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7-18 13:34:55 ]
<사진설명> 2004년 1월 당시 대성전 건축 모습.
2004년에는 궁동 대성전 건축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어마어마한 건축 규모인데도 별다른 잡음 없이 공정을 순조롭게 진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건축 진행 과정에 세심하게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성전 건축이 한 단계씩 진척할 때마다 성도들은 기도로 함께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영혼 구원의 기쁨을 미리 보며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성전 건축 감사예배와 총력 기도회
궁동 대성전 건축공사를 2003년 8월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공사 진행 과정마다 함께하시길 기도하며 매월 한 차례씩 성전 건축 감사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2003년 11월 2일(주일)에 첫 감사예배를 드린 후 2005년 4월 건축을 완공할 때까지 매달 감사예배를 드렸다. 성도들은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윤석전 담임목사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전하는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충성하고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고 내 영혼이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축복임을 깨달았다. 또 수많은 영혼을 살릴 터전인 대성전 건축에 기도와 예물과 충성으로 동역하는 것에는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며 진실한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한편 성전 건축을 위한 기도 모임을 2003년 8월부터 매일 밤 진행했다. 2004년 3월 8일(월)부터 4월 10일(토)까지는 ‘성전 건축을 위한 전 성도 총력기도’를 매일 밤 8시 50분부터 10시까지 진행했다. 성전 건축 재정에 어려움이 없기를, 민원이 일어나지 않기를,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최상의 품질로 지어지기를, 교회가 몰라서 손해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 그 외에 국내외에서 연세중앙교회 성전 건축을 응원하고 축하하며 건축예물을 드리는 귀한 손길이 이어졌다.
공정 50% 달성 감사예배
궁동 대성전 시공사인 두산건설(주) 측은 공사 기간을 18개월이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2004년 4월경 설계를 변경해 지하 주차장 규모를 넓히는 바람에 공사 기간이 3개월 늘어났다.
지구단위의 건축허가를 피하려면 3만㎡(약 9000평) 이하로 건축 규모를 줄여야 했다. 대성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앉아 말씀을 듣게 하려고 예배당 공간을 최대로 구성하고 나머지 면적을 주차장 공간으로 설계해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공사 단계에서 고민이 생겼다. 성전을 완공했을 때 늘어나는 성도 수를 고려하면 불과 수년 내에 주차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를 고민하던 윤석전 목사는 공사비 증액과 공기 연장에 따른 어려움에도 주차장 규모를 원래 계획한 대로 늘리기로 결정하고 공사 중에 설계 변경 업무를 진행하도록 했다. 리터닝 건물 쪽으로 지하 1, 2층 주차장 면적 포함 3만㎡로 기존에 허가를 받았는데, 추가 설계 변경을 하여 대성전 쪽으로 확장해 현재 규모인 4만㎡로 늘린 것이다. 물론 설계 변경을 하기 위해 서울시 건축 심의와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거쳐 모든 법적 절차를 다 받고 공사를 진행했다.
청년회 임시공간으로 노량진성전 사용
<사진설명> 청년회만 단독으로 대성전 완공 이전까지 노량진성전을 임시 예배 공간으로 사용했다. 사진은 이전감사예배.
청년회는 2004년 5월 30일 주일 낮3부예배부터 모든 예배와 활동을 노량진성전에서 진행했다. 대성전 건축을 한창 시행 중이어서 교회 모든 기관이 궁동성전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노량진성전은 이미 ㈜동일토건에 매매됐지만 당시까지 재개발 공사를 시행하지 않고 있어 ㈜동일토건 측에 허락을 받아 청년회 임시 예배 공간으로 사용했다. 청년들이 궁동 대성전 건축 완료 때까지 노량진성전을 사용하면서 청년회 부흥을 이루게 된 것이다.
노량진성전은 일주일간 부분적으로 내부 공사를 진행해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찬양하고 예배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노량진성전 일대 상인들과 주민도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또 노량진성전을 거점으로 학원가에서 전도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냈다.
1년 4개월 만에 노량진성전으로 돌아간 청년회는 ‘부흥! 연세 청년의 사명’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부흥을 이루겠다는 각오와 비전으로 충만했다. 연세 청년의 살아 있는 예배와 구령 행진은 1년 후 궁동 대성전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됐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를 2004년 4월 5일(월) 흰돌산수양관에서 개최했다. 예수생애부흥사회에서 주관해 열린 이 기도회에 전국 각처에서 목회자와 성도 1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탄핵 정국, 경기 불황, 실업 대란과 같은 어려운 시국을 헤쳐 나가려면 신앙인이 나라와 민족과 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난 극복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한 것이다.
윤석전 목사는 ‘신앙관에서 출발한 국가관’이라는 주제 강연을 맡아 일제 강점기와 6?25 이후 현대사를 조명해 나라의 주권을 잃었을 때 당하는 민족적 수난과 그리스도인의 수난에 관해 말했다. 특히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이념 아래에서만 예수 믿는 신앙이 존립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신앙 안에서 국가관을 철저히 가져야 한다”고 피를 토하듯 전했다. 젊은이들은 이날 기도회에서 주제 강연을 듣고 신앙관을 세우고 참된 역사관과 국가관을 바로 정립했다. 주제 강연 이후에 진행한 통성기도 시간에는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8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