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12-15 13:37:57 ]
예수생애부흥사회가 주최하는 제35차 부흥사수련회가 12월 5일(월)부터 8일(목)까지 연세중앙교회 목양센터 야고보 성전에서 열렸다. 주님이 쓰시는 부흥사가 되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목회자가 전국에서 참석했다.
<사진설명> 제35차 부흥사수련회에 참가한 목회자들. 사진 강문구 기자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는 부흥사수련회 월요일 저녁예배부터 목요일 오전예배까지 총 6회에 걸쳐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새벽예배는 변임수 목사(선린순복음교회), 지태동 목사(대구광진중앙교회), 최해진 목사(포항하늘소망교회)가 오후 예배는 문성환 목사(성심장로교회), 권오성 목사(인천큰빛감리교회)가 나서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부흥사수련회 주강사인 윤석전 목사는 창세기 3장 17절~21절, 에베소서 6장 10~13절 말씀을 본문 삼고 “마귀역사를 알고 보고 이기는 영감과 영력 있는 목회자가 될 것”을 당부했다.
윤석전 목사가 설교 내내 마귀역사에 당하고 산 목회자들을 애타게 바라보는 주님 심정을 담아 성령의 감동대로 영적 사정을 밝히 알려주자, 참석 목회자들은 그동안 마귀역사를 두둔하고 하나님의 원수를 교회와 가정에 방치한 지난날을 뜨겁게 회개했다. 8일(목) 오전예배를 마치고는 부흥사 수료자 29명에게 수료증을 수여했다.
[부흥사 수련회 화요일 저녁 설교 요약]
본문 말씀: 창3:17~21, 엡6:10~13
마귀역사를 간파할 영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영적 감각이 없이 태어난다. 모친의 태에서 출생할 때 육은 살아 있지만 영은 죽어서 나오기에 영적 감각을 가질 수 없다. 영적 세계는 영적 감각 없이는 전혀 알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분한 일이 영적 세계에서 진행되는 마귀역사를 모른 채 그 궤계에 속아 영육간 고통당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적 세계를 모르고 영적 감각이 없기에 마귀에게 당한다. 영적 세계를 알면 마귀역사와 대치하지 않을 수 없다. 마귀역사는, 우리가 자기를 깔보고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게 해서 죄짓게 하고 그 죗값으로 우리를 한입에 삼켜버려 결국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한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마귀역사와 부딪히면서 살아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마귀역사에 속아 종노릇한다. 왜 우리는 마귀역사를 모를까? ‘영감’ 즉 영적 감각이 없어서다. 목회자는 자식도, 아내도, 혈육도, 목숨도 초월해야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귀는 목회자, 부흥사일지라도 세상에 우선순위를 두게 한다. 세상 것을 우선순위에 두면 하나님은 후순위로 역사하는 분인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감동을 따라 사느냐, 그 감동을 누가 주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마귀는 천하 영광을 갖고 싶은 감동을 준다. 마귀는 우리 생각 속에 ‘천하 영광이 제일’이라고 확실하게 프로그래밍해 놓았다. 하나님 말씀을 절대화하도록 프로그래밍되야 하는데, 세속적인 마귀역사의 프로그래밍이 세팅돼 버렸다. 우리 속에 세속적인 근성이 세팅돼 있다는 것은 이미 완전히 망하고 있다는 증거다. 마귀의 세속적 세팅을 흔적 없이 없애야 한다.
마귀가 주는 욕심은 저주다. 마귀는 욕심 부리는 자를 통째로 삼켜 버린다. 세상 것에 흥분하지 말고 영적인 것에 흥분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더덕더덕 붙은 세속적 근성을 깔끔하게 정리하라.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잘하려고 한다면 그만큼 거세게 가로막는 마귀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한다. 마귀역사가 방해했다는 사실을 몰라 “하나님과 관계를 잘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좌절하고 주저앉으면 마귀가 바라는 대로 된 것이다. 마귀는 주님과 나의 관계가 한 계단 올라가면 한 계단 올라간 그 자리에서 가로막고, 두 계단 올라가면 두 계단 앞에서 가로막는다. 영감을 갖고 마귀역사에 대처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목회는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감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 영적 생활 한 걸음 한 걸음이 마귀역사에 의해 움직이면 안 된다. 오직 성령의 감동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마귀는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려고 온갖 고난을 가져다 줬지만, 욥은 하나님을 절대 원망하지 않았다. 욥은 물질과 자녀를 다 빼앗겼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해서 하나님을 빼앗기지 않았다.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만은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이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하지만 마귀가 아담을 죄짓게 해서 죽이는 바람에 생명의 종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영적으로 죽은 나를 살리시려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그 생명을 주셨기에, 우리는 예수 생명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세상 문화에 속아서 다시 그 생명을 마귀에게 넘겨주려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목회는 마귀 수작을 간파해야 한다. 어렴풋이 알아서는 안 되고 영적 세계를 확실하게 보고 알아야 한다.
마귀역사를 절대로 관용하지 말라
돈은 마귀가 당신을 지배하는 무기, 당신의 생각을 장악하는 무기다. 목회자는 돈 욕심 부리지 말고 목회, 영적 생활, 기도 생활, 내 영혼, 성도 영혼을 챙겨야 한다. 복음을 위해 돈을 쓰면 잘 쓴 것이다. 돈과 문명은 나를 영적으로 천박하게 해서 하나님 밖으로 밀어내고 마귀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우리는 절대 썩어 빠진 세속, 문화,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욥의 자식들이 맏이 집에 갔다가 마귀 궤계로 그 집을 쓰러뜨리자 한자리에서 죽었다. 우리는 마귀, 사단, 귀신, 음부의 권세가 쓰러뜨리는 교회가 돼서 성도들이 다 죽는 무덤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음부의 권세가 쓰러뜨릴 수 없게 이겨야 한다. 왜 당신은 쓰러지는 문명과 물질, 불타 없어질 세속에 마음을 쓰는가. 당신의 사고에서 마귀가 세팅해 놓은 프로그램을 완전히 지워라. 바울처럼 성령께서 완전히 다시 세팅하게 하라.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 아래서 태어난 사람은 마귀 특성이 나타난다. 성장하면서 그 속에 죽어 있는 영혼이 계속 부패해져서 부패한 짓을 한다. 부모는 말썽쟁이 자식이라도 사랑한다. 그러나 자식이 하는 마귀역사를 사랑으로 봐서는 안 된다. 마귀역사는 마귀역사로 봐야 한다. 마귀역사, 귀신역사의 목적은 자식 영혼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에게 마귀 특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믿음으로, 영적으로 키워야 한다.
사람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 방종과 타락이 당연하다”며 마귀역사를 허용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가 자기가 하는 짓을 허용하고 있다. 절대 불의와 죄를 허용할 수 없다. 허용하면 죽는다. 마귀역사가 죽이려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못 해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애들 데리고 마귀가 죄짓게 할 수 있지 뭘 그러냐, 그 영혼을 죄짓게 해서 죽여 버릴 수도 있지 뭘 그러냐’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마귀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무지의 소치다.
목회자는 마귀역사가 영혼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죽은 영혼은 살리는 사명을 받았다. 당신 목회에 이처럼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는가. 우리는 사춘기를 성장 과정이라며 용납하지 말고 마귀역사를 쫓아내어 이겨야 한다. 자녀에게 마귀역사를 가르쳐서 그 자신이 싸워 승리하게 해야 한다. 목회는 이 땅에 마귀가 존재하는 한,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해 하나님의 원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요, 교회의 원수다.
성도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누구인가. 살인자, 영혼 죽이는 놈이 그렇게 한다. 우리가 이것을 간파하고 목회하고 알고 이겨내고 고쳐내야 목회자고 부흥사다. 마귀역사는 치열하게 싸우면 싸울수록 우리를 힘들게 한다. 육은 힘들지만 영은 이긴다. 마귀역사를 관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도 관용하지 않고 내쫓았고 예수님도 마귀 일을 멸해버렸다. 성령도 마귀역사를 몰아내 버렸다. 마귀역사는 관용의 대상이 아니라 쫓아낼 대상, 멸할 대상이다. 사람은 관용하되 마귀역사를 관용해서는 안 된다. 오직 성도를 죄짓게 해서 죽이려는 마귀를 몰아내고, 성도 영혼을 살려내야 좋은 목사요 좋은 사모다. 죽이는 자를 방관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면 안 된다. 악한 마귀역사는 쫓아내야 한다.
전투는 미지근하게 하면 안 된다. 목회는 미지근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역사는 미지근하게 대적하지 않는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하나님께 미지근하다가 비참하게 저주받았다. 군사는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여기 모인 목회자들은 군사적 목회를 했는가.
성도들이 목사 속을 바글바글 썩이는 것을 보고 “원래 저 사람은 성질이 그래”라고 치부한다면 당신 스스로 마귀역사를 감추는 것이다. 목회자는 정신 차려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설교해 죄를 회개케 하고 죄를 짓지 못하게 해야 사랑이다. 성도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몰아내야 한다. 회개케 해서 몰아내야 한다. 그 영혼이 다시 살게 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왜 성령의 뜻대로, 주님의 뜻대로 목회 하지 않고 사람의 뜻대로 하는가. 그 자체가 마귀역사다. 주의 종은 오직 하나님 뜻에 지배당해야 한다. 의 앞에 복종하는 자는 살고 도전하는 자는 죽는다. 목회자는 마귀역사를 알고 보고 해결할 능력과 권세가 있어야 한다. 듣는 만큼 영안이 열리고 듣는 만큼 보기를 바란다.
목회는 시종일관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쟁이다
마귀가 움직이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마귀와 싸우겠는가. 목회는 마귀와 싸우는 일이요, 언제나 몰아내고 승리하는 일이요, 언제나 마귀의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중단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판단해 보라. ‘과거에는 마귀가 지배했다. 그놈을 몰아낼 수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다. 회개하고 그 손에서 나왔다. 이제는 마귀가 지배하던 자를 성령이 지배했다. 완전히 달라졌다.’ 성도 영혼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 목회다.
당신의 목회에서 우리 주님이 다룬 마귀역사를 다루라. 제자들이 다룬 마귀역사를 다루라. 사도들이 다룬 마귀역사를 다루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공중의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2~13).
이겨야 선다. 의의 병기가 되려면 불의의 병기를 알아야 싸운다. 모르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목회는 싸워서 이겨야 한다. 영적 전투에서 지면 영혼을 죽이고, 이기면 영혼을 살린다. 우리는 마귀와 전쟁하고 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마귀의 궤계를 알고 대적하고 능히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이긴다. 마귀역사는 관용하는 것이 아니요, 강하고 담대하게 싸우는 것이다.
부흥사여, 여러분은 성도가 아니다. 당신 스스로 당신을 지키고 능히 이기고 성도를 지킬 영적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마귀역사가 존재하는 한 좋은 날은 없다. 우리는 좋은 날을 맞으려고 싸우는 것이다. 육신이 끝나야 좋은 날이 온다. 주님이 재림하셔야 좋은 날이 온다. 세상 물질문명에 경배하면, 육신의 좋은 날이 온다. 천하 영광을 주는데 육신이 얼마나 편하고 좋겠는가. 그러나 그 영혼은 결국에 죽는다. 마귀와 싸우고 끝없이 영적으로 살고 이기려는 사람은 절대 육신이 좋은 날은 없다. 예수님의 생애와 바울의 생애에 육신이 좋은 날을 봤는가. 악한 영과 투쟁하는 자에게는 천하 영광이 없다. 하늘의 영광이 있다. 영적으로 살면 살수록 육체는 괴로운 날이 온다.
마귀역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측 불허의 역사를 한다. 깨어 정신 차려 기도하여 파수꾼처럼 영혼을 지키라.
/정리 조신애 기자
<사진설명> 윤석전 목사가 부흥사 수련회에서 설교 말씀을 전하고 있다.
[부흥사 수련회 수요일 저녁 설교 요약]
본문 말씀: 계12:7~12
하나님의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라
예수 믿는 사람 대부분 성경을 믿는다지만 머릿속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계와 조건 안에서만 믿으려 하지, 그 밖의 것은 덮어놓고 믿는 추상적, 샤머니즘적 믿음 생활을 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막16:17)라고 하셨는데 ‘능력은 특별한 사람이나 받는다’며 성경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마귀역사다. 마귀는 하나님을 모르게 하고, 자기를 숨겨 자기와 상대하지 못하게 하고 인간을 속여 지옥 보내려 한다. 성경이라는 안경을 쓰고 나를 죽이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성경을 믿는다면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하신 말씀을 두고도 왜 그렇게 안 되는 일이 많은가. 안되게 하는 마귀를 이겨낼 능력은 예수밖에 없다. 우리가 마귀를 이기려고 전투하지 않는 까닭은 의지를 상실하고 영적 기력이 쇠해 성경 말씀이 생각나지 않아서다. 문제에 부딪히면 “구하라 주시마” 하신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하는데도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나님이 나를 버렸나’ 하며 원망한다. 하나님과 갈라 놓으려는 마귀역사인데 이를 모르니 우리를 돕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려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성경 말씀도, 예수 이름도, 예수의 피도 내 것이고 성령도 내 안에 계시는데 막상 필요할 때는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뒤쫓아가는 애굽 백성은 죽었으나 도망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살았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니 책임지셨다. 이를 믿고 내 평생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가야 하는데, 적에게 붙들려 실컷 당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니 이게 무슨 신앙생활인가.
마귀는 현실 상황에 맞도록 당신의 생각을 움직인다. 만약 당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면 의학적으로 죽는 것이 순리다. 죽이려는 마귀역사에서 살려내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의학적, 상황적, 환경적, 자연적, 현실적 순리를 좇아 목회하고 신앙생활 했다면, 더는 그러지 말라. 성경은 모두 순리를 역행해서 주님 뜻대로 진행됐다.
그런데 막상 문제를 만나면 고통당하는 상황에 묶여 지금까지 믿었던 하나님을 모르고, 막상 예수가 필요할 때 예수가없다. 마치 컵에 뚜껑을 닫고 물을 부으면 물이 한 방울도 안 들어가듯, 입으로 ‘아멘’ 하면서 가진 줄 알지만, 필요할 때 쓰려면 예수가 없으니 속이는 마귀에게 당한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인간의 질병을 해결하고, 아들에게 징계를 가해서라도 인간의 징계를 해결하고, 아들을 저주의 나무에 매달아서라도 인간의 저주를 해결하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서라도 인간의 지옥 갈 죄를 해결해 악한 마귀 사단 귀신의 저주, 질병, 사망, 지옥에서 인류를 건져내는 것이다. 그 뜻이 아직 당신에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왜 그럴까. 우리의 실패는 마귀가 그렇게 했기에 실패 자체가 죄요,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다.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올 수 없어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다 못 쫓으니까 주님께 와서 묻자 말씀하셨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9:29). ‘하나님께서 네 기도 응답으로 너를 귀신 쫓는 일에 사용하지 않으면 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당신에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마귀 짓임을 바로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는 성도들 앞에 믿음의 역사를 보여줘야 한다. 한번은 우리 교회 총력전도주일을 앞두고 일기예보에서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전국에서 비가 온다고 했다. 전도 주일 전날 성도들에게 전도 주일에 비 안 온다고 선포했다. 기도하고 응답받았기에 성도들에게 그렇게 담대히 말했고 실제로 주일에 비가 오지 않았다. 내 말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신 하나님 말씀이기에 이루어진다. 믿음을 박살내는 마귀 사단 귀신 역사를 몰아내라. 신앙생활은 논리, 이론, 현실, 상황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다. 직접 성령을 모신 우리의 삶은 이적이 충만해야 한다.
마귀역사를 알고 이겨야 성공자
마귀가 우리를 목회나 신앙생활이나 환경에 닥치는 수많은 불가능에 가두어 놓았으니 대책이 없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그렇게 만든 마귀역사를 알아야 한다. 유다에게 예수께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7:70)고 아무리 말해도 유다는 수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마귀는 제 속에 있는 사건도 인정하지 못하게 한다. 마귀역사가 믿어져야 원수를 해결하고 이기실 하나님을 찾는다. 마귀역사도, 하나님의 역사도 안 믿으면 무엇으로 신앙생활 하고 목회하겠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안 믿기 때문에 핍박이 오면 좌절한다. 성경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마5:10) 기뻐하라고 하였다. 성경을 따라갈 힘은 내 안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 마귀를 이길 힘은 말씀하신 주님, 성령, 그의 피로 구원받은 은혜에서 나온다.
우리가 불가능을 해결하고, 신앙생활 하고, 목회하고, 수많은 죄인을 회개케 해 구원할 대책이 성경, 예수다. 이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역사다. 2000년 전에 준비된 대책을 왜 사용하지 않는가. 마귀의 지배 아래서 마귀 일을 하는 것이 정욕, 욕심, 육신의 요구다. 이를 분별할 줄 알아야 대책을 사용한다. 성경의 욥은 마귀를 몰랐으나 하나님은 확실히 알았기에 실패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귀역사도 알고 하나님도 알기에 얼마나 성공자가 될 수 있겠나.
목회자들이 성도에게는 믿으면 된다고, 기도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실상 자기는 온갖 걱정을 다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마귀가 끝까지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결박을 풀 힘은 기도밖에 없다. 환경은 바뀐 것이 없는데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해지면 문제가 해결된 것을 경험한다. 장악하던 마귀가 힘을 잃었고 그를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으니 기쁨이 오고 담대해진다. 신앙생활과 목회는 마귀 사단 귀신을 이기는 생활이다.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 지면 내가 죽는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려고 나를 20년 동안 연중 무휴 철야기도 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모르고 영적세계를 몰랐다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마귀의 일을 다루기 위해서다. 교회에서 마귀를 안 다루면 이미 마귀에게 지배 받고 있는 것이다. 내게 닥친 수많은 문제가 마귀역사인 것을 알고 이겨야 한다.
/정리 이연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0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