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1-30 13:36:46 ]
외로움 달래 주는 속 깊은 섬김 돋보여
더 섬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 아쉬워
<사진설명> 궁동 3구역식구들. 앞줄 가운데가 김인정 구역장, 맨왼쪽이 박경희 지역장, 맨오른쪽 김문정 교구장.
늦가을답게 쌀쌀한 날씨, 오류시장 골목을 따라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 두 사람이 있다. 단번에 ‘우리 구역 최고’ 취재차 가는 기자와 목적지가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속도를 늦춰 천천히 뒤따라 걷는다. 낙엽은 쌓여 바스락거리고 탐스러운 대봉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서로 의지하며 가던 이들이 다소 가파른 언덕길로 들어서자 생각은 확신이 되고 지친 어른들은 다시 삼층 계단을 오른다.
‘궁동 3구역’이라는데 여기는 오류초등학교 후문, 꽤 거리가 있다. 구역장이 이사를 했나?
궁동 3구역장 김인정 집사의 집에 구역식구들이 벌써 다 모여 있었다. 찬찬히 둘러보니 구역식구 대부분이 70대 어르신이다. 수가 좀 많다. 젊은 구역장까지 여덟 명이다. 이렇게 큰 구역도 있구나, 하는데 요 며칠 어떻게 지냈는지, 수양관에 김장하러 갔다 온 이야기며 서로 안부가 궁금해 바쁘게 이야기가 오간다. 불쑥 찾아온 낯선 기자도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 준다.
예배를 인도한 교구장은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 ‘열심’히 해도 주님 사랑 잊어 버린 전도, 충성, 기도는 다 헛것이에요. 대신, 대인, 대물관계 잘 정리하고 내년에도 주님 사랑함으로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요”라고 당부했다.
예배를 마치자 구역장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덩달아 젊은 구역식구 김미경 집사도 바빠진다. 상을 펴고 부지런히 음식을 나른다. 김인정 구역장은 어제 시댁에서 김장을 하고 와 힘들 만도 한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냈다. 그 와중에 “이것은 어떻게 한 거여? 우리 아들 해줄랑게.” 누군가 묻자 버섯전 레시피가 친절하게 전파된다.
“구역장 집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라고 많이 차렸네요.” 교구장의 칭찬에 “올해가 순간에 다 갔네요. 너무 아쉬워요”라고 구역장이 답한다.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산에 살던 김인정 구역장은 2008년 등록해 먼 길을 오가며 신앙생활 하다가 몇 해 전 오류동으로 이사왔다. 직분자의 권유로 궁동 구역을 맡게 된 파견구역장이다. 교회 옆 궁동빌라에 성도는 많은데 어르신들을 섬길 이가 마땅치가 않아 긴히 부탁했는데 구역장이 순종했던 터다. 2년째 이 구역을 맡고 있다. 어르신들을 섬기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저보다 신앙생활도 더 오래하셔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작년보다 구역식구가 늘어서 좋고 재미있었는데 벌써 한 해가 다 갔네요”라며 진한 아쉬움과 애틋함을 표현한다.
“요샌 일주일이 3일 같아”라며 운을 뗀 오순희 권사는 이 구역의 시어머니다. 젊은 구역장이 못 하는 쓴소리를 도맡아 해 준다. 구역예배에 늦거나 빠지면 회개하라고 다그치고 새벽예배에 식구가 안 보이면 오 권사의 레이더망에 바로 포착된다. “맨날 뒷자리에 앉지 말고 앞으로 와서 앉아요”라고 외친다. 헉! 이쯤되면 거의 직분자 수준이다. 신앙선배답다.
“늙은이들 수종 잘 들어 줘 고마워. 서로 섬겨 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고 하고, 우리 구역장 안 바뀌었으면 싶은데.” 선재순 성도의 말에 전원이 박수를 하며 격하게 동감한다.
돌보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 갈 시간이라며 서둘러 일어서는 전용연 집사가 말한다. “올해 너무 좋았어요. 다들 서로 챙겨 주고.” 투박한 말솜씨지만 근사한 만찬을 준비할 줄 아는 이다. 갖가지 밑반찬에 정갈한 상차림으로 모두 즐겁게 만든다. 몸이 불편한 아들과 살며 한 해 두 해 신앙 이력을 쌓아 가는 그는 비록 “아들이 내 손길을 필요로 해도 그 아들 덕에 오늘 내가 예수 안에 있다”고 고백한다.
김열남 성도는 파킨슨씨병으로 때로는 몸을 가누기 힘든데도 구역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
“우리 구역장은 누구 하나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해 줘. 기도 못 한다고 빼지 않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니까 다 차례대로 돌아가며 하게 한다”며 본인이 주께 올리는 기도에 소외되어 아팠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지난 하계성회에서는 교구장의 사랑을 3일간 독점했다고. 몸이 불편한 자신을 위해 손발이 돼 주고 어깨도 스스럼없이 빌려주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지난 4월 총동원주일에 조카의 인도로 교회에 오게 되었다는 윤춘자 성도. 울산에서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남편과 사별한 후 불쑥 찾아온 우울증이란 불청객 앞에 속수무책일 때 끊임없이 기도해 주던 조카의 권유로 미련 없이 서울로 이사했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다 데려다 놓으셨다. 좋은 식구들 만나고 사랑으로 서로 기도해 주니 너무 좋아”라며 밝게 웃는다. 이제는 몸도 건강해져 더 바랄 게 없단다.
이 구역식구들은 대개가 70대 어르신이다. 대부분 사별을 경험했고 홀로 살거나 단출한 인적 구성으로 외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이 그립다. 금요일이, 구역예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그런데 유독 4대가 함께 사는 이가 있다. 김열남 성도가 그이다. 4대를 다 합해도 5명이다. 뒤늦게 장가든 아들이 손자를 낳아서 사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참한 며느리가 98세 할머니까지 모셔와 섬기는 모습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쁘다. 너도나도 며느리를 칭찬하자 “예쁘게 봐 주셔서 그런 거죠”라고 좋은 마음을 애써 감춘다.
“김미경 성도님, 어르신들만 있어서 힘들지는 않았어요?”라고 묻자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또래 구역에서는 불만을 얘기하면 맞장구도 쳐주고 하는데 어른들은 대뜸 혼을 내신단다. 지금은 그게 사랑해서 하는 소리인 줄 알기에 야단맞아도 좋고 정신도 차리게 된단다. 김미경 성도는 젊은 구역장이 힘들까 봐 돕는 자로 묶어 주었다. 그 본분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구역장을 도와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다.
“너무 감사해요. 존재만으로도 힘이 돼요”라고 구역장이 말하자 “마음이 이뻐서 그래”라며 칭찬을 풀어 놓은 이는 윤춘자 성도. 다른 이의 장점을 잘 보는 눈을 가졌다. 별것 아닌 것도 크게 보고 예쁘게 말한다. 우리 교회에 온 지 불과 7개월 남짓한데 속마음은 주님의 섬김으로 가득하다.
별 말이 없던 추영자 성도는 교회를 내 집처럼 깨끗이 하는 게 목표인 양 많은 이가 드나드는 목양관 1층을 지문 하나 없이 깨끗이 쓸고 닦았다. 오후엔 어김없이 예쁜 모자 쓰고 전도지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이를 아마 우리 교인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평탄치 않고 굴곡진 삶이라 더욱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얼마 전 남편을 주님 나라에 보내고 지금은 위암 수술 한 큰딸과 두 손녀까지 돌보고 있다. 힘들고 어렵지만 영혼 살리라는 주님 심정으로 섬기다가도 속상하고 힘들 때는 구역식구들의 위로가 큰 힘이 돼 주었다고 한다. 커피까지 마시고 난 후, 구역장이 힘들게 해 온 김장을 아낌없이 나눈다. 봉투에 나눠 담으며 먼저 간 사람 몫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수은주가 내려가면 옆구리가 시리고 나간 자식이 기다려지는 게 사람이다. 이름뿐인 가족이라도 생각나고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가을 한가운데를 지나 이제 한 해의 끝을 앞둔 이즈음은 후회와 애틋함이 절로 스며든다. 올해 10여 명을 전도해 8명이 정착했다는 오순희 권사가 못내 부럽다.
/정성남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6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