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성회] 주님의 고난을 가슴으로 끌어안아야

등록날짜 [ 2012-04-11 16:18:36 ]


<사진설명> 연세중앙교회는 4월 2~5일까지 고난주간부흥성회를 열었다.     사진 박상신 기자

고난주간성회가 예루살렘성전에서 4월 2일(월)부터 5일(목)까지 열렸다.
윤석전 목사는 고린도전서 1장 18절과 마태복음 26장 69~75절 말씀을 중심으로 전 성도가 예수의 고난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자기 몫으로 가져서 주님을 위해 목숨을 초월하는, 주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설교했다.

윤 목사는 “창세 이래 인간은 하나님께 고난을 가하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최초로 창조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 말을 듣고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어 정녕 죽음에 이르렀고, 가인은 그 동생인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으나 회개치 않고 죄를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하나님은 노아의 때에 인간의 죄악이 관영한 것을 보시고 슬퍼하시어 홍수로 멸망시키기에 이르셨다. 혹독한 종살이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를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와 불순종 등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다.

또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왕을 대적하다가 참혹한 죽음을 맞지만, 그럼에도 다윗이 아들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인 것처럼, 우리 아버지인 하나님도 인간이 불순종하고 죄를 지었지만, 사랑과 책임 때문에 아들인 예수를 인간의 대속물로 보내셨다.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지었을 때는 영영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 멸망케 하시나 인간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구원해주시는 특혜를 베푸셨다.

윤석전 목사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성회에 참석한 전 성도는 그 동안 주님의 고난으로 주신 은혜로 살면서도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못했던 것을 부르짖어 회개했으며, 주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다짐했다.

고난주간성회 말씀 요약

■마귀의 정죄에서 벗어난 우리

우리의 고난을 담당하려고 육신으로 오신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셨다. 또 침례 요한이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예수를 증거했다.

구약시대에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을 잡아서 “나는 죽어야 할 죄인이나, 이 양의 피를 보고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던 것처럼, 예수는 내 죄를 사하려고 어린양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는 율법으로 정죄를 받고, 마귀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참소하게 되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 따른 형벌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더는 율법의 정죄, 마귀의 참소, 하나님의 형벌 아래 있지 않게 된다.

■죄를 미워하는 성도 되자

많은 사람이 죄를 쉽게 짓고, 죄를 지어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공로로 회개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우리가 짓는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짓밟는 것이다. 죄에 민감해야 하는 것은 이 죄 때문에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회개 없이는 예수의 고난이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 회개는 자책이 아니고 예수의 피로 내 죄를 씻는 능력이다. 살 한 점, 피 한 방울 남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우리를 살리시려 예수께서는 고난으로 당하셨다. 날 위해 찢으신 살과 흘리신 피로 이룬 고난. 우리도 어떠한 핍박과 가난 그리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예수만 붙잡고 승리하여 천국까지 가야 한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하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으나, 그들은 내일 십자가를 지실 주님의 고난을 몰랐기에 기도하지 못하고 졸았고, 주님이 고난받을 때 주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받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러니 오직 사는 길은 성령 충만뿐이다.

주님의 고난을 가진 자는 갚을 길 없는 은혜를 아는 자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아는 길, 주님의 심정을 아는 길은 오직 그 주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공개하셔야 한다. 그때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육신의 때만이 회개의 기회요, 죄를 이길 기회요, 은혜에 감사할 기회다. 죄지으며 방종한 나를 보고 울자. 주님의 고난을 내 가슴에 끌어 안아보자.

■지금도 아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18장에는 용서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자자손손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거액의 빚을 졌지만, 주인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고 빚 전부를 탕감받는다. 그런데 그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옥에 가두자 주인은 그를 괘씸하게 여기고 일만 달란트의 빚을 다시 적용해 옥에 가둔다. 이처럼 용서는 번복할 수 있고, 죄에서 완전한 자유가 없이 결박당하며 살아간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물을 잡아 피를 흘려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고난을 받고 죽으심으로 용서가 아닌 속죄를 받아 죄에서 자유로와졌다. 용서와 속죄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속죄는 죄 값을 갚아줌으로 다시는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다.

예수는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아무런 저항 없이 우리 죄를 사하려고 죽으셨다. 양처럼 피를 흘려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깨끗이 해결하셨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매일 지은 자범죄를 속죄받으려고 비둘기를 잡아 피를 흘리고 불에 태워 하나님께 속건제로 올려 드렸다. 그와 같이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죄지은 것을 깨닫고 알게 하셔서 날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케 하심으로 속죄받게 하신다.

내가 범한 죄 때문에 예수께서 비둘기처럼 매일 죽어간다고 생각할 때 어찌 우리가 죄지을 수 있겠는가. 예수의 거룩한 피를 부정케 하는 죄악을 중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어찌 날 위해 양처럼, 비둘기처럼 죽이시나. 우리는 주가 고난의 피 값으로 산 최고의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그 값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고난 뒤 다가올 영광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 안에 쓰이는 그릇을 놋으로 만들라고 명하셨다. 놋은 도저히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깨지지 않는 그릇이 되어야 고난도 이길 수 있다. 예수께서도 깨지지 않는 그릇이었기에 십자가의 중한 고난을 이기셨다.

주님을 따르려면 주님과 똑같은 고난의 코스를 가야 하는데 깨지는 그릇은 절대 주님을 따라갈 수 없다. 예수 믿은 후 예수처럼 고난을 받는다면 예수와 함께 동역한다는 증거다. 아무리 고난이 힘들지라도 숨질 때까지 놋그릇처럼 깨지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고난 후에 다가올 영광이 있기에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견딜 수 있다. 지금 견디고 깨지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고통을 면하게 된다. 견디고 견디는 자만이 주님의 재림 때에 들림 받을 것이다. 예수의 고난을 담은 그릇이 깨지면 예수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예수 때문에 어떠한 고난이 올지라도 감사하며 주님을 닮아가자.

예수를 잘 믿으려면 육체는 힘들다. 그럴지라도 예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자. 자식이 잘되고, 사업이 잘되는 것이 복인가?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복이다. 그런데 왜 복음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타락했는가. 왜 영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으로 전락했는가.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 앞에 도망가지 말자. 주가 날 위해 사셨듯이 나도 예수만 위해 살며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많은 고난이 있을지라도 주님을 찬양하며 그 분의 뒤를 따르자.

■신앙 양심이 불타는 성도 되자

내 죄를 위해서 고난 받으시고 결국은 죽으신 예수를 의지하여 그 피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생활 해야 한다. 또한 그 수준을 넘어서 예수께서도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고 하신 것처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자의 태도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내가 당할 저주, 고통, 죽음을 해결하시고 성령으로 전해서 나를 구원하셔서 오늘 죽어도 천국 가서 영생하는 축복을 주셨다면, 그분에게 무엇을 아낄 것이며 어떻게 그 분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피 흘리기까지 진실했던 주님께, 주인정신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그분의 일을 해야 한다. 구원받았다면 예수를 위해 자존심, 물질 그리고 죽음을 통과할 믿음이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주를 위해 죽으리라’는 신앙 양심이 불타야 하며,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동의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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