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곰팡이 자국

등록날짜 [ 2026-06-03 09:47:39 ]

춥디추운 지난겨울, 이사를 마치고 이삿짐 정리를 다할 즈음 봄이 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다 보니 계절이 바뀔 시기가 온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청소기를 돌리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가구와 맞닿은 벽면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동전만 한 자국이 보였다. 바로 벽지에 얼룩덜룩 핀 곰팡이였다.


‘세상에! 비교적 새 건물인데 왜 곰팡이가 폈지?’ 겨울 끝자락, 고된 이사 일정으로 두어 달 몸살을 앓은 탓에 춥다 춥다 하며 문을 꽁꽁 닫아 놓고 지낸 여파였다. ‘괜찮겠지. 완전 구옥은 아니니깐!’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환기를 하는 듯 마는 듯 봄을 맞이했다.


코가 예민한 내가 곰팡이 냄새조차 못 맡았다니…. 육아로 바쁘다, 이삿짐 정리로 바쁘다, 달마다 진행된 성회에 참가하느라 너무너무 바쁘다 등 이유가 늘어 갔고, 벽지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곰팡이를 보며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속이 상했다.


사실 곰팡이 하나로 속상할 필요는 없는데, 왜 그렇게 속이 많이 상했을까. 


곰팡이를 본 순간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이사해서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는 집에 숨겨진 작은 곰팡이들이 꼭 내 신앙생활을 보는 듯했다.


내 신앙생활을 소개하자면, 예배 당연히 드리죠. 성경도 읽고 있어요. 기도도 해요. 직분도 맡고 있어요. 그렇다. 타인이 보기에는 그냥 무난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구나 싶은 내 모습이다. 그런데 가구 뒤 벽지를 들여다보듯 내 실상을 살펴보면 ‘아! 나는 곰팡이가 난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내가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있나? 아니, 예배는 당연히 드려야 하니 드리긴 하는데 내 귀에는 말씀이 잘 안 들리는 거 같은데…. 내가 기도를 통해 자복하며 내 영의 소원을 구하나? 아니, 내 기도는 어느새 푸념과 잡념이 가득한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러브레터 같던 성경 말씀을 아직도 꿀송이처럼 달게 읽고 있는가? 그냥, 지난해에도 1독 했으니깐 올해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읽고는 있는데…. 직분에 대한 감사와 사모함이 있나? 그저 꾸역꾸역 하는 거 같은데….


군데군데 피어 버린 내 신앙생활의 곰팡이를 발견하니 몹시도 불쾌하고 속이 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는 둥 마는 둥 미뤄 버린 집 안 환기처럼, 이유에 이유를 더해 만든 큰 핑계들이 내 신앙생활 밑면에 거뭇거뭇한 점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여파로 신앙생활의 목적이 불분명해지고 구원에 대한 감사와 사모함도 시들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뛰어난 내 후각이 곰팡이 냄새도 못 맡을 정도로 마비된 것처럼 말이다. ‘티끌 같은 것이 거대한 내 세상, 내 전부를 갉아먹고 있었구나.’ 온전하지 못한 내 모습에 회개의 눈물이 나왔다.


50일 작정기도의 끝이 다가온 지금, 난 아직도 곰팡이 자국과 씨름 중이다. 들어 보니 겨우내 곰팡이 관리가 무척 중요하단다. ‘그래, 주님과의 관계인 이 신앙생활도 잘 관리하며 깨어 있자!’ 곰팡이가 피지 못하도록.



/한민지(82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95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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