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5-02-26 09:48:26 ]
‘하나님, 저는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걸까요?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다면 제가 괴로울 일도, 저 때문에 주님이 마음 아파하실 일도 아예 없지 않을까요?’
주님을 뜨겁게 경험하여 만났고 그 은혜 아래 살고 있었지만, 이 땅에 ‘태어남’에 대한 원망과 괴로움은 오랜 시간 나에게 해결되지 않던 가장 원초적인 문제였다.
그 여파였을까. 난 결혼하기 전에도, 가정을 꾸린 후에도 자녀 계획을 세울 수 없었고 세우려 하지도 않았다. ‘가정에 자녀가 필요한 이유는 너무나 잘 알지만 그건 그 가정의 존속을 위해 필요할 뿐이고, 자녀의 인생만 놓고 볼 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녀를 낳겠다는 부모 욕심 때문에 태어날 자녀에게 인생이라는 무거운 무게를 짊어지게 하는 게 맞나? 점점 살기도 각박해지는데 혹여나 내 자녀가 태어남을 원망스러워한다면 부모인 내가 그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그저 자녀를 낳고 싶어서나 노후 준비 수단으로 자녀 계획을 세우는 게 맞나?’ 이런 고민을 참 많이도 했다.
혹자는 ‘무슨 생각을 그리 복잡하게 하느냐’라며 고리타분한 사람이나 어딘가 꼬인 사람으로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내 조막만 한 머릿속에서 내린 결론은 ‘차라리 자녀로 오는 기쁨을 포기할지언정, 책임질 수 없는 인생을 내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자’였다.
굳어진 마음과 상처도 고쳐 주시는 주님
결혼한 지 6년 차, 그동안 가장 많이 들어 온 질문을 꼽는다면 바로 ‘자녀 계획’이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저희는 자녀 계획이 없습니다”였고, 돌아오는 질문은 “왜요?”라며 마치 정해진 반응처럼 반복되었다.
어떤 이는 ‘딩크족’이라며 이기적인 태도라고 지적하였고, 또 다른 분은 자녀를 키울 때 오는 기쁨과 장점을 설명하며 어떻게 해서든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또 자녀를 낳지 않으면 철들지 않는 것이라며, 주님 심정을 알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자신의 고정관념을 가르치려 한 사람까지 참 다양한 사람과 말들을 겪었다. 상처가 되는 말도 많았지만 굳이 그들에게 내 생각과 환경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결혼 1년 차에는 ‘하나님, 저는 자녀를 갖지 않겠습니다’라고 통보하듯 기도했다. 그런데 2년 차부터는 기도의 방향과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돈과 환경은 개인의 노력이나 운에 따라 심지어 마귀역사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지만,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자녀에 대한 계획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께 기도해 둬야겠다고 말이다. 사실 그렇다고 자녀를 낳지 않겠다던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태어남이 원망스럽고 짊어져야 할 삶이 무거울 인생이라면, 또 천국 갈 수 있을지 위태롭게 살아갈 자녀라면 태중에 품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러나 주님의 뜻 안에 태어남이 기쁘고 주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으며 천국 가기까지 주님께서 끝까지 보장하고 책임지실 자녀라면 태중에 품게 해 주세요. 순종하겠습니다.’
어느새 기도한 지 5년 차, 어느 날 담임목사님께서 “아직 자녀 응답이 없지? 왜 버티고 있느냐”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에 난 ‘순종하겠다고 주님 앞에 기도도 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 앞에 버티고 있다고 하실까?’ 궁금했다. 곰곰이 고민하다 결국 주님 앞에 무릎으로 나가 보았다. 내가 오랜 세월 품어 온 부서지지 않을 생각을 진솔하게 토해 내며 기도하자, 그제야 내가 순종하겠노라 기도는 하고 있으나 내 안에 나 자신이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지난 2024년 끝자락 즈음.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믿어지지 않았고 내심 두려웠다.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두 가지 모두 기도해 왔지만 막상 임신을 응답 받고 보니 제발 아니길 바라는 회피성 생각이 나를 장악했다.
그러다가 때마침 읽고 있던 성경에서 책갈피를 발견했는데 2024년을 시작하면서 내가 뽑았던 성경 말씀이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순간 이 말씀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일 듯한, 내 머리부터 마음까지를 관통했다. ‘아! 하나님께서 이런 내 모습을 이미 아시고 내가 너에게 명한 일이니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며,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씀으로 확증하신 거구나.’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미리 남겨 두신 편지를 읽는 기분이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예비하심 앞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내가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자녀 계획이라는 두려운 일이, 하나님이 이루시고 원하신 뜻이었음을, 내가 그 계획을 잉태한 것이라는 큰 감동이 찾아왔다.
담임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굳이 태어나서 왜 고생일까’라며 고쳐지지 않던 내 생각과 상처들도, 주님께서는 기도 가운데 고치시고 하나님의 큰 계획을 발견케 하셨다. 내가 주님의 크신 뜻과 계획 안에 있다는 것,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살아갈 인생이라는 것,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에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 나와 곧 태어날 자녀 이원이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원’하신 뜻대로, 주님 앞에 살아갈 인생임을 고백하며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린다.
/한민지 기자
(83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88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