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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09)] 고대 무역도시 페트라로 유명한 에돔과 에돔족속
요르단 편
등록날짜 [ 2018년06월25일 10시56분 ]

고대 역사에서 이스라엘과 항상 적대관계
에돔 왕, ‘왕의 대로 지나감’ 모세 제안 거부
광야로 우회 ‘불뱀사건’ 원인제공자가 돼

다윗, 에돔 정복해 이스라엘에 예속시켰지만
훗날 유다 멸망 시 바벨론과 협공해 앙갚음


윤석전 목사: 에돔 사람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돔은 항상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로 지내왔습니다. 에서 후손의 땅 에돔으로 가 보겠습니다.

에돔에 있는 고대도시 페트라(Petra)는 붉은 사암(砂巖)으로 이루어졌다. 산 정상에 아론의 무덤이 있는데 그 자리에 모스크가 세워져 있다. 페트라는 국제무역 중심 도로들이 교차하는 국제무역 중개지였는데 그 덕분에 에돔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번영했다.

도보나 말을 타고 시크(Siq) 협곡을 지나면 거대한 바위 도시 ‘페트라’가 나온다. 페트라 암석 신전은 높이 42m로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이 가미된 건축물이다. 에돔은 이곳에서 태양신 두샤라(Dushara)와 여신 알라트(Allat)를 숭배했기에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과는 적대 관계였다. 에돔은 사울,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전쟁했지만 A.D. 106년 에돔이 로마의 속국이 된 후 그곳에도 복음의 씨가 뿌려졌다.

<사진설명> 페트라  에돔(현재 요르단)에 있는 거대한 고대도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졌다. 바위를 깎아 암벽에 세운 도시다. ‘페트라’는 ‘바위’를 뜻한다. 페트라는 ‘향료의 길’과 ‘왕의 대로’가 교차하는 국제무역 중개지였다.

<사진설명> 시크 협곡  페트라로 들어가려면 좁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시크 협곡을 지나야 한다. 시크는 좁은 곳이 폭 2m, 높이 80m, 전체 2km다.


윤석전 목사: 에돔이 에서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에서 후손이 사해 남쪽 지역에 내려와서 살았고 그들이 이룬 민족이 에돔족입니다. 이스라엘은 역사 내내 에돔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지만 이스라엘이 강력할 때 잠깐 협력하기도 합니다. 이 적대 관계가 표출돼 훗날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상당한 적대감을 가지고 에돔에 관해 심판을 예언 하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에돔 지역의 특징을 설명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에돔은 ‘붉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에돔(Edom)’ 단어 자체가 ‘붉다’는 의미입니다. 붉다는 뜻으로 에돔을 부르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전해집니다. 첫째, 에서가 팥죽, 즉 ‘붉은 죽’ 한 그릇에 장자(長子) 명분을 판 사건 때문입니다. 그 후,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 되고 에서가 머문 지역도 ‘에돔’으로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둘째, 에돔 지역 자체가 붉은색 사암으로 이루어져 에돔 지역을 둘러본 모든 사람이 ‘에돔(붉은 지역)’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에돔은 험준합니다. 에돔은 산새가 험하고 요새로 이루어져서 이 지역을 점령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고대 에돔의 경제 상황은 어떠했나요?

정중호 교수: 고대 에돔에는 중요한 금속인 구리를 캐는 광산이 있었습니다. 구리 광산의 규모가 국제적으로 주목할 만했고 에돔은 수익을 많이 얻었습니다. 에돔은 ‘향료의 길’과 연결됐습니다. 또 다메섹과 통하는 ‘왕의 대로’도 연결됐는데 이 길은 홍해와도 이어져 해상무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에돔은 두 가지 국제무역로가 교차해 많은 사람이 통과했습니다. 또 대상(隊商)들이 많이 통과하다 보니 그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했습니다.


<사진설명> ① 에돔 고대 지도(왼쪽)와 ②현재 지도(오른쪽)  에돔은 이스라엘 남쪽 지방과 요르단 산악 지방에서 살았던 고대 민족이다. 에돔 지역은 남쪽 아카바만, 북쪽 세렛강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③ 향료의 길  아라비아로 통하는 국제 무역로다.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티아인은 북쪽에서 페트라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무역로를 장악했다. 

<사진설명> ④ 다윗과 솔로몬 왕국  다윗은 집권하자 에돔인 1만 8천 명을 죽여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고 에돔을 점령한다(삼하8:13~14). 이후 에돔은 이스라엘에 예속된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넓어진 영토를 이용해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자 했고 에돔 최남단에 있는 ‘에시온 게벨’ 지역을 개발해 홍해 무역을 담당하는 항구도시로 만들었다.

윤석전 목사: 에돔이 민수기 21장 8~9절에 나오는 불뱀 사건과 관련 있다고 하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에돔은 불뱀 사건의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요단강 동쪽으로 지나갈 때 ‘왕의 대로’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왕의 대로’를 지나던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람을 보내 “우리가 너희들의 우물물도 마시지 않을 것이고 포도나무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며 ‘왕의 대로’로만 지나갈 것이니 허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민20:17). 에돔 왕은 모세의 제안을 거절하고 군대로 막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에돔을 지나가지 말고 북쪽으로 우회해서 거친 광야 길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그 일을 성경에는 ‘길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라고 기록했습니다(민21:4). 결국 그 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독사인 불뱀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하셨고 모세는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놋으로 만든 뱀의 형상을 장대 위에 높이 달아라,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윤석전 목사: 열왕기하 18장에 광야 놋뱀 사건이 기록됐다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정중호 교수: 히스기야 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 성전에 있는 놋뱀을 부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왕하18:4). 세월이 지나면서 성전에 있던 놋뱀이 우상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놋뱀을 향해 절하고 신상처럼 받들었습니다. 그것을 본 히스기야왕이 놋뱀을 모두 부수고 없앴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시 한 번 에돔으로 가 보겠습니다.

광야 40년 길에서 이스라엘은 에돔을 통과하려 했지만 에돔 왕이 거부하자 우회해서 물이 있던 ‘와디 럼(Wadi Rum)’으로 왔으리라고 추정한다. 모래와 돌산으로 이루어진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었던 것이다.

<사진설명> 와디 럼 모래와 돌산으로 이루어진 사막이다. 면적이 720㎢에 달하는 사막이라 평지처럼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이 해발 1000m인 고지대다. 1998년 요르단 정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2011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됐다.

윤석전 목사:
왕정시대 당시 에돔과 이스라엘은 어떤 관계였습니까?

오택현 교수: 왕정시대 초부터 에돔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였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에 정복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8장을 보면 다윗이 에돔을 공격했는데 ‘염곡(Valley of Salt)을 점령했다’고 표현합니다. 이때 다윗은 에돔 사람 1만 8천 명을 죽이는 대대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다윗 이후 왕정시대는 에돔 사람이 이스라엘에 철저하게 예속돼 이스라엘 백성을 섬겼다고 기록됐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해상 무역을 구성하게 되고 지중해-욥바를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 무역만(灣)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부를 창출하려면 개발을 해야 했는데 솔로몬이 바라본 곳이 홍해였습니다. 에돔 최남단 ‘에시온 게벨(Ezion-Geber)’을 차지하고 개발해서 홍해 무역을 담당하는 항구도시로 만들었고 제2의 부를 창출합니다.

윤석전 목사: 다윗이 에돔에 적대감을 느낄 만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 소개해 주세요.

정중호 교수: 사무엘상 22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닐 때 놉(Noph) 땅에 이르러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갑니다. 그때 아히멜렉이 다윗과 그 일행에게 하나님 앞에 차려놓은 진설병을 주어 허기를 달래게 하고 그곳에 보관하고 있던 골리앗의 칼을 다윗에게 내줍니다. 이 광경을 에돔 사람 도엑이 봤습니다. 도엑은 이 사실을 사울에게 알렸고 사울은 화가 나서 놉 제사장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하나님이 세운 제사장을 죽이려고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습니다. 결국 도엑이 아히멜렉을 비롯해 제사장 85명과 그들 가족을 다 죽였습니다. 다윗이 이 일을 들었을 때 얼마나 분노했겠습니까. 그래서 에돔 사람을 무섭게 증오하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시편 137편 7절에 ‘유다가 해 받던 날을 기억하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에돔이 이스라엘 선지자에게 비난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택현 교수: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 바벨론은 북쪽에서 쳐들어왔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을 막고자 모든 국력을 북쪽으로 향합니다. 사해 남쪽에 있던 에돔이 바벨론과 협력을 맺고 남쪽에서 유다로 쳐들어왔습니다. 남쪽은 무방비지대였기에 유다로서는 지킬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을 때 에돔은 성전을 향해 ‘훼파하라’고 조롱했는데 당시 유다 백성에게는 매우 한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바벨론은 워낙 강력해서 대적할 수 없다 할지라도 에돔은 예전부터 이스라엘이 다스린 나라인데, 그들이 유다를 능욕하는 꼴은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아애가에도 “우스 땅에 거하는 자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잔이 네게도 이를찌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애4:21)며 에돔 땅과 자손에 적의를 드러내고, 오바댜서는 전체가 에돔 심판의 메시지로 이루어졌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다 멸망 후 에돔은 어떻게 됩니까?

오택현 교수: 유다가 멸망한 후 에돔이 유다인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바벨론을 도운 에돔은 헤브론 이남 지역을 할당받아 다스립니다. 헤브론은 조상 무덤이 있어 유다인에게는 역사적 장소입니다. 이 지역을 에돔이 다스리니까 유다 사람들이 더 심하게 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스몬 왕조가 들어서면서 힐카누스 1세가 이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그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강제로 할례하고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힐카누스 1세가 이 지역을 점령하기 전 500여 년간 에돔이 헤브론 남쪽을 점령하는 슬픈 역사가 유다에 남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헬라인은 에돔인을 ‘이두매’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헤롯왕이 이두매 사람이라는데 그럼 헤롯도 에돔의 후손입니까?

오택현 교수: 헤롯왕도 에돔 후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두매 사람 헤롯은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로마의 신임을 받고, 하스몬 왕조(B.C. 142~B.C. 63) 몰락 후 유다왕이 됐습니다. 성경을 보면 헤롯은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스몬 왕조가 이두매 사람들에게 실시한 강제 유다화 정책 때문입니다.

윤석전 목사: 수많은 사람이 핍박과 고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순교하며 복음을 전했기에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그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 역사의 생명을 충만히 품고 내일의 소망 속에 살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580호(2018-06-16)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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