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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추수감사절 축복대성회 윤석전 담임목사 설교 요약] “주여,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등록날짜 [ 2018년10월11일 10시42분 ]

마귀는 곧 ‘시험하는 자’라고 했으니 시험 들면 마귀 지배하에 놓이는 것

신앙생활 가장 기초인 예배 무시하고 당장 급한 육적인 일만 우선하는 것이 영혼의 때를 망각하고 시험에 든 태도

돈·권력 가지려는 욕심도 마귀의 시험지나친 이기주의로 주변 돌아보지 않고 ‘우리’가 없는 독불장군도 시험에 든 자

내가 남 용서할 때 하나님도 나 용서해 시험 이길 힘은 내게서 생산되지 않고  철저하게 기도할 때 주님께서 공급하셔



<사진설명> 추수감사절 축복대성회가 추석 연휴를 맞아 9월 23일(주일)부터 26일(수)까지 3박 4일간 열려 서울은 물론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 등 전국에서 목회자와 성도가 대거 참석했다. 윤석전 목사는 총 7회에 걸쳐 성령의 감동에 따라 설교 말씀을 전했고, 추석 연휴를 세상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드리고자 모인 성도들도 주 안에서 하나되지 못한 지난날을 눈물로 회개하고 말세지말인 이때 시험에 들지 않으리라 결단했다. 강문구 기자


마귀의 세 가지 시험
9월 24일(월) 저녁


마귀는 시험하는 자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이유는 자기 것으로 지배하려는 것이다. 시험 들었다는 말은 마귀의 지배 아래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험 듦’의 정체를 바로 알아서 절대로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한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께 와서 시험했다.

첫째 시험은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

먹고사는 것, 육신적인 일을 먼저 생각한 후에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 영적인 일을 우선하지 못하는 자체가 시험 든 것이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인 ‘예배’를 종교 의식쯤으로 여기고 경홀히 대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못하는 것도 시험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 피의 공로에 의지해 죄를 회개하는 순간, 내 영혼은 그 피의 생명으로 살게 됐고, 성령께서 친히 내 안에 오셔서 나와 함께 영원히 사신다. 우리는 땅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늘나라 가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 내 본질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복이다(마5:3). 그런데 이것을 복으로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영혼의 때를 망각한 채 누리는 사치·향락, 부귀영화는 복이 아니라 저주다.

둘째 시험은 ‘성전에서 뛰어내려 하나님 말씀을 시험하라’는 것.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하나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되, 천국 가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상관없는 자는 이미 시험 들었다. 시험 들었다는 말은 ‘속았다’는 것이다. 시험하는 자는 하나님 말씀이 우선인데도 떡을 우선하게 속인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데, 시험해 보고 믿으라고 속인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왜 하나님 말씀을 시험해 보고 믿으려 하는가. 마귀의 지혜를 능가하는 성령의 지혜가 있어야 마귀역사를 알고 보고 이길 수 있다. 마귀역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를 그렇게 살지 못하게 악착같이 가로막고 방해한다. 마귀는 최악의 경우를 만들어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원망하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하나님은 병 주고 약 주는 분이 아니다. 마귀에 속아 하나님을 원망하면 시험 든 자다. 원망하려면 마귀역사를 원망해야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셋째 시험은 ‘내 앞에 절하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것.

물질에 굴복하고 절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하나님께 인색하고 거지에게 동냥하듯 예물 드리는 자는 돈에 시험 든 것이다. 돈은 창조자 하나님을 위해 써야 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딤전6:10). 물질문명은 우리를 믿음에서 끌어내는 적(敵) 중의 적이다.

빛이신 주님 앞에 와야 시험 든 것을 안다. 진리이신 주님 앞에 와야 거짓이 드러난다. 생명이신 주님 앞에 와야 사망이 파괴된다. 거짓과 사망과 어둠에 시험 든 자여! 빛을 보고 나오라, 진리를 보고 나오라, 생명을 보고 살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9월 25일(화) 오전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해야 할 관계는 예수님과 나의 관계다. 성령과 나의 관계다. 하나님 말씀과 나의 관계다. 이 관계가 소원하면 우리 육신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섭섭해 하신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직접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경고를 받고도 무관심하면 최후통첩을 하시고, 그 경고에도 귀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손을 떼셨다. 그 순간, 수많은 내란과 외침을 당해 고통이 오고, 전쟁에 져서 노예가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세워 주셨다. 지금은 성령께 감동된 담임목사의 설교를 통해 경고를 계속하신다. 그런데도 그 경고를 무시할 때, 뒤따르는 영적 손실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재림하시는 날 분명히 왼편과 오른편을 가르시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지금도 여전히 교회에 나오니까 자신은 시험에 들지 않았다고 오해하는 자가 많다. 지나친 이기주의로 ‘우리’가 없고 독불장군인 사람이 ‘시험에 든 자’다. 자기 주변 사람을 살피고 먹이며 책임지는 사랑으로 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가 아니다. 말로는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하지만, 행동으로는 이웃의 죄를 사해 주거나 용서해 준 적이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마6:12) 이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죄를 사해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우리 죄를 서로 사하지 못할 때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 예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과 십자가에 흘린 그 피의 특성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 피의 특성은 서로 사랑해서 살려 내는 것이다. “나는 죽더라도 너만은 살아야 된다”는 주님의 정신이다.

주님께서 우리 같은 것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셔서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어 버리고 생명을 주셨다. 주님이 주신 생명력이 있을 때 남을 용서하고 교회를 떠난 사람도 다시 데려오며 지치지 않고 ‘우리’를 만들어 낸다.

내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다. 나를 용서해준 주님의 피가 내 안에 흐르고 있다면, 거룩해진 내 안에 성령이 계셔서 하신 일이다. 이런 자가 예수 안에 있는 자요, 시험에서 벗어난 자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저지른 줄 알면서도 먼저 용서하셨다. ‘우리’를 만들지 못한 자에게 먼저 찾아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



서로 용서하여 ‘우리’를 이루라
9월 25일(화) 저녁


세상 사람들은 조금 서운해도 금방 풀어지는데 교회 안에서 성도끼리 상처받으면 왜 그리 용서하기 어려운가. 음부의 권세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우리’라는 에클레시아(교회)를 파괴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얼마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2) 하신 말씀은 제한없이 용서하라는 의미다. 예수는 아담의 원죄를 비롯해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할 때 무조건 사해 주셨으니 너희도 그렇게 서로 용서하라는 뜻이다.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해 ‘우리’를 이루지 못한 자가 어떻게 자기 죄는 용서해 달라고 하겠는가. 태어날 때부터 죄, 사망, 저주, 지옥의 노예였던 ‘나’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내 죄를 사해 주셨다. 그런데 내게 죄지은 자를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시겠다는 것이다. 남을 용서하지 못해서 지옥 간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나.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남의 죄를 용서하라.

말만 조심해도 수많은 영혼을 살릴 수 있다. “혀는 불”(약3:6)이니 말로 상처 주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남의 말도 하지 말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시험 들었다면, 음부의 권세에 지배받은 것이다. 성령이 사용할 때만 살리는 혀가 된다. 남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남의 말을 하고 남을 헤아리면, 하나님 자리에 앉은 죄로 하나님과 ‘우리’가 파괴되고, 이웃과 ‘우리’도 파괴된다.

예물을 드리려다가도 먼저 형제와 불목한 점을 해결하라고 했듯(마5:23~24) 하나님은 누군가와 맺힌 자가 드리는 헌금은 받지 않으신다. 이웃 관계에서도 ‘호리(毫釐, 터럭)’라도 남김없이 갚지 않고는 결단코 죄에서 못 나온다. 마귀는 싸워 원수 만들고 둘 중 하나는 교회에서 나가 다시는 풀 수 없도록 만드니 교회에 있을 때 즉시 풀어야 한다.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면 시험 들어 있는 줄 알라. 용서를 못 한다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망각해서 그런 것이다. ‘내가 남의 죄를 용서해야 내 죄를 용서받는다’는 선결 조건을 망각하지 마라. 우리에게는 용서할 능력이 없다. 용서할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용서 못 한 죄에 걸려 시험 든 자가 되어 지옥 가지 말고 하나님 아들의 죽음으로 속죄받은 크나큰 기쁨으로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



기도하는 자가 시험을 이긴다
9월 26일(수) 저녁


온유한 자가 신앙생활에 승리한다. ‘온유’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성령이 어떤 감동을 주시든지, 교회가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으로 어떤 행동이나 결심을 요구하시든지 내 평생 큰 명령으로 듣고 거역할 의사가 전혀 없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온유한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고 반드시 천국 간다. 하지만 마귀역사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 말씀, 성령의 감동, 주님의 몸된 교회의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온유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블로스’. ‘디아’는 분리되었다는 뜻이요, ‘블로스’는 망각했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기미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내 육신에 어떤 일이 있어도 삼위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 시험 든 자여, 하나님 말씀은 내가 사는 생명임을 절대적으로 인식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

시험 들어서 주님과 갈라진 사람은 교회에서 자기가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직분을 맡아 놓고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혼 섬김과 예배와 충성에 관심이 없다. 이미 주님과 갈라지고 몸만 예배당에 와 있다. 직분을 맡겨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은 시험 든 것이다.

내 힘으로는 절대 직분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힘으로만 할 수 있다. 우리는 맡겨 주신 직분을 수행하느냐 마느냐 말할 자격이 없다. 오직 나를 피로 사신 분이 맡겨 주셨으면 그냥 시행하면 된다. 생명의 힘으로 해야 한다. 그 힘을 상실하면 주님과 분리된 자다.

성도여, 시험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기도하지 않는 자체가 시험 든 것이다.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떻게 타락했는지 철저히 깨닫고 기도하고 회개하여 예수 안으로 들어가자. 예수 피의 공로를 망각하지 말자. 빨리 생명 없는 송장 같은 무능에서 벗어나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 목소리의 힘으로 영적생활 해야 한다. 처음 사랑을 다시 회복하라. 교회의 기능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힘은 오직 기도에서 온다. 온 맘 다해 기도하자. 성령으로 기도하자.



/박찬미·심혜민·이연희·조신애 기자



 

교회신문 594호(2018-10-06)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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