모압 왕이 다시 회복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상세히 말씀해 주세요.

정중호 교수: 모압 석비에 모압 왕 메사가 마다바 지역, 느보 지역을 비롯해 많은 지역을 이스라엘에서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쟁 내용을 보면 처참한 모습이 많습니다.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 사람을 모두 죽여서 그모스신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성소(聖所)를 약탈하고 기물을 가져갔다는 기록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모압 왕 메사는 도시를 다시 건설했는데 집마다 물을 보관하는 저수조를 만들고 주변에는 성벽을 쌓았습니다. 비어 있는 곳에 모압 사람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모압 석비에 당시 이스라엘 왕 이름이 기록됐다는데 어떤 왕인가요?

정중호 교수: ‘오므리왕’의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오므리왕은 오므리 왕조를 창건한 왕인데 아합왕도 오므리 왕조(오므리왕~여호람왕, B.C. 884~841)에 들어갑니다. 오므리왕은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외부에서도 인정해주는 왕이었습니다. 모압 석비에 이스라엘의 다른 왕 이름은 없고 오므리 왕조의 이름만 나타난 점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앗수르 문헌에서는 이스라엘을 ‘오므리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앗수르에서도 오므리 왕조는 인정받았습니다. 이 왕조가 모압 땅을 지배했습니다. 나중에 왕조의 힘이 약해졌을 때 모압 왕 메사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쫓아낸 것입니다.

<사진설명> (왼쪽) [이스라엘 오므리왕 재위 당시 모압 땅 마다바 지역과 느보 지역을 지배한 흔적을 보여주는 지도] 오므리왕은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외부에서도 인정해주는 왕이었다.

(오른쪽) [모압 주변 지도] 모압의 지리 경계는 남쪽은 세렛강, 북쪽은 아르논강, 서쪽은 사해, 동쪽은 사막 지역이다.



윤석전 목사: 모압 석비 비문의 내용은 역사상 신빙성이 있나요?

오택현 교수: 모압 석비는 메사 입장에서 쓰여서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고대 근동 왕들의 기록을 보면 작은 사건을 확대해서 기록한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3장을 보면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배신한 것은 사실입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시50:22). 마귀역사는 항상 세상 환경을 통해 믿음에 도전합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서 질병, 저주, 시험 모두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주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신앙생활에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해 평생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576호(2018-05-19)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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