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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영적 생활1·23] 신앙생활의 열정 도둑질하는 마귀
등록날짜 [ 2018년10월22일 11시43분 ]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을 때는
신앙생활 잘하리라 다짐하지만
교회 나서자마자 사라지는 모습은
마귀에게 열정을 빼앗겼기 때문

죽어 버린 신앙생활은 감각 없고
영적인 유익 손익계산 하지 못해
속히 깨닫고 회개로 빠져나와야

 

신앙생활의 열정
예전에는 소매치기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사람들의 시계를 훔쳐 가고 만년필을 훔쳐 가고 금목걸이를 훔쳐 갑니다. 시계도 건드리면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그렇게 시계를 건드리는 놈이 따로 있고, 소리 지르는 놈이 따로 있고, 뒤에서 집어가는 놈이 따로 있습니다. 만년필도 언제 가져갔는지 모르게 없어집니다. 목걸이도 언제 따 갔는지 모르게 툭 따 갑니다. 집에 돌아와서 보면 시계도 없고 만년필도 없고 목걸이도 없습니다. 다 소매치기 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잃어버린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울기도 합니다. 힘들게 돈 벌어서 옆 사람 주머니에 털어 넣으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소매치기당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해 보겠다는 구체적인 각오들을 하나하나 빼앗기고 결국 영적인 빈털터리가 되었는데도 속상한 줄 모르고, 억울한 줄 모르고, 분한 줄 모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데 교회를 나가면서 그 마음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모르고 억울한 줄 모릅니다. “기도합시다!”라는 설교를 듣고 기도하려고 했던 마음이 교회를 나서자마자 빼앗겨 버려도 하나도 아까운 줄 모르고 분한 줄 모르고 억울한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무런 안타까움이 없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행28:26)라고 했습니다.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빼앗긴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 곧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엡6:12). 마귀는 어두움으로 공격합니다. 그 싸움에서 이겨야 주님 앞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마귀는 내가 죄를 범할 때마다 “네가 아무리 교회 와서 예배 드린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면서 농락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내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을 식혀 버립니다. 우리는 세상에 가서 내 신앙의 열정이 식으면 안 됩니다. 항상 내 안에서 그 열정이 넘쳐야 하는데 계속 세상에게 나를 빼앗기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됩니다. ‘나도 옛날에 기도 많이 해 봤어. 나도 한때 저런 때가 있었는데, 나도 저렇게 해야 되는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일상생활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무엇에 가로막히고, 무엇의 방해 때문에 예전처럼 뜨겁게 신앙생활 할 수가 없습니까? 무엇에 그 마음을 빼앗겼습니까?

마귀는 항상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충성하고 신앙생활에 전력을 쏟는 마음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도둑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돈은 빼앗길지라도 영적생활의 열정은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을 빼앗기는 것보다 신앙생활의 열정을 빼앗기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믿음을 빼앗기는 것은 엄청나게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이것을 빼앗겼거든 속히 찾아야 합니다.

영적인 손익계산
외국에 나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여권이 잘 있나 계속 가방을 열어 확인합니다. 외국에서 여권은 신분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것이므로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은 어떻게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다졌던 영적생활에 대한 각오를 얼마나 인심 좋게 순간에 다 내줍니까?

영적으로 병든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영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조금만 어디 아프거나 병이 들면 대번에 압니다. 때리면 아픈 줄 알고, 좋으면 좋은 줄 알고, 잘 먹으면 배부른 줄 알고, 좋은 옷 입으면 멋있는 줄 아는 것이 육신입니다.

그런데 정작 절대 병들어서는 안 되고, 좌절해서는 안 되고, 나태해서는 안 되고, 게을러서도 안 되고, 가장 마음을 쏟아야 할 신앙생활을 잘 못하고 있으면서 본인이 그것을 모릅니다. 이 큰 문제를 본인이 문제 삼지 않습니다. 본인이 도무지 문제 삼지 않으니 영혼을 맡은 목사가 문제를 삼습니다.

“너 왜 신앙생활을 잘 못하니?”라는 말은 목사가 문제를 삼듯 빨리 자신도 신앙생활의 문제를 발견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예배에 늦게 오거든 “왜 예배에 늦게 오느냐?”고 야단을 쳐야 하는데 당사자는 아무런 자책이 없으니, 목사가 “왜 그러냐! 정신 차려라! 그러지 말아라!” 하고 문제를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목사님은 내 환경도 모르시면서 왜 저렇게 말씀하시는지 몰라”라고 오히려 야단맞는 자신을 대변하고 나섭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잘하겠습니까?

죽은 신앙생활은 감각도 없고 영적 유익에 대한 손익계산도 할 줄 모릅니다. 송장은 목을 아무리 졸라도 답답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송장에 아무리 상처를 내도 아프다고 하지 않습니다. 송장이 무시당한다고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자기 명예가 훼손당한다면, 이를 뿌드득 갈면서 배상을 받으려고 어떻게든 법적 조치를 취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영원히 큰 신앙생활은 마귀역사에, 육신의 소욕에 엄청나게 짓밟히고 있으면서도 억울한 줄 모르고, 분한 줄 모르고, 속상한 줄 모릅니다. 어떻게 이 사람이 영적으로 산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영적으로 둔한 사람일수록 육신을 위한 손익계산은 아주 빠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다 그대로 놔두고 참을 수 있어도 신앙생활만큼은 잘 못하는 나를 그냥 놔두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을 무섭게 질책하고 야단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

 

교회신문 596호(2018-10-20)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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