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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전쟁에 팔 잃고도 ‘하나님 은혜’ 찬송가로 만들어
‘위대한 찬송가 작사가’
등록날짜 [ 2018년09월10일 11시20분 ]


<사진설명> [대니얼 웹스터 휘틀의 초상화]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대니얼 웹스터 휘틀(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목사는 1840년 11월 2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은행에서 근무하며 안정된 삶을 살던 1861년, 갑자기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국가관이 투철한 휘틀은 주저하지 않고 북군에 지원했다. 그는 군에 지원하자마자 전투에 투입됐고, 군에서 여러모로 인정을 받아 소령이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치열한 전투 중 포탄 파편을 맞아 오른팔을 잃고 포로로 잡혀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괴로운 마음으로 병상에 누워 있던 휘틀은 입대할 때 어머니가 건네주신 작은 성경책을 종종 펼쳐 보았다.

한쪽 팔을 잃은 뒤 만난 하나님
하루는 간호사가 휘틀에게 다가와 전쟁 중에 상처를 입어 사경을 헤매는 소년 병사가 구원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소년은 부상이 심해 죽음을 앞둔 처지였지만, 휘틀은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거절했다. 휘틀이 간호사에게 기도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한 이유는 성경은 읽었어도 아직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간호사는 매일 성경을 읽는 휘틀을 당연히 ‘크리스천’이라 여기고 죽어 가는 소년의 임종기도를 계속 부탁했다. 휘틀은 성경을 보며 위로받고 말씀에 공감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기도해 본 적 없었고, 더구나 소리 내서 기도하거나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휘틀은 병실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더듬거리며 자신이 지었던 죄를 회개한 후, 소년이 예수를 영접하도록 기도했다. 휘틀이 기도를 마치자 소년은 곧 세상을 떠났다. 기도를 마친 휘틀이 일어서서 그 소년의 얼굴을 보니, 조금 전까지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모르던 표정은 사라지고 아주 평안한 모습이었다. 이 일로 크게 감동한 휘틀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뿐인 팔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낙심하던 그에게 새로운 용기가 솟아났다. 소년이 운명하고 난 뒤 휘틀이 써 둔 찬송시가 있는데, 바로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다. 찬송시를 보면 휘틀이 받은 감동과 은혜가 고스란히 담겼다. 휘틀은 의지가 강하고 성품이 곧았으나 팔을 잃고 너무나 큰 상실감에 젖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졌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었다.

무디 전도단에 들어가 맥그라나한을 만나다
군 제대 후, 휘틀은 유명한 시계회사 엘진(Elgin)에 입사해 10년간 재무를 담당했다. 생활은 안정됐고 부족할 것 없는 윤택한 삶을 영위했지만, 영적으로는 메마른 일상이 반복됐다. 무언가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은데 그런 갈급함이 해결되지 않았다. 어느 날, 휘틀은 무디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집회에 참가했다. 그날 휘틀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나님 은혜를 체험했다. 그 후 무디 목사는 “전도단 부흥사가 되어 달라”고 휘틀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무디 목사가 2년간 설득하자, 휘틀은 회사를 그만두고 1873년부터 무디 목사와 함께 전도 사역에 뛰어들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충성했다.

휘틀은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찬송가가 설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디 전도단 찬양 총감독을 맡고 있던 필립 블리스(Philip Bliss, 1838~1876)와 함께 찬송가를 지었다. 그러던 중 1876년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블리스 부부가 찬양 집회를 하러 시카고로 이동하는 중 열차 추락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휘틀은 그곳에서 작곡가 제임스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 1840~1907)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제임스 맥그라나한은 당시 오페라계에서 매우 유명한 테너이자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는 휘틀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생애를 주님께 모두 바치겠다고 결심했고, 오페라를 그만둔 뒤 무디 전도단에 들어가 찬양사역자의 길을 걸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맥그라나한과 휘틀은 평생 찬송가를 함께 만드는 동역자가 됐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대니얼 웹스터 휘틀 작사, 제임스 맥그라나한이 작곡한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만남 속에 두 사람은 ‘빈 들에 마른 풀같이(172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400장)’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고, 평생 부흥사와 찬양사역자로 전도하며 충성하는 삶을 살았다.

휘틀은 한쪽 팔을 잃고 나서야 하나님을 만났고, 쓸모없다고 느낀 자신을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사실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했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직장생활 해서 여유가 생겼을 때 직장을 그만두고 목회를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보통 사람 같으면 한쪽 팔이 없다는 부끄러움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휘틀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해 이루었다. 하나님께서는 휘틀을 단련하셨고 휘틀은 순종했기에 심금을 울리는 찬송시로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어려움과 아픔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피 쏟아 죽어 내 죄를 구속해 주시고 매 순간 함께하시며 나의 길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찬양하며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은혜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교회신문 591호(2018-09-08)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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