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용서하는 자가 얻는 축복 (下)

등록날짜 [ 2022-08-10 17:07:12 ]

예수께서는 사람과 사이 허물

용서해야 용서받는다고 하셔

땅에서 풀고 매인 것이 없어야

하나님과도 형통한 복을 얻어



좋은 인간관계는 사회생활에서 필수 요소입니다. 그래서 ‘처세술(處世術)’에 관한 책은 서점에서 판매순위가 매우 높습니다. 유튜브에서도 성공한 인물에게 배우는 처세술에 관한 동영상이 인기입니다. 사람들과 원만한 사이를 유지해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높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기 원하지만, 이해득실을 따지다 보면 사람들 가운데 갈등과 다툼은 늘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에서도 교우들과의 사이가 어긋나면 그 사람과 마주하기 불편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혈기로 분출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신앙생활 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과 어그러진 죄의 역사로 교회를 허물고, 하나님과의 사이를 파괴하는 배후에는 음부의 권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면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천국 열쇠로 사람들과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얽매여 있는 모든 결박을 풀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의 용서에 대한 가르침 후에 베드로는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용서를 일곱 번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예수께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마18:21~35).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임금에게 탕감받아 놓고도,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나타나자 자기가 탕감받은 것처럼 용서를 베풀지 않고 도리어 돈을 갚으라며 옥에 가둡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이 노하여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다시 불러 탕감한 것을 취소하고 다시 갚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죄 사함받고 영원한 천국을 주신 은혜가 내 안에 충만하다면,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은혜를 베풀어야 하나님께서 주신 평강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사단 마귀 궤계가 틈타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자로서 우리도 똑같이 그 사랑의 은혜를 나누는 것이 성경에는 ‘용서’라는 단어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정말 잘못한 일을 회개하며 죄를 들고 나온다면 용서하라는 의미입니다. 인본주의적으로나 억지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죄의 은혜가 충만하기에 서로 죄를 용서하는 열린 사이가 되어 이 땅에서 풀어야 하나님과의 사이도 풀어집니다. 내가 풀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사이도 매여 있어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혹시 내 주위의 사람과 풀지 못한 일이나 누군가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모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해결받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하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그냥 말로 죄가 없어졌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예수께서 직접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에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깨닫습니다. ‘내 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만큼이나 무서운 죄였구나. 이 죄를 해결받을 수 있는 방법이 이 땅에서는 전혀 없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 ‘내 죄가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실 만큼이나 큽니다’라고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큰 은혜를 받았기에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고, 죄를 해결해야 하기에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의 사이에서 용서를 구할 때 저 사람이 나한테 아직 서운함이 남아 있는데도 ‘나는 이미 회개했으니 용서해 주겠지’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나 때문에 해를 입은 자가 충분히 마음을 풀도록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며 마음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용서해 주어야 할 입장이라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과연 용서해 주고 싶으실지 생각해 보십시오. 돌아서면 죄짓고 또 죄지으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우리 인간들, 심지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도 우리 죄 때문에 죽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를 용서해 주고 싶으실까요? 이 세상 어떤 부모가 내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이 죽었다면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그 심정을 가지고 남이 용서를 구할 때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죄를 소멸하는 방법은 남이 용서를 구할 때 그 용서를 받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인격과 성품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 신앙생활이요,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내가 과연 용서했는지를 살펴볼 때 내게 예수의 심정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이 몰라서 그렇사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23:34). 그들이 죄를 해결하지 못해서 지옥 갈까 봐 긍휼히 여긴 예수처럼 우리도 죄를 고하지 못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용서해 달라고 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용서하였듯 우리도 그렇게 용서하면서 사람 사이에 죄의 담을 헐어 버리고 하나님과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버려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서로 죄를 고하며 용서하여 이 땅에서 모든 것을 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처세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영적생활에 있습니다.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고 처세에 능한 사람입니다. 인생은 짧고 내 영혼이 살아갈 영혼의 때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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