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부흥성회] 성령의 감동으로 육신의 생각을 장악하라

등록날짜 [ 2014-06-11 10:36:14 ]


<사진설명> 지난 6월 2일(월)부터 5일(목)까지 열신 성령강림절 부흥성회에서 설교 후 통성으로 기도하고 있다. 사진  김영진

성령강림절 부흥성회가 지난 6월 2일(월)부터 6월 5일(목)까지 연세중앙교회 예루살렘성전에서 열렸다. 생명의 힘이신 성령의 감동을 육신의 요구에 의해 무시하고 살았던 지난날의 죄를 가슴에 사무치는 울부짖음으로 회개하는 통곡이 부흥성회 기간 내내 성전을 가득 채웠다.

윤석전 목사는 히브리서 4장 12~13절, 로마서 8장 5~9절, 마태복음 12장 31~32절,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을 중심으로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감동을 따라 육신의 생각을 장악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선포하였다. 윤석전 목사는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무제한 수용하여 말씀의 강력한 운동력이 내 안에 움직이게 하고, 죽게 된 내 모습을 뼈저리게 깨달아 회개하여 생명이 내 안에 자리 잡게 해야 한다”며 애절한 성령의 목소리로 강력히 선포하였다. 다음은 설교 요약이다.

■ 자기 자신을 진단할 줄 알아야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있으라” 하신 말씀의 엄청난 운동력에 의해 피조물이 생겨났다. 운동력 뒤에는 항상 생명이 있다. 생명이 없는 자는 하나님 말씀의 운동력을 만나지 못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운동력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에게는 목숨과 생명이 있다. 목숨은 끊어지는 날이 있어도 생명은 영원하다. 생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운영권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인다.
 
하나님 말씀은 죄를 찾는 ‘검사’와 같다. 그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 찔리지 않는 사람, 하나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밝히 비출 때 전혀 죄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식하는 자다. 이들은 절대로 자신을 정확히 볼 수 없다. 주님의 목소리는 좌우에 날 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여 사람의 심령을 뚫고 죄를 찾아들어가 밝힌다.

설교는 진단이요, 회개는 처방이다. 하나님 말씀은  인격을 가지셨기에 강제로 뚫고 들어가지 않는다. 인간이 수용하는 만큼 들어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무제한 수용하여 죽게 된 자기 모습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하나님 은혜로 마귀와 귀신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는 분별력을 소유한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인격이 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하며, 그로 인해 죄악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부분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알고
쓸모없고 보잘것없는 인간을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은 단순히 문장을 해석하고 이해하여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신과 마음을 가져야 말씀의 본뜻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는데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배우고 아는 지식으로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말씀을 가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온갖 이론과 가르침을 다하여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거기에 생명이 있다. 성령의 목소리는 이적의 목소리, 창조의 목소리, 치유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듣는 성도는 변화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성장하고, 교회를 부흥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기에 주님의 말씀과 약속과 능력이 살아 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죽이려 하고, 육신의 정욕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멸망시키려 들지만, 생명의 힘으로 이겨 내야 한다.

하나님의 의(義)의 말씀이 내게 오면 회개를 통해 내 안에 있는 불의가 떠나간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 자리 잡는다.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 침투하여 귀신, 저주, 질병 같은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을 몰아내 생명이 나를 장악한다. 나태하고, 기도하기 싫고, 전도하기 싫고, 신앙생활이 버겁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생명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말씀 앞에 굴복하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고, 진실한 회개로 하나님의 의와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 영육 간에 살려면 누구나 하나님 말씀 앞에 굴복해야 한다.

■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육신의 상황과 육신의 소욕이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우리를 몰아가도, 성령께서 ‘그것이 아니야’라고 하실 때 몸의 행실을 확 깨뜨릴 만큼 신령한 가치를 붙잡을 힘이 있어야 한다.

전지전능하신 성령의 인격으로 인도받아야 한다. 그것을 거역하는 순간, 육신의 생각과 소욕이 솟구쳐 올라와 사망으로 인도한다. 성령의 감동을 제한하지 않고 계속 수용하면 그것이 내 인격이 되어 내 인생을 이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 접붙인바 되면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인격이 나를 장악한다.

성령은 지식의 영이요, 분별의 영이다. 마귀는 모든 수작을 다 부려 구원 사역을 방해하려 한다. 성령께 완전히 붙들려 성령의 인격으로 변하면 성령에 압도된다. 성령께서 내 인격을 통해 일하기 시작하면, 나는 성령께 온전히 장악당해 그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성령께서 감동하시면 그 순간 바로 “아멘” 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아프게, 슬프게, 근심하게 하면 안 되며, 거역하거나 훼방해서도 안 된다. 가장 두려운 일은 성령의 감동이 내게 더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것은 신앙생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성령을 소멸치 말라!

■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감동이 인생의 우선 순위가 된다. 세월이 지나 기도하는 시간이 줄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육신의 생각으로 계속 거역하며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 하는 자기 합리화로 결국 성령을 소멸한다. 그때부터는 사모함으로 교회 오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로 오고, 기도도 의무감으로 한다. 성령의 감동과 요구가 중단되었는데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이 강력히 일하기 시작한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힌 자는 자기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만, 그의 인생과 아무 상관 없이 가만히 계신다. 많은 사람이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하실 것이다.

우리는 성령 충만하기까지 계속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생명의 힘이 있는 자만이 영혼을 살릴 수 있기에 복음은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을 통해 전해진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끝나는 비참한 인생이 되지 않게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을 유지하여야 한다.

/김승기 목사

위 글은 교회신문 <38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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