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축복대성회] 육신의 때를 내 영혼의 때를 위하여 살자

등록날짜 [ 2015-10-06 10:19:51 ]

명예, 물질, 지식 그 어떤 것도 구원의 조건이 아니니
목적 없이 달음질하는 어리석음 버리고 값진 날을 위해
지금 바로 가장 신령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 가야



<사진설명> 추수감사절 축복대성회 시 모습.


■본문-요한계시록 20장 4~6절, 히브리서 9장 27절
인간의 육체가 아무리 훌륭하고 건강하고 오래 살고자 버텨도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육신이 내 영혼을 위해 살도록 시간을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육신이 사는 동안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고, 예수 믿어도 죄를 지어 지옥 갈 짓 하면 ‘죗값은 사망’이니 지옥에 갑니다.

반대로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면 주님과 더불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되 천년 동안 왕 노릇 합니다. 이처럼 육신의 때가 내 영혼을 부유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인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때가 영혼의 때를 위해 이렇게 소중한데, 100년도 못 있다가 가는 짧은 세월에 만약 우리가 영혼의 때를 위하여 살지 못하면 이 땅에서 육신이 다하는 날 첫째 사망을 맛볼 것이요, 이어 영혼이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둘째 사망을 당합니다.

영혼의 때를 위해 살지 않다가 지옥에 떨어져서야 비로소 ‘아, 육신이 있을 때가 가장 소중한 시간이구나’ 하고 깨닫지만, 그때는 회개할 기회가 없고 오직 영원히 처절하게 고통만 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숨 쉬며 사는 이 시간이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절대적 시간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방관자, 육신
그런데 육신은 영혼의 때를 위해 살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아무리 잘못해도 지옥 갈 염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끝입니다. 의롭게 산 자나 악하게 산 자나, 지식 있는 자나 무식한 자나, 여자나 남자나, 잘생기나 못생기나 상관없이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육신은 절대 내 영혼을 돌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이 있을 때 하나님과 영적인 조화를 분명히 이루어서 육신이 끝나도 내 영혼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나야 뭐, 몇 년 예수 믿어서 집사 되고, 교회에서 이 일 저 일 했더니 장로 됐으니 죽으면 확실하게 천국 가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이루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육신의 생각대로, 육신이 하라는 대로 예수 믿는답시고 교회 다니면서 ‘나야 천국 가겠지’라고 자기 신념대로 믿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육신은 내 영혼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원수이기도 합니다. 내 영혼은 기도해야 산다고 하는데 육신은 먹고살아야 한다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전도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하지 않고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고도 ‘죽으면 천국 가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먹고살려고 하는 이는 전부 다 죄로 지옥 갑니다. 내 육신을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쓰려고 하는 자가 천국 갑니다.

육신이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먹고살다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영혼의 때와 영원한 시간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육신이 있을 때 육신을 위해 살면 망하나, 육신이 있을 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살면 영원히 삽니다.

사도 바울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육체에 예수의 남은 고난을 채우기를 작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예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영혼의 때를 위해 육체의 고난을 기꺼이 받겠다는 내용입니다. 또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죽는다는 말은 육신이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영혼이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즉 둘째 사망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내 영이 요구하는 대로 머슴처럼, 일꾼처럼 살아야 합니다. 육신이 내 영혼의 주인도 아닌데 왜 껍데기가 주인 행세를 하도록 내버려 두느냐는 말입니다.


육신은 영혼을 위한 소모품
육신은 내 영혼을 위해서 사용하는 소모품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성령받았다는 사실은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죄 사함받아 거룩해지고,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지옥 신세를 면했다는 사실은 실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는 영원한 행복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장애인도, 어떤 병에 걸린 사람도, 아니면 내일 곧 숨이 넘어가는 사람일지라도 지옥에 있는 영혼이 육체를 입은 그 사람을 바라보면 참으로 부러워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입어야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갈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있을 때는 그 엄청난 기회를 다 뺏기고, 지금 지옥에서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나’ 하며 얼마나 후회가 막심하겠습니까.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다 죽게 되어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나마 육신이 있을 때 철저하게 회개하고 천국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주여, 숨지기 전에 신령한 기회를 주세요, 회개할 기회를 주세요. 주님과 나와 분리된 죄를 찾아 회개하고 주님과 내가 하나 되게 해 주세요. 말씀으로, 성령으로, 예수의 피로 충만케 해 주세요. 내 영혼을 능히 구원하고 내 육신이 떠나게 해 주세요.’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육신이 끝나면 모든 기회를 잃고 상황이 종료되니까, 육신이 끝나기 전에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죽게 된 몸에 점점 기력을 회복하더니 살게 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기도를 바꿉니다.

‘하나님, 제게 교회를 개척할 기회를 한 번만 주시면 육신의 때를 낭비하지 아니하고 영혼 구원에 제게 준 육신의 때를 다 퍼부어 쓰겠습니다. 주님, 기회를 주세요. 기회를 주세요.’

하나님께서 목회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처음에 교회 개척할 때 제가 기력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몸으로 연중무휴 철야기도를 하고,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목회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있을 때 그 육신을 영혼의 때를 위해 알뜰하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여! 목적 없는 인생의 달음질은 인제 그만 합시다. 이 짧은 양초 토막 같은 인생,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행동하지 못해 정욕적으로 살다가 죽어 지옥에 가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진설명> 기도하는 청년(왼쪽).  성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유치부 어린이들이 율동으로 감사하고 있다(오른쪽).


신령한 기회를 놓치지 말라
우리에게 늙어 빠진 육신이라도 있어야 충성해서 면류관 얻을 기회가 생깁니다. 육신이 떠난 다음에는 내가 거듭나서 구원받을 기회도 없고, 하나님과 모든 거래가 완전히 끝납니다.

신약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모든 믿는 자는 세상 끝 날까지 신랑 되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든 초대 교인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인류의 종말이고, 육신의 때의 종말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이미 그날이 확실하게 준비된 사람입니다. 준비되지 못하면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저도 목회하기 전에는 열심히 돈 벌려고 했습니다. 목적 없이 돈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돈 벌면 교회를 잘 짓고 선교사들에게 후원도 많이 하고,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 복음 사역에 쓸 돈도 팍팍 드리려고 했습니다. 나 쓰려고 돈 버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쓰려고 악착스럽게 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르셔서 다 버리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돈에 집착했으면 목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돈에 욕심이 없었으니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돈 욕심 없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돈 욕심 없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목회자가 됐든 성도가 됐든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돈이 무엇인데 그것을 위해서 그렇게 몸부림쳐 싸우고, 투쟁하고, 부모 형제도 없고, 이웃도 없고, 어디서 돈 번다고 하면 사기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막 퍼붓습니다. 그런데 주를 위해서는 천 원 쓰는 일도 벌벌 떱니다. 육신이 이렇게 교만하고 건방지고 무지하고 장래에 책임 없는 짓을 하는데도 내 영혼에 대해서는 그냥 방관하고 삽니다.

우리가 정말로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영생을 얻었다면, 내가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주를 위해 수고할 때 하늘에서 받을 보상과 면류관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안다면, 우리는 정말로 주님과 더불어 사는 일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다행이다. 매를 맞아도 다행이다. 욕을 먹어도 다행이다. 가난해도 다행이다. 쫄딱 망해도 다행이다. 육신은 부자로 살아도 끝나고 가난해도 끝난다. 그런데 나는 그날의 영광을 준비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지옥 간 다음에 아무리 후회해 본들 명예도, 지식도, 돈도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도 우리가 육신이 끝나면 더는 구원해 줄 수 없어 상황 끝인데, 세상의 물질문명이 당신을 지옥에서 건져 내겠습니까? 그깟 세상 것을 얻으려고 아까운 육신의 때를 다 써 버리다니 이 얼마나 허망한 삶이냐 이 말입니다.


내 영혼의 요구대로 살라
성도들이여, 영혼의 때에 허망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날에 허망함을 당한다면 그 비참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해도 돈에 미련이 남는 사람들은 ‘맞기는 맞는데, 내가 나중에 돈 벌면 잘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잘할 것입니다’며 절대로 지금 돌이키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을 보는 분이십니다.

혹시라도 내가 정말로 주님의 은혜에서 떨어질까 봐, 주님과 관계가 잘못될까 봐,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육신을 함부로 낭비하며 살까 봐 두려워하고 주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까닭은 확실하고 분명한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육신의 요구를 뿌리치고 육신이 원하는 바를 뿌리치고, 육신의 뜻을 뿌리치고, 육신의 소욕을 뿌리치고, 육신의 생각을 뿌리치고, 성령으로 결박당해서 주님과 내 영혼의 때를 위해 육신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혹독하게 복음을 위해 쓰임당하면 당할수록 내 영혼의 때에 누릴 영광이 계속 부여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도대체 죄가 무엇입니까? 도둑질하고, 해코지하고, 남 때리고, 거짓말하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들도 죄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 공로로 내 영혼이 살려고 하는데 내 영혼을 죽이려는 육신의 생각과 소욕과 정욕이 바로 죄입니다.

이것을 회개해서 물러가게 하고 성령이 점령해 들어오셔서 육신의 소욕을 버리고 정욕을 몰아내 성령의 요구대로, 예수 그리스도 피의 요구대로, 내 영혼의 요구대로 사는 육신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특별취재팀
사진 강문구 김영진


 

위 글은 교회신문 <4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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