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 2·下>] 믿음으로 선택받은 족보의 인물들

등록날짜 [ 2023-12-29 17:30:45 ]

마태복음 족보는 역사적 인물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제시하면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어떻게 오셨는지 자세히 보여줘

수천 년 전 이스라엘 족보지만

내 구속사의 족보인 것에 감격



<사진설명> 유프라테스강 전경. 이라크 나자프 근처의 메스포타미아 평원을 지나가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론은 오늘날 이라크에 자리하고 있었고, 메마른 중동지역에서는 꿈만 같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고 있었다. 


<사진설명>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나타낸 지도. ‘비옥한 초승달 지대’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있는 이라크부터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토질이 비옥하여 농경과 목축업이 발달한 곳을 이르며, 이곳에서 고대 문명과 도시가 출현했다.



▶윤석전 목사: 마태복음의 족보를 토대로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섭리를 탐사해 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가나안과 바벨론이 지리적, 문화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오늘날 지명으로 말하자면 바벨론은 이라크에 있고, 가나안은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두 지역 모두 학자들이 말하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 들어가 있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있는 이라크부터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토질이 비옥하여 농경과 목축업이 발달한 곳을 이르며, 이곳에서 고대 문명과 도시가 출현했습니다.


바벨론과 가나안은 사막 지역에 있지만 큰 차이점도 있습니다. 먼저 바벨론은 메소포타미아의 넓은 평야 지대에 있고, 메마른 중동지역에서는 꿈만 같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반면 가나안에는 제대로 된 강이 없습니다. 강이라고 이름 붙은 곳도 직접 가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시내라고 부를 만한 작은 규모입니다.


또 가나안 지역은 평야의 폭이 넓지 않고 산악지대에 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해 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00∼800미터 산꼭대기에 있는 작은 규모의 도시인데, 이스라엘과 완전히 다른 대도시 바벨론에 와서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육신의 편안함과 안일함을 쫓아가는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고통을 겪었고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여러 가지 문제를 마주했습니다. 현대를 사는 신앙인들이 이 족보를 보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선배 교수: 족보의 기능은 내 뿌리를 알게 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합니다. 내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굉장히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적으로도 수천 년 전 일이요, 지리적으로도 굉장히 먼 곳에 살던 성경 속 인물이 오늘날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궁금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족보 속 인물이 나와 연결된다는 것이 신비로운 일이요, 굉장히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또 구원받은 성도로서 은혜이며 은총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는데, 그 역사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의 족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라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요한복음 1장 1~14절에서 갑작스럽게 선언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족보에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이 선언을 여러 인물을 통해 자세히 보여 줍니다. 역사적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시하면서 어떻게 말씀이 육신이 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초월적인 사건이 역사적인 일로 바뀌는 현장이 바로 마태복음의 족보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구절이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을 지닌 ‘임마누엘 하나님’은 예수님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지상명령을 기록한 마태복음 마지막 절에도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에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승천 사건을 희미하게 언급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믿음의 족보에 은혜로 들어갈 때 임마누엘 하나님과 항상 함께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마태복음의 족보가 이스라엘만의 족보가 아니라, 나의 족보라고 무척 가깝게 느껴집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족보를 통해 오셨고, 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그리스도 영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남의 족보가 아니라 나의 구속사의 족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 족보라는 개념으로 단순히 여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출발한 구속사의 은총이 내 안에 계셔서 내게 이루어지는 족보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마태복음의 족보가 내 구원의 역사의 족보라고 느끼며 많은 감동이 됩니다. 누가복음에도 족보가 나오는데 마태복음의 족보와 다른 점을 알려 주세요.


▶김선배 교수: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족보는 전개하는 방식이나 인물이 다소 다릅니다. 먼저 마태복음은 내림차순으로 전개됩니다. ‘아브라함이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누가복음은 오름차순으로 전개되며 위 세대와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후손부터 위 세대로 올라가고 아담에서 하나님까지 올라가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 시각을 높은 데로 올려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합니다. 보편적인 구원의 복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은 구약의 성취를 강조하지만, 누가복음은 구약의 연속성을 말합니다. 비유하자면 마태복음은 마치 댐이나 호수에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상태입니다.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구약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이와 달리 누가복음은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서 수원(水原)이 어딘지를 보여 줍니다. 즉 마태복음은 성취된 예수님을 보여 주고, 누가복음은 족보를 통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과 모든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두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 광대한 구원의 계획이 작고 작은 나에게 연결되고 나에게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보여 줍니다. 위에서 바라보느냐, 아래에서 바라보느냐 차이일 뿐이지 구속사가 나에게 연결되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윤석전 목사: 우주를 발등상 아래 두시고 운영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피조물인 인간, 죄 아래서 멸망할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류 구원을 엄청난 섭리론적 차원에서 인간이 깨닫게 하려고 족보를 기록하면서 구속사역을 드러낸 것을 보면 하나님은 자상하시고 인간을 무척 사랑하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족보의 역사가 더 감동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산지가 있고 길이 있고 지리가 있고 그들의 삶과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서 주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결국 수많은 역경과 수많은 고통을 지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던 선조들의 족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게 했습니다. 예수가 오시는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가를 보면 예수가 사신 공생애 또한 얼마나 험난할 것인가 미리 보게 됩니다. 예수가 왜 오셨는가. 바로 보잘것없는 나, 전지전능하신 창조자가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3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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