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생명

등록날짜 [ 2020-06-20 10:40:21 ]

베드로전서 1장 18~25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예수의 피를 망각한 모든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내 심령에 예수의 피가 강물을

이루게 하시고 내 가정에 예수의 피가

바다를 이루게 하시고 우리 교회에

예수의 피가 넘치게 하소서. 


인류를 지옥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류 영혼을 죄와 사망의 법 아래 고통받게 될 견딜 수 없는 저 불타는 지옥에서 구해 천국을 유업으로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피 쏟아 죽게 할지라도 나와 여러분의 영혼만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살리고자 양보도 후회도 없으시고, 아들이 피땀을 쏟아내며 몸부림쳤던 겟세마네의 절규마저도 초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당할 고통을 알고 있었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흐르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기까지 심한 통곡과 눈물로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사랑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순종할 수밖에 없기에 ‘아버지의 소원이 저를 대신 죽여서라도 인간의 죗값을 갚아 그들의 영혼을 살리기 바라신다면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자식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셨을까요.


주가 흘리신 피의 가치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보배로운 생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압제 아래 고통받던 노예생활에서 양의 피를 볼 때 빠져나온 것처럼, 죄와 저주와 사망과 마귀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던 우리 영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볼 때 다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될 것입니다(요8:32).


마귀의 일은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인간을 죄짓게 해서 지옥 보내는 것인데, 하나님 아들이 와서 피 흘려 죽는 순간 사망의 세력이 무효로 됐습니다. 또 예수가 부활하시는 순간, 죄 없는 예수를 죽인 마귀는 결박당했고, 예수 이름의 권세가 천하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중심으로 일어난 엄청난 사건입니다. 본문은 죄의 결박에서 해방되고, 저주의 결박에서 풀어지고, 지옥 가기로 작정된 자가 다시 살아 영생과 천국을 유업으로 얻게 된 사실이 금이나 은이나 이 세상 어떤 값진 것을 주고도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임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신앙생활을 왜 그렇게 잘못하십니까?”라는 말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왜 그렇게 무시하십니까?”라는 의미입니다. 마귀 사단 귀신의 손아귀에서 영원히 저주받아 지옥에서 고통당할 자가 천국에서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영원히 누릴 존재가 됐다고 할 때, 자유를 얻은 자는 얼마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어차피 썩어 없어지고, 죄 아래서 멸망하게 될 가치 없는 존재인데, 예수 피의 생명으로 최상의 가치를 가지도록 대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인류 구원에 마음을 쏟았으면 자기 아들을 죽게 하고, 그 아들은 얼마나 인류 구원에 마음 쏟았으면 자기 피를 흘려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들을 죽여서 피 쏟아 준 만큼,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 쏟아서 그 생명으로 살게 한 만큼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자신을 쏟아붓고 있습니까? 그 피에 감사해서 내 인생 다 바쳐도 부족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앙생활에 마음 쏟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잘하면 육신에 손해가 오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손해 입는 만큼 영적으로는 유익하고, 유익을 따지기 전에 내가 받은 구원은 이미 손해를 초월한 영원한 것입니다. 어떻게 육신을 가지고 예수 믿는 일에 잣대를 대고 손익을 계산합니까. 주가 흘리신 피의 가치를 아는 만큼 신앙생활 잘하고, 모르는 만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피 붙잡고 회개할 때 반드시 죄사함 받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의 피를 보게 하심은 그들이 양처럼 죽어야 할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절대적 피에 대한 관심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할 때마다 짐승의 피를 흘려 하나님께 보이면서 짐승이 피 쏟아 죽은 것이 곧 자신의 죽음이라 여기고 뼈아프게 회개하여 죄로 올 저주와 죽음을 면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회개도 ‘하나님 아들의 죽음만큼이나 내가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네 죄는 너무 악하고 잔인해서 용서 못 하겠다”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이 아들을 죽게 해서 흘린 피는 헛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반드시 속죄함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옛날에 너무 큰 죄를 지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용서해 줄 것 같지 않아서 회개하고 또 회개해도 마음이 시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을 때 예수의 피는 내게 아무 소용이 없지만, 회개하는 순간에 그 피는 내 죄를 도말하고 그 피의 생명이 내 안에서 넘쳐나게 되니, 그 피의 힘으로 죄를 이기고 피의 힘으로 정욕을 이기고 피의 힘으로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내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다’라고 생각하도록 마귀는 참소합니다. “네가 그렇게 큰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쉽게 용서하시겠느냐?” 고의로 하나님을 속이려고 지은 죄악은 쉽게 용서 안 하실 수 있지만, 성령 훼방 죄 말고는 어떤 죄든지 예수의 피를 붙잡고 회개할 때 반드시 속죄받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피의 효력을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을 인정하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진실하게 회개할 때 죄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아들의 피를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서, 가장 최고의 것으로 인정하기 위해서 동(東)에서 서(西)가 먼 것처럼, 내 등 뒤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 죄과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자 하십니다.


예수 살과 피 말고는 어떤 양식도 참된 양식 아냐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에게만 예수로 주신 생명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3~55).


아담 때부터 죄 아래 이미 죽어 지옥 갈 자인 우리 영혼은 생명이 끝나 버렸으나,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그 살과 피를 주어 하나님 아들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에, 그 육신은 영생하는 말씀이요 그 피는 영생하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서 내 영혼이 살려고 하는 영적 생활입니다. 영혼의 때에 영광스럽게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 말고는 세상의 어떤 양식도 참된 양식이 아니요, 어떤 음료도 참된 음료가 아닙니다. 이 땅의 어떤 고량진미를 먹어도 내 영혼을 살리는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지옥 가는 영혼에 예수 피 알려 살리려 전도해야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심령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여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자 하십니다.


가인이 잘 익은 곡식을 가져다 제사해도 하나님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아벨이 양을 잡아 피를 쏟아 제단에 붓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제사할 때, 그 피를 보신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그 피는 ‘내가 이 양처럼 죽어야 할 죄인이요’라는 뜻이고, 또 ‘앞으로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실 구원주가 와서 이렇게 죽을 것입니다’라는 예표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예배하는 목적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예수의 피를 내 안에 모시고, 진심으로 그 피를 내놓고 드리는 예배는 생명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있기에, 영원히 죽어야 할 자가 살았기에 감사하며 드려야 합니다.


병 고치고, 복 받고,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배드린다면, 모든 문제는 피로 해결되는데 하나님의 관심사인 피가 없으면 무슨 일이 해결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왜 그렇게 열심히 순종하고 충성합니까?” “저는 원래 성격상 거절을 못 해서요”, “저는 그 일에 달란트가 있어서요”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 없는 순종이요 충성입니다. “당신은 왜 전도합니까?” “교회 빈 자리를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한다면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 없이 사람을 모으는 일일 뿐입니다. “당신은 왜 감사합니까?” “육신이 건강하니 감사합니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서 예배드릴 조건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네 속에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의 피가 있느냐, 내가 너를 위해서 목숨을 대속물로 준 구속의 은총의 증거인 내 아들의 피가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자의 순종과 충성과 전도와 감사와 예물로 드려지는 신앙생활의 모든 행위에서 자기 아들의 피에 젖은 감동을 보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피에 감동되어서 순종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이 피를 몰라 지옥 가는 영혼에게 예수의 피를 알려줘서 살리려고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의 피의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피의 은혜 때문에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이라도 아들 예수의 피를 가진 자들을 멸시할 수 없는 절대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인류를 사랑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생명이기에 하나님 앞에 아들이 소중한 만큼, 아들의 피를 가진 사람도 소중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피를 가진 자가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오직 예수의 피여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내가 예배 잘 드려서 복 받아야지, 예물을 잘 드려서, 열심히 충성해서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게 만들어서 복 받아야지’라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는 다 ‘내가 복을 받겠다’라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하나의 종교 생활일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부 하나님 아들이 흘리신 피를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여 죗값인 사망, 곧 죽음을 예수의 피로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로 주신 은혜에 감동이 없는 자는 죄로 죽은 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知)·정(情)·의(意)로 형성된 인격을 주셨습니다.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피’라는 지식을 가질 때, 어떻게 감성에서 감사가 터져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 감사 때문에 순종하고, 충성하고,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 위해 피 쏟아 죽으신 분을 위해 살아야겠다’라는 각오와 결심의 의지가 발동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인격이라는 말입니다. 예수의 피에 젖지 않은 신앙생활은 신앙 인격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기분 나빠도 ‘교회에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네’라고 불평합니다. 예수는 당신을 마귀 사단 귀신에게서 저주와 사망과 지옥에서 건져 주셨지 힘들게 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 피를 망각한 자들이 변덕 부리고, 시험 들고, 교회를 욕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직분도 그만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단 한 번도 예수가 나를 사랑하신 피의 공로를 뜨겁게 만나 본 사실이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예수 피의 공로를 만났다면 양심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피의 공로는 내 신앙 양심을 가장 복되게 살려내고, 신앙 인격을 바로 세워 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무리 주를 위해 살아도 갚을 길 없는 은혜 앞에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은혜받은 자가 은혜 베푸신 이에게 당연히 해야 할 행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에 감동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뭔가 언짢고, 골내고, 분쟁을 일으키고, 항상 육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 하고, 체면과 기분에 따라 그저 종교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의 신앙생활은 예수가 흘리신 피가 중심이 아니니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말로 죄의 어원(語源)은 하말티아,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궁사가 활을 쏠 때 과녁을 벗어나면 소용없듯,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질과 다르다면 죄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신앙생활의 과녁은 예수의 피입니까?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으니, 신앙생활의 목적은 오직 예수의 피여야 합니다.


종교생활 하는 사람은 육신을 먹여 살리는 직장에는 절대 늦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에는 기력이 없어 “주일 하루 쉬는데, 교회 가기 힘들다”라며 예배에 늦습니다. 주님이 당신 위해서 찔리고 상하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살 찢고 피 흘렸습니다. “내 살 받아먹어, 내 피 받아마셔”라고 하시면서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주님께는 비인격적으로 대우하고, 먹고사는 일에는 성실하게 자기 인생을 다 바쳐서 잘합니다. 예수 피의 공로를 지식으로만 알지, 그에 따른 행동이 없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 예수 피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없는 어떤 의식도 하나님과 무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사람이 되라

예수가 양처럼 죽어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유전(遺傳)된 죄로 인한 멸망이 다 해결됐습니다. 우리는 썩어질 씨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영원한 말씀으로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시들고 없어질 풀의 꽃과 같은 존재가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 영원히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나를 살려주신 그 피의 명령 앞에, 피로 드린 예배 앞에, 주님의 말씀 앞에 감히 거역할 자가 있겠습니까. 누가 이 강한 사랑의 카리스마를 도전할 자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할 때 지금 적이 침공해 들어오고 있어서, 전열을 가다듬고 당장 돌격 명령을 내려도 시원찮을 판에 양을 잡아 피를 흘리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냅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렇게 전쟁에서 패배해서 피 흘려 죽어야 하나, 하나님 앞에 죗값으로 죽어야 하나, 양이 우리의 모든 죽음을 대신합니다”라고 하며 양의 피를 하나님께 바친 후 하나님 명령대로 전쟁터에 나가면 계속 승리했습니다. 피로 죽음을 치렀고, 피로 전쟁의 패배를 해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양의 피가 이렇게 능력이 있다면, 예수의 피는 보이지 않는 마귀 사단 귀신과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 육신의 정욕과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 세상 어떤 유혹과 치르는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피로 값 주고 사신 바 된 내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2~13). 모든 싸움에서 이긴 다음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서기 위함이라고 했으니, 피의 사람만이 이깁니다.


여러분 중에 피 없는 예배, 피 없는 충성, 피 없는 전도, 피 없는 감사, 피 없는 순종, 피 없는 모임, 피 없는 예물, 피 없는 찬양, 피가 없는 기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믿어도 되는 것도 없네’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이 육신에는 이득이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당신 육신이 천년만년 살라고 피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셔서 내 병을 고치실 때 건강한 몸으로 정욕을 즐기며 살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피 흘리신 주를 위해서,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마감하고 주님 앞에 가지고 갈 것이 바로 예수의 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생명을 가진 피의 사람입니다.


주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히 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 영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만이 나의 영원한 피의 생명이요, 내게 주신 피의 구주시요, 내게 피로 주신 생명의 신랑이십니다.”

예수의 피를 망각한 모든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내 심령에 예수의 피가 강물을 이루게 하시고 내 가정에 예수의 피가 바다를 이루게 하시고 우리 교회에 예수의 피가 넘치게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피 흘렸듯, 항상 내가 주님의 성전 되어 내 안에 예수 피가 철철 흘러 그 피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최고의 예배, 최고의 제물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8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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