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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19)] 고대~중세 이르는 역사적 흔적 가득한 ‘다메섹’
시리아편
등록날짜 [ 2018년09월10일 18시12분 ]

교역·교통 중심지였던 세계 최고(最古) 도시
구약 시대 아람 왕국의 신 ‘하닷’신전 자리에는
이슬람 최고의 사원 ‘우마이야 모스크’ 건립
사원 안에는 ‘침례 요한 머리무덤교회’ 있어
메카 다음가는 성지로 늘 경배자들 붐벼


윤석전 목사: 신약 시대에 바울 회심 사건이 일어난 다메섹. 구약 시대 아람 나라 장군 나아만이 생각납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자기 병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 제자를 시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고 가라고 했고, 나아만 장군은 불평했지만 선지자의 말씀대로 따라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아람 나라의 수도 다메섹으로 가 보겠습니다.

지금은 다마스쿠스(Damascus)라고 부르는 다메섹. 현재는 그 어디에도 성경 시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분명 아브라함의 훌륭했던 종 엘리에셀 등 성경 속 인물들의 고향이었다. 또 아람 왕국의 수도이자 비단길(Silk Road)의 기착지로 거대한 부(富)를 축적했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다메섹에 있는 두 강, 아마나강과 바르발강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두 강이 공급하는 풍부한 물이 있었기에 다메섹은 농업과 상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바르발강은 아람 왕국의 수도 다메섹의 자랑거리였다.

<사진설명> [아마나강]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을 들은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다메섹에 있는 아마나강과 바르발강이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더 낫지 아니하냐고 분노한 사건에서 언급한 다메섹의 두 강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작지만, 이 강이 오아시스를 만들어 본래 사막뿐이던 다메섹에 사람이 거주할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윤석전 목사: 다메섹, 즉 다마스쿠스는 어떤 도시인가요?

오택현 교수: 다마스쿠스는 교통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이집트로 가는 ‘비아 마리스(Via Maris)’라는 바닷길과 랍바를 지나 홍해까지 연결되는 ‘왕의 대로’가 출발합니다. 고대(古代) 주요 도로 두 개가 출발하여 고대 교역과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것을 실증해 주는 자료로 시리아 북부 도시 ‘에블라’에서 발굴한 문서에 따르면, 다메섹과 B.C. 2000년 이전부터 활발히 교역했다고 합니다. 이런 증거들을 볼 때 다마스쿠스는 고대 교역의 중심지였고 상업도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위)비단길(Silk Road) (아래)해변도로와 왕의 대로] 다메섹은 장안에서 시작되는 기나긴 비단길의 기착지여서 거대한 부(富)를 축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메섹은 이집트로 향하는 고대(古代) 주요 도로인 ‘왕의 대로’가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여 고대 교역과 교통의 중심지이며 상업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윤석전 목사: 다메섹을 구약 역사에서는 어떻게 말하나요?

오택현 교수: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이고, 이스라엘을 적대했던 도시로 나옵니다. 다윗은 다메섹을 정벌하자 사람 2만 2000명을 죽이고, 남은 자를 종으로 삼아 다메섹 사람들이 그에게 조공(朝貢)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삼하8:5~6). 다윗이 다메섹을 다스렸지만, 이스라엘의 세력이 약해지면 다메섹은 다시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다윗이 죽고 난 후 솔로몬 시대에는 르손(재위 B.C. 940~B.C. 732)이라는 사람이 시리아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정복하려 했습니다. 그 정도로 다메섹은 이스라엘을 적대했던 도시라고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방금 말씀하신 내용을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우택주 교수: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려고 가신(家臣) 318명을 거느리고 다메섹 호바까지 쫓아갔습니다(창14:14~15). 유다 남쪽 헤브론에서 시리아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갔다는 것은 조카 롯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성경에서는 다윗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세계사로 보자면 다메섹 중심의 아람 나라가 더 강대국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이 아람을 정복하고 다스렸던 이야기가 많지만, 실제 영토나 교역량을 보면 이스라엘보다 아람이 훨씬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람이 다윗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을 다스리려고 노력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나아만 장군이 왕의 친서를 가지고 이스라엘에 왔을 때 왕이 벌벌 떠는 걸 보면 아람의 위세가 대단해 보이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오택현 교수: 다윗왕 때는 이스라엘의 힘이 막강해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역사 전반적으로 아람은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다윗이 죽고 난 후 B.C. 9세기에는 북이스라엘보다 아람의 위세가 훨씬 더 높았습니다. 아람의 위세에 이스라엘 왕이 무서워할 정도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왔을 때, 아람이 별 볼 일 없는 나라였다면 이스라엘 왕이 무시했겠지만 이스라엘 왕은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왕하5:7)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로써 아람이 북이스라엘보다 힘이 훨씬 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아람 왕국(시리아)의 전성기 지도] 아람 왕국은 하사엘왕의 통치 기간(B.C. 842~800)에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 때 아람은 아시리아의 침략을 막아 내고,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여 이스라엘 왕 요람을 상하게 하였으며(왕하8:28), 예후왕 때는 요단 동편 ‘아로엘’에서 ‘길르앗’과 ‘바산’까지 침략해 왔다(왕하10:32~33). 요아스왕이 유다를 다스리는 동안에는 ‘가드’를 점령해 예루살렘을 위협했지만 요아스의 조공을 받고 물러났다(왕하12:17~18).

윤석전 목사: 아람이 그만큼 강대국이었기에 일개 장군이 한 나라 왕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겠지요. 다시 다메섹으로 가 보겠습니다.

다마스쿠스, 즉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이며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다메섹은 관광객들로 넘친다. 덕분에 재래시장엔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통 수공예품을 비롯해 수많은 상품이 다메섹 경제를 살찌우는 주요 수입원이 된다. 다메섹은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역사적 흔적이 가득하다. 비잔틴 시대 성벽은 물론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 곳곳에 산재(散在)해 있다. 그중 아람 시대의 하닷 신전과 궁이 묻힌 곳에 세워진 우마이야 모스크는 이슬람 역사의 기념비적 첫 건축물이며, 메카 다음가는 이슬람 신앙의 중심지다. 구약 시대 이곳은 아람의 신 ‘하닷(Hadad)’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슬람 신앙의 거점이기에 모스크는 예배자들로 붐빈다. 내부는 각종 기하학 문양들로 장식돼 있는데 그 동편엔 침례 요한의 머리 무덤이 있다. 우마이야 모스크는 이슬람의 기도처이며 종교 교육장이다. 이 건물의 깨끗이 깎인 원형 기둥들은 당시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 준다. 지금은 모슬렘 신앙을 든든히 받치고 있는 이곳. 하지만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림몬(태풍의 신, 하닷)의 당’으로 칭했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했다.


<사진설명> [우마이야 모스크] 구약 시대 아람의 신 ‘하닷’의 신전 자리에 세워진 이슬람 역사의 첫 기념비적 건축물이며 메카 다음가는 이슬람 신앙의 중심지이기에 경배자들로 붐빈다. 건물의 깨끗이 깎인 원형 기둥들은 당시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 준다.


<사진설명> [침례요한 머리무덤교회] 우마이야 모스크 내부에 있다. 침례요한의 머리가 이곳에 있는지 여부와 어떻게 이곳으로 옮겨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의미가 깊은 곳이어서 많은 기독교인과 침례요한을 이슬람의 선지자로 여기는 모슬렘의 성지가 되고 있다.


윤석전 목사: 신약 시대에 오면, 다메섹은 남아 있었지만 아람은 사라졌습니다. 아람이 언제부터 쇠퇴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오택현 교수: 아람은 B.C. 8세기 초반부터 세력이 약해집니다. 열왕기하 14장 28절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여로보암 2세(재위 B.C. 793~B.C. 753)가 다메섹을 점령했습니다. 다윗왕이 이 지역을 점령한 다음, 이스라엘이 상당히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 지역을 점령한 것입니다. 다메섹을 점령했다는 사실은 교역 중심지를 점령했으니 이스라엘이 상당한 부(富)를 얻을 여건을 갖췄다는 의미입니다. 그 덕분에 여로보암 2세 때 상업이 크게 발전하여 북이스라엘은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를 공평하게 나누지 못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해 아모스 선지자가 말씀을 외쳤습니다. 또 여러 나라와 문화·문물을 교역하면서 이방 종교가 들어와 우상숭배가 만연했습니다. 이때 활동한 선지자가 호세아입니다. 문화와 문물의 활발한 교역이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죽고 난 후 다메섹에 르신(Rezin)이라는 왕이 일어납니다. 르신은 반(反)아시리아 동맹을 결성하려고 북이스라엘과 연합해 아시리아에 대항하지만, 이 사건 때문에 B.C. 732년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멸망합니다. 그 뒤 이 지역을 다스렸던 아시리아→바벨론→페르시아→ 헬라→로마는 아람이라는 나라보다 다메섹이라는 도시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메섹은 이후에 다스리는 나라에서도 교역 중심 도시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사진설명>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멸망] B.C. 854년 아시리아 살만에셀 3세는 다메섹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을 필두로 한 반(反)아시리아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다. 아람은 이 전쟁 탓에 힘을 잃고 쇠퇴를 거듭하다 B.C. 732년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고 멸망한다. 이후 아시리아는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에돔을 넘어 애굽(이집트)까지 세력을 확장한다. 남유다는 B.C. 701년에 예루살렘이 포위당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성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윤석전 목사: 아람 나라는 모든 것이 특출해 이스라엘 왕이 떨 만큼 대단한 강대국이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지금도 세계 강대국입니다. 유다는 수많은 나라가 치려 할 때 어느 나라에 도움을 청할까 고민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이 강할 때도, 쇠약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쇠약해져 아람처럼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유다와 같이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여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신문 591호(2018-09-08)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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