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설교 요약] 마지막 때 미혹에서 벗어나 말씀대로 따르라

등록날짜 [ 2015-08-04 09:54:27 ]

말세에는 언제나 육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미혹이 충만하니
환경과 상황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


<사진설명> 윤석전 목사가 설교한 후, 통성기도를 인도하고 있다.
 
제가 어렸을 때도 사람들은 ‘말세’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이 말하는 말세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저는 나이가 어렸는데도 우리 목사님께서 말세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면, ‘나는 나이가 어려서 주님 앞에 아무런 한 일이 없는데, 아무리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하루도 안 빼놓고 죄지어서 날마다 회개하기에 바쁜데, 이럴 때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다급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녁때가 되면 아버지 몰래 교회에 가서 그날 하나님 앞에 죄지었다고 생각하는 일을 두려워 떨며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회개해서 성령이 충만해져도 안심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옳은 행실을 한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신부 자격에 비춰 볼 때 저 자신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날마다 내가 주님 원하시는 신부의 자격을 갖췄는가 하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 가며 살았습니다. ‘마지막 때는 엄청난 핍박이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 죽이는 날이 온다고 했는데 지금 내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며 성경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신부의 믿음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나이를 먹어 군대에 갔을 때에도 철저히 주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춰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버림받으면 나는 절망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영혼의 불감증을 조심하라
성경에, 예수께서 어느 때에 다시 오시리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현재도 착착 진행되어 가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육신의 때는 육신을 위해 살라고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주셨으니 거기에 쏟아부으라!” 아무리 성경대로 말해 주어도 시큰둥할 때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왜 답답하겠습니까? 마지막 때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때가 온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마13:14). 

제일 두려운 것이 영적 불감증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감증, 죄에 대한 불감증, 자기 영혼의 때에 대한 불감증, 주님 재림에 대한 불감증, 천국과 지옥에 대한 불감증을 오늘로 싹 끝내버리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도 보면, 주님이 재림하실 줄 뻔히 알면서도 불감증 때문에 어두움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편하다, 좋다, 안전하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깜빡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신부로서 끝없이 주님의 뜻을 좇아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이 재산입니다. 주님을 공중에서 만나는 것이 마지막 때에  영원한 기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미혹되고, 세상에 현혹되어서 깨어 있지 못합니다. ‘설마 오늘 밤에 오시겠어? 설마 내일 오시겠어? 안 돼, 지금 오시면 안 돼’ 할 만큼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 많은 세월 동안 주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왜 지금 오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왜 주님이 지금 오시면 안 되게끔 자신을 만들었습니까? 당신이 안 된다고 하는 그때 주님이 강림하시면, 바로 당신에게 비참한 영혼의 때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해 어떤 고생을 해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그 날의 영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왜 고생을 합니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고생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되 주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 줄도 모르고 그저 ‘나는 이 정도 믿으면 됐다’고 하는, 자기 신념에 미혹당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돈, 명예에서 벗어나라


마태복은 24장 16절에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주후 70년경, 유대인들은 돈에 집착되고, 로마 정부의 억압에서 해방돼 보겠다는 신념에 고정돼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몰려듭니다. ‘거기 가야 돈 번다더라. 거기 가야 애들 공부시킨다더라. 거기 가야 좋은 집 짓고 산다더라. 거기 가야 장사가 잘된다더라’라는 자기 인간의 생각에 미혹돼 자꾸 몰려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때가 되거든 유대에서 벗어나 산으로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너는 마지막 때 돈에 집착되어 돈에 끌려가지 말고, 인간의 생각에 집착돼 끌려가지 말고 돈과 상관없고 인간의 생각과는 달리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고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가 로마 군인들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돈에 집착한 인간들은 마지막 때도 이와 같이 세상에 미혹되어 세상으로 끌려다니다가 죽을 것입니다. 살아날 가망성은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 때는 이와 같이 돈을 좇지 말고 말씀을 좇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지금 얼마나 전 세계가 돈에 집착해 있습니까?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라고 했습니다. 돈이 결국은 고통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해서 육신의 고통, 환경의 고통을 면해 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마지막 주님이 다시 오시는 순간에, 육신은 육신대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영혼도 영원토록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눅21:20~21).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려고 돈을 따라가며 몸부림치는 자들이 운집되는 곳에서 빨리 빠져나오라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재 상황이 하나님 말씀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도 결국은 말씀대로 살아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리스도인이 받을 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3~6).

그런데 이 복은 다 어디로 갔나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치신 이 복음이 어디로 갔습니까? 지금은 육신의 요구에 따라 살 때가 아닙니다. 육신의 요구는 결국 돈입니다. 육신의 요구는 결국 자기 편한 대로 살자는 것이요, 자기 명예를 드러내자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요구대로 사시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4절에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디를 가야 돈 벌고, 어디를 가야 출세한다고, 결국은 육신의 요구대로 살라고 끊임없이 미혹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돈도 못 벌고, 출세도 못합니다. 그저 따라다니다가 육신도 망하고, 결국 영혼의 때도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목소리만 듣고 산다면 비록 육신은 고달플지라도 영원한 날에 영원한 복이 넘치는 날이 오고 말 것입니다. 내 영혼의 신령한 날이 보장되어 있다면 고난도 복이니 이 얼마나 희망찹니까.
 
육신은 힘들어도 영혼의 때는 부유해야
성경에서 미혹당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도 모르게 속이는 악한 마귀 사단에 속지 말라는 말입니다. 만약 지옥에서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미 때늦었습니다.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기회는 세월 속에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 사라지기 전에 빨리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회개할 기회, 새로 시작할 기회를 놓치면 큰일납니다. 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어리석고 둔하고 어둡고 무지한 제가 저를 볼 때, 하나님을 얼마나 섭섭하게 하고, 언짢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만큼 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을 답답하게 해드렸을 텐데 저는 무지해서 그것을 모릅니다. 주님이 흘리신 피로 오늘 잠들기 전에 제 죄를 사하시옵소서.’

이것은 내 목숨의 마지막을 마감하는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를 저녁마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혼의 때만큼은 망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업하다 망하는 것은 그나마 소생할 기회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옥은 한 번 가면 절대 다시 돌아올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때에 지옥 가면 안 되니까 차라리 부잣집 문턱에서 얻어먹는 거지로 살지라도 천국에 가야 한다는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독약은 알고 먹어도 죽고, 모르고 먹어도 죽습니다. 당신이 알고 미혹당하든 모르고 당하든, 죄를 알고 짓든 모르고 짓든 긍휼 없는 심판만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미혹에서 벗어나라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미혹만 안 당하면 어떤 환난도 다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죽음이 와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순교도 거뜬히 해낼 수 있습니다. 미혹당하지 말라는 말 속에 마지막 환난의 고통이 다 들어 있으니, 미혹에서 벗어나면 결국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이 지구는 지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죄와 죄가 충돌하고, 저주와 저주가 충돌하며, 마지막 기다릴 것은 불타는 지옥밖에 없고, 우주의 종말밖에 없는 최후에 와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하나님이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도록 인간들의 도전이 맹렬한 이때, 정신 바짝 차리고 기도로, 성령 충만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육신도 사라지고 영혼만 남을 때, 그 때 당신은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자문해 보십시오. 당신이 지옥에 갔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 속에서 돈이 생각나겠습니까? 텔레비전 볼 생각이 나겠습니까?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지옥에 갔다고 생각한다면 이 땅에서 무엇인들 못 견디겠습니까? 그 어떤 것도 지옥 고통보다는 훨씬 행복합니다. 

우리 육신은 내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내 육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을 돈 벌고 명예를 얻는 일에만 다 써버린다면 그것이 곧 자기 영혼을 배반하는 일이요, 주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육신은 어차피 소모되고, 세월 속에 사라져 갑니다. 육신은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노니 육신의 요구에 미혹당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다시 오시면 넉넉히 들림받을 믿음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러려면 오늘 미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를 미혹하는 수많은 환경과 조건과 악한 마귀 사단 귀신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44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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