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5-02-11 21:51:52 ]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한국의 2030세대는 국가적 위기를 자각하게 됐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정치적으로 잠들어 있던 2030세대를 깨운 ‘계몽(啓蒙)령’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과거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던 광화문 집회에 2030세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51%에 육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계엄령 이전까지 나 역시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여당 인사들의 무시와 회피는 진실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켰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과 방관이라는 태도를 취하게 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희생에 나 또한 ‘계몽’되었다. 대통령의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이가 감화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가 전복될 위기를 깨닫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지난날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를 얻는 투쟁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이 동반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 6.25사변에 참전한 군인들,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기틀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 그리고 오늘날에도 나라 안보를 위해 젊음을 희생하는 장병들까지….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로 자유를 누리며 살아왔지만, 그들의 희생을 너무나 값싼 것으로 취급하곤 했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소위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세력은 군인을 폄하하는 등 남녀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적 분열을 일으켰다. ‘계몽령’ 이후 지금의 사회적 분열로 가장 이득을 본 세력이 ‘페미니즘’을 무기 삼아 ‘중국몽’이라는 어젠다로 두텁게 연결되어 있던 ‘화교 카르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부정선거로 여야를 막론한 친중 인사를 입법부와 사법부에 심어 왔으며, 화교에게 자국민보다 더 큰 혜택을 주는 악법들을 만들어 왔다.
국민이 안일함에 젖어 있는 동안 저들은 수십 년에 걸쳐 자신들의 계획을 치밀하게 진행해 오고 있었다. 그들의 만행은 신천지가 교계에 파고든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순진하고 선량한 척 위장한 모습으로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를 서서히 잠식한 것처럼, 수면 아래에서 교묘한 수법으로 우리나라를 공산화해 왔고 이미 그 단계가 목표에 가깝게 진행되었다.
성경 속 골리앗보다 거대한 카르텔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져 있으며 한국 교계에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폭넓게 퍼져 있다. 이러한 거대 세력에 맞서 싸우려면 목숨을 건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선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용기에 박수와 감사를 보내며 그가 영육 간에 복 받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거대 세력과의 싸움을 관전하는 것을 넘어 깨어나야 한다. 영육 간의 침체에서 벗어나 행동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역할을 수행할 때 이 나라가 살 수 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킬 수 있다.
‘자유’가 없이는 ‘신앙’도 없다. 자유 대한민국이 전복된다면 우리는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최후의 순간 순교를 택할지언정 죄 아래 살다가 지옥 갈 영혼을 전도하여 살려 내기 위해서라도 내 나라의 ‘자유’는 지켜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가 치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한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말씀하신 주님께 능력을 공급받아 성령이 충만하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사실상 무임승차하여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수많은 혜택을 누려 왔다면 이제 공짜 심보를 버리고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이다. ‘자유’를 빼앗긴 후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그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순교’ 아니면 ‘배교’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88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