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여전도회 2024 결산총회
한 해 영혼 구원에 사용해 주심 감사
등록날짜 [ 2023-11-28 18:31:23 ]
오는 성탄절에 연세가족 모두
구원받은 은혜 감사하여 찬양
각 곡의 배경 알고 찬양하면
더 은혜로워 주요 곡들 소개
<사진설명> 지난 2022년 12월 25일(수) 성탄절 오후, 연세가족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의 피로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 ‘구원의 이름 예수 내 구주’라는 주제로 ‘성탄감사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다. 사진 속 ‘QR코드’로 ‘2022 연세가족 성탄감사찬양’을 시청할 수 있다.
연세중앙교회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리려고 매년 성탄절에 대규모 찬양대를 조직해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린다. ‘5000명 찬양대’(2012년), ‘1만 명 찬양대’(2013~2014년)를 거쳐 2015년부터 ‘전 성도(연세가족) 찬양대’가 온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오는 성탄절을 앞두고도 연세가족들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려는 마음을 모아 ‘2023 연세가족 성탄감사찬양’을 준비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며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할 것이다. 2023년 성탄감사찬양에서 전 성도가 하나님께 올려 드릴 주요 찬양곡을 소개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찌어다”(시98:4).
언제 들어도 밝고 힘찬 ‘기쁘다 구주 오셨네(Joy to the world)’는 영국 목사 아이작 와츠(Isaac Watts, 1674~1748)가 시편 98편을 배경 삼아 작사했고, 우리나라 통합찬송가 115장에도 실려 있다. “Joy to the world! the Lord is come(세상의 기쁨이라, 주께서 오셨도다)”를 한국어 가사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로 번역해 구세주 예수께서 성탄하심을 감격스럽게 고백한다. 은혜와 진리이신 주님을 만국 백성이 다 경배하라는 의미인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도입부에서 멜로디를 따왔다고 알려졌다.
■오 거룩한 밤
‘오 거룩한 밤(O holy night)’은 성탄절(聖誕節)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세상에는 참된 거룩함이 없었고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그 밤만 ‘거룩한 밤’이다. 프랑스 발레와 오페라 작곡가인 아돌프 샤를 아당(Adolphe Charles Adam)이 1847년에 작곡했다.
■어린양 예수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죗값은 사망이니, 인간의 죗값으로 당할 지옥 형벌은 영원히 참혹하다. 죗값으로 죽어 지옥 형벌에 처해질 내 영혼의 고난을 해결해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거룩하신 예수께서 어린양처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아프고도 쓰린 눈물/ 홀로 흘린 주님이여/ 주님 죽인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며 내가 죽어야 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다는 신앙 고백을 올려 드릴 찬양이다.
한편, 연세가족들이 익혀야 할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파트별 음원은 연세중앙교회 홈페이지(인터넷 방송국→찬양→성탄감사찬양 연습곡)와 로고스박스(탐색하기→찬양→성탄감사찬양 연습곡)에서 들을 수 있다.
또 ‘연세중앙교회 앱’에서도 2023 연세가족 성탄감사찬양 파트별 음원을 제공하고 있다. ‘메인 화면’ 상단에 있는 ‘2023 연세가족 성탄감사찬양 찬양연습곡’ 배너를 누른 후 파트별 음원을 선택해 들으면 된다.
이번 성탄절에도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처지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연세가족 모두가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진실하게 올려 드리기를 소망한다. 이 모든 일은 주님이 하셨다.
위 글은 교회신문 <82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