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찬송가 탄생 비화 17] 박수갈채도 부귀영화도 예수와 못 바꿔

등록날짜 [ 2013-04-09 09:01:25 ]

레아 밀러(R.F. Miller) 작사/조지 셰어(G.B. Shea) 작곡

조지 셰어(Goerge Beverly Shea, 1909~)는 1909년 2월 1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 윈체스터(Winchester)에서 목회자 아들로 태어났다. 셰어는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중창단원으로 찬양할 때부터 아름다운 목소리가 돋보였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하고 싶은 음악 공부를 중단하고,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었다.

1931년 셰어가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라디오 공개 방송에서 노래할 기회가 생겼다. 셰어는 깊고 풍부한 바리톤 음성으로 미국 전역에 감동을 주었고, 이후 방송사에서 대중가수로 계약하자고 끈질기게 요청하였다. 셰어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여서 셰어는 대중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조지 셰어

하나님을 잊고 인기에 빠지다
자고 일어나 보니 신분이 바뀌었다는 말처럼 셰어의 인기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다. 생활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해졌다.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쥐자 곧이어 유혹이 찾아왔다. 셰어는 인기스타, 돈 있는 사업가, 힘 있는 정치인과 만나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 버렸다. 주일 성수는커녕 기도 한 번 하지 않았다. 매일 밤 셰어가 주인공인 파티가 여기저기서 열렸고, 파티가 끝나면 늘 아름다운 여인들이 셰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셰어는 점점 교만해져 사람들을 우습게 보았다. 셰어가 말 한마디만 하면 뭐든지 다 얻을 수 있었고, 누구도 셰어가 부탁하는 일을 거절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셰어가 지닌 영향력 때문에 시카고 방송국에서는 프로그램 제작까지 맡길 정도였다.

하지만 셰어가 방탕하고 교만에 빠져 사는 동안, 늘 셰어가 돌아오도록 간절히 기도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셰어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셰어는 어머니가 신앙생활 잘하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머니를 통해 주님의 마음 깨달아
어느 날 셰어는 어머니를 뵈러 집으로 갔다. 미소로 반긴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을 보자 기뻤지만, 셰어가 방탕하게 사는 것이 늘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아들과 저녁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가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며 이것만은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항상 성경을 가까이하라는 당부였다. 셰어는 웃으면서 어머니께 꼭 그렇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셰어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성경을 꺼내서 읽었다. 성경을 하루 이틀 읽어 나가자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던 모습,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가서 기쁨으로 찬양하던 모습… 어린 시절 즐겁게 신앙생활 하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1939년 셰어는 크리스천 모임에 초대받았다. 참석한 사람들이 하는 이런저런 간증을 들은 셰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러 사람이 고백한 간증이 셰어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머니가 성경을 가까이하라는 말씀이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라, 어쩌면 주님이 어머니를 통해 직접 하신 말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셰어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셰어는 갑자기 인기스타가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빠져 살아온 잘못을 깨달았다.
모임 후 집에 돌아온 셰어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 지금까지 받은 보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셰어는 이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안하지만 전화를 너무 늦게 거셨습니다. 앞으로 내 목소리와 재능을 비롯해 내 모든 것은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내 주인 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쓸 것입니다.”

주 섬기는 마음 변치 않아
인기스타의 길을 포기했지만, 셰어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넘쳐났다. 어머니를 뵈러 간 셰어는 어머니께 주님을 찬양하려고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집에 머무르던 셰어는 피아노 앞에서 메모지 하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친구인 밀러(Rhea Miler, 1894~1966) 여사가 쓴 시였다. 셰어는 한참 동안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시를 외울 정도로 읽었다. 잠시 후 셰어는 피아노에 앉아 그 시에 멜로디를 얹어 자신의 결단을 담은 찬양곡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완성했다.

그 후 셰어는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45년간 동역하며 찬양과 간증으로 전도했다. 그리고 복음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그래미상(Grammy Award)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한국에서 전도 대회가 열렸을 때 셰어가 한국을 방문해 찬양했는데, 고령인데도 여전히 하나님께 진실하게 찬양하는 모습에 많은 한국 성도가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1983년, 전 세계 전도사들이 모인 암스테르담 집회에서 셰어가 특별 찬양을 했다. 참석한 모든 사람이 기립하여 집회장이 떠나갈 정도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자 셰어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이 부족한 사람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박수갈채와 바꿀 수 없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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