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12-14 16:42:47 ]
통곡의 회개와 각색 질병에서 고침받는
성령의 역사…마치 사도행전 보는 듯해
<사진설명> 토고성회 목회자세미나에서 윤석전 목사가 애타는 주님 심정으로 아프리카 목회자들에게 설교 말씀을 전하고 있다.
<사진설명> 성회 기간에 윤석전 목사는 연약한 육체에도 ‘나는 죽어도 너희만은 살아라’라는 예수 정신으로 설교 말씀을 전하고 토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애타게 기도했다.
<사진설명> 아메리카센터에서 진행한 목회자세미나 모습. 현지인 목회자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회개 기도하고 있다.
“사도 바울을 태우고 가는 배는 유럽을 싣고 가는 배”(아널드 토인비)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두 세계의 인물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 한가운데 서 있던 바리새인이면서 동시에 당시 로마·헬라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의 움직임은 사도행전의 중심부를 이루고, 그의 걸음과 그가 타고 가는 배는 결국 유럽의 지형과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유럽의 현재가 헤브라이즘(Hebraism)과 헬레니즘(Hellenism) 두 가지로 융합되었다고 한다면,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인물 자체였습니다. 현재 유럽 문명과 과학 기술은 사도 바울이 전도하려고 걸어 다닌 기독교 정신의 흔적에 다름 아닙니다. 바울이 다니지 않은, 우리에게 남겨진 또 하나의 넓은 전도 공간은 바로 아프리카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계를 변화시킨 것처럼
사도행전의 마지막인 28장은 전도자 사도 바울의 전도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습니다. 바울은 그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가르칩니다. 우리 연세가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가 연이어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담대히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로 기록하며 채울 것입니다. 즉 사도행전 29장은 우리가 그 스토리를 채워 갈 것입니다.
‘갈릴리 어부’로 그의 생애를 마칠 뻔한 사도 베드로는 성전 미문(美門)이라 불리는 곳에서 걷지 못하는 자를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그의 생애를 보낸 다음,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장엄한 모습으로 구원의 주님께 순교의 제물로 그의 생명을 드리고 파란만장했던 이 땅의 삶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충청도 부여의 배추장수’로 그의 삶을 보낼 뻔했던 윤석전 목사는 서울의 연희동, 망원동, 노량진 그리고 궁동으로 성전을 옮기고 확장하면서 제대로 인생을 걷지 못하던 자들을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이제 지치다시피한 자신의 마른 몸을 드려 아프리카 토고의 낯선 사람들에게 가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를 전하여 새로운 생명을 전달합니다.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그를 대하던 연세가족은 담임목사와 함께한 시간만으로도 자랑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참으로 멀고 먼 나라들입니다. 더구나 아프리카 토고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하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나라입니다. 누가 말이나 꺼내며, 누가 한마디라도 해 본 적이 없는 생경하기 짝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연세가족은 아프리카 토고라는 나라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고 그 나라 사람들을 위해 금식하면서 기도했고 마음 다해 예물을 드리는, 이제 너무나 친숙하게 되어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듯한 이웃나라입니다.
유럽이 사도 바울의 전도 현장이었다면, 이제 아프리카는 누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프리카의 가난과 궁핍과 미신과 샤머니즘의 현재는 예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로 충분히 설명됩니다. 예수를 알게 하면 유럽이 바울의 전도로 그 운명이 바뀌었듯이, 아프리카도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을 바꾼 것처럼 윤석전 목사가 아프리카를 똑같이 바꾸리라 믿습니다.
천국 소망 키워 가는 토고 300교회
‘라 그레이스 교회(Temple la Grace)’는 아프리카 토고에 연세중앙교회가 세운 223교회 중 제48호 교회입니다. 앞으로 70여 교회가 토고에 더 세워질 것입니다. 꾸불꾸불하고 덜컥거리는 길을 한참 지나서 나타난 이 교회 정문에는 “연세중앙침례교회의 후원으로 세워진 교회”라고 영문으로 쓰인 문구가 있습니다.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는 성도가 100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40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반겨 주는 토고의 어린 소년 소녀들의 눈부시게 빛나는 얼굴들은 한국 교회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회 팀을 만나 사진을 찍거나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껴안고 웃는 신앙의 소년 소녀들의 얼굴은 얼마나 찬란하게 검은 빛을 발하는지 ‘저토록 검은 색깔이 아름다운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한국의 이방인들을 만나서 기쁨과 환호가 아이들 사이에 넘쳐 납니다.
우리는 훗날 그림자와 같은 희미한 이 땅에서 우리의 생명이 다한 후에 맑고 밝은 천국 문 앞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를 상상해 보면, 천국 문 저 앞쪽에서 뭔가 출석부 같은 것을 들고서 연세가족이 천국에 제대로 잘 이르렀는지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는 담임목사를 뵙게 되어 기쁨이 넘칠 테지요. 담임목사의 얼굴과 몸은 싱싱하고 눈부신 청춘입니다. 아! 저분이 저토록 키가 크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젊은이였던가!
그리고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아프리카 토고에서 만난 교회의 소년 소녀들입니다. 뜨거운 태양 빛에 비치는 까만색 얼굴이 저토록 눈이 부시게 빨려 들어갈 듯이 아름다울 수 있다니! 하늘나라에서 만나는 찬란하게 곱디고운 까만 얼굴들입니다. 처음 보는 듯하지만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친숙한 얼굴들입니다. 연세중앙교회의 후원으로 세워진 교회에서, 연세중앙교회 성도들의 예물과 금식과 기도와 후원을 배경 삼아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했던 형제들과 자매들이라고 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를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로 30시간이 걸려야 갈 수 있는 멀고 먼 아프리카 토고를 지극히 가까이서 만나는, 공간을 넘어 기쁨의 재회를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허울을 드러내는 빛의 말씀과 진실한 회개
첫날 목회자세미나는 싸움으로 시작됩니다. 토고의 크리스천이 대략 30% 정도라고 하지만 현지인 리더들과 대화해 보니 그 30% 중 가톨릭이 가장 많고, 하나님의성회와 오순절 교회가 대다수라고 합니다.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가톨릭이 그러하듯 토속신앙과 미신적인 샤머니즘에 영향받아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과는 거리가 한참 먼, 단지 신앙의 흉내를 내는 듯한 모습들입니다. 샤머니즘에는 죄가 없고 회개도 없습니다. 단지 어떻게 해서든 재앙을 피하여 재수 좋은 사건들로 자신들을 채우려고만 합니다.
이를 성령의 감동으로 간파한 윤석전 목사는 당신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계속 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 믿어 잘 먹고 잘 산다”라는 신앙을 왜곡한 샤머니즘을 고집하려 듭니다. 그들의 미신과 정령 신앙과 뒤섞인 혼합 신앙은 하나님 신앙이라고 할 것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영생을 주시는 구세주가 아니라 그들의 샤머니즘처럼 돈과 재물을 손에 쥐어 주는 무당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단지 재앙을 액땜하는 자에 불과하고, 그들의 돈벌이와 출세를 열어 주는 무당에 다름 아닙니다. 거기에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것만 들으려 하고,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하나님 말씀에는 귀를 닫으려 합니다. 가난에 찌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의 대속으로 주신 영원한 생명보다 물질적인 복을 노릴 뿐입니다. 목회자들은 감각을 상실한 송장처럼 무반응으로 일관했으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그들의 신앙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착각과 가짜 신앙은 폭로당해야 회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부자가 된다면 이른바 토고의 30% 크리스천은 모두 부자여야 하고,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어떻게 집 한 채도 남겨주지 못하고 제자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천국과 영생을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설교자 윤석전 목사는 성경 말씀을 계속 인용하면서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하나님 신앙을 설파해 나갑니다. 그렇게 첫 번째 목회자세미나를 마치고, 두 번째 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비참한 자들인지를 깨달아 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들은 통곡하고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야말로 참된 회개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죄를 진정 회개하는 시간 없이 대충 지나가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인 척 또는 목회자인 척하려는 일종의 자기기만(自己欺瞞)이 여지없이 폭로되었습니다. 또 죄악된 실체가 숨김없이 벌거벗듯이 드러날 때 도저히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통회자복하며 회개합니다.
세미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는 처음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이제 윤석전 목사가 강단에 오르자 함성과 박수가 저절로 터져 나오고 난리도 아닐 정도로 온몸으로 환영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중에도 박수와 환호성이 터집니다. 처음에는 어디 한번 드잡이를 해 보자는 식으로 시작하였으나,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애타는 설교자의 성령의 능력의 말씀 앞에 압도당하여 전해지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고분고분 순종하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가짜 신앙은 가면을 쓴 채 버티기를 해 보려 했으나 참으로 심령을 꿰뚫는 설교자의 권세 있는 말씀에 가면은 훌렁 벗겨지고 그들의 심령은 깨어집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신앙과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 주시는 영생의 축복을 얻어야 하고, 그렇게 영생을 가진 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참된 복음 앞에서 회개로 응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개치 않고 교인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목회자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7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