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팎으로 목회자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적군들이 점점 많아져가고 있습니다. 부흥사란 설교와 능력을 통해 적군을 아군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부흥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적군을 아군으로 바꿀 수 있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내가 죽고 오직 성령이 일하실 때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문제는 내가 이것을 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6월 6일(월) 저녁부터 9일(목) 오전까지 흰돌산 수양관 중성전에서 진행된 제12차 부흥사수련회에서 주강사인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흰돌산수양관 원장)는 참여한 목회자들에게 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느냐, 왜 하나님의 능력을 막느냐면서 시작부터 말씀의 포문을 열어 사정없이 쏟아 붓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시오. 왜 내가 제한하려고 하십니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연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타당하냐 타당하지 않느냐는 판단을 할 자격이 나에겐 없습니다. 부흥사가 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능력을, 모든 말씀을 항거없이 제한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거절하십니까. 사랑하는 주의 종들이여, 목사가 누굽니까. 주님의 일을 물려받아서 우리 교회의 성도들에게 펼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부흥사가 누굽니까. 내 교회 성도들에게 주고 남는 것을 전국의 교회에 다니며 주는 사람이 아닙니까. 여러분 모두가 이와 같이 나눠주고도 남는 영적 부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이 하라시는 일을 하지 않을 권한이 없다
작열하는 6월의 뙤약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흰돌산 언덕 위로 성령의 강한 바람이 휘몰아쳐 밀려오고 있었다. 저 갈멜산 언덕에 세워진 제단 위에 임했던 하나님의 불이 흰돌산 언덕 위에 세워진 수양관에 임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어떤 조짐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설득은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능력을 주시고 가서 병을 고쳐라,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증명하기 위한 일입니다. 바로 이 일을 우리에게도 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하라시는 일을 하지 않을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병을 고치라고 하셨는데 안 고칠 권한이 우리에겐 없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는데 내가 못 쫓아내겠다고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주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에게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종은 그저 주인이 하라시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의 종들이 얼마나 세도를 부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세도를 부리는 만큼 주님의 능력과 권한이 제한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이 방해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무슨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주여~”
윤 목사의 메시지가 선포될 때마다 참여한 목회자들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아멘!” 그리고 “주여~” 그것은 “나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내가 그런 죄인입니다.”라는 의미의 고백이 아니겠는가.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라
“부흥사는 아무 것도 군더더기가 붙으면 안 됩니다. 물질이라는 군더더기, 명예라는 군더더기, 심지어 목숨이라는 군더더기도 붙어선 안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주님이 날 안 쓰실까봐 입니다. 이게 제일 두려운 일입니다. 망하게 하는 군더더기를 붙이지 마시오.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몰아내 버리고, 질병을 예수 이름으로 고쳐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막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나의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걸 못해서 목회도 못하고 부흥사도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메시지를 듣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이 눈물. 가슴을 확 뜯어버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더 속이 타는 이 답답함. ‘아, 정녕 이것이 나의 실존이었던가. 너무나 초라한 나의 모습이여, 아 너무나 부끄러운 나의 심령이여.’ 말씀이 비수같이 심장에 꽂히자 성령이 그 말씀을 통해 일하시니 감겼던 영적 눈이 열리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적실존을 보게 되니 그제야 발견되어진 너무나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북받치는 설움과 아픔이 부끄러움과 함께 동시에 밀려오는 것이었다.
나를 정복하라
너무나 진지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부흥사수련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의 표정 말이다.
“해발 8천 미터 이상이나 되는 산을 스스로 걸어 올라가는 일은 대단한 일입니다.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산보다 더 점령하기 어려운 대상이 육신의 정욕입니다. 죄악입니다. 산보다 더 높은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점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 앞엔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사용하시도록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나를 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설교하기 전까지 기도하면서 마치 출전하는 군사가 이미 승리를 가지고 전장에 나가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가지고 이 강단에 섰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100% 듣는 자를 장악해 들어감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가 나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가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내 것이 있어선 안 됩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주님이 나를 마음대로 쓰시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이 쓰시기에 버거운 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예수의 생애를 재현하라
왜 예수생애부흥단(단장 최영근 목사)의 목회자들이 기존의 부흥사와는 다르게 부흥회를 인도하고서도 사례비를 일체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헌금까지 드리는지. 왜 이들이 가는 곳마다 병고침과 치유의 표적이 나타나고 심령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것은 윤 목사에게서 배운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는 자다. 스승의 삶을 재현하는 자들이다. 윤 목사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안에서만이 아니라 윤 목사의 삶을 통해 그리고 윤 목사를 통해 가르침 받은 많은 목회자들의 삶을 통해 일하고 계심을 본다. 그렇기에 윤 목사가 섬기는 연세중앙교회와 흰돌산수양관, 그리고 예수생애부흥단의 목회자들이 섬기는 교회와 그들이 가는 부흥회 현장마다 예수의 생애와 능력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갈멜산엔 불의 사자 엘리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은 엘리사를 세우셨다. 마찬가지로 흰돌산엔 불의 사자 윤석전 목사가 있다. 그 윤 목사를 통해 하나님은 이 시대의 엘리사를 세우고 계신다. 실천목회연구원과 부흥사 수련회가 바로 그 현장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를 통해 한 시대를 뒤바꾼 존 웨슬레와 무디 같은 주의 종들이 배출되어질 것이다.
오늘도 저 흰돌산 언덕 자락엔 성령의 불이 휘감고 있다. 이 불이 지금 한국강산과 전 세계로 번져가고 있다. 하나님의 부흥의 때가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에 부름 받은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당신에게 거룩한 이 열망이 있는가. 예수의 생애를 재현하고 싶은 열망이....
위 글은 교회신문 <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