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주린 사실을 깨달아 오직 예수로 채우라

등록날짜 [ 2019-07-30 18:22:50 ]


<사진설명> 제34차 초교파 장년부 하계성회에 참가한 성도들이 자기 영혼의 주리고 목마른 사정을 깨달아 부르짖어 회개 기도하고 있다. 7월 22일(월) 저녁부터 3박 4일간 열린 성회에서 새가족 부서와 지방교구는 각각 통일된 색상 티셔츠를 입고 질서정연하게 앉아 사모하며 은혜받았다. 김영진 기자


영적으로 빈곤함 느끼는 자만이
예수로 해결하려고 신앙생활 잘해

영적 감각 살아나  예수로 충만할 때
내 영혼이 만족할 참 부유 누려


육신을 위해 산다면 허망할 뿐

사람들은 자신이 영적인 존재라고 하면서도 실상 육의 존재만 인정한다. 육적인 것만 크게 여겨 매달리다 보니 신앙생활은 먹고사는 일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즉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영적 존재로서 살고 있는가? 실상은 육을 위해 살고 있으면서 영적 존재로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 있는지, 열매를 맺기 위해 있는지 혼돈하면 되겠는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하나도 없는 나무에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우리 신앙생활도 잎만 무성한 사람이 참 많다. 말로는 예수 믿고,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해 산다는데 실상의 삶은 전부 다 허상(虛像)을 위해 산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주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16:24). 주를 따르고 싶다면서 십자가는 안 지려고 한다. 우리는 예수 재림의 때를 기다리는 주님의 신부요, 내 영혼의 때를 소망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는 말이다. 삶의 본질을 바로 알고 그 본질대로 살다가 천국 가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우리 삶의 본질이 무언가.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으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라고 하셨다. 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 있으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다. 이것이 삶의 복이다.


가난한 자의 본능은 부유하고 싶은 것이다. 영적으로 부유한 것을 ‘충만’이라 한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 구속의 피의 은총이 넘치는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 말씀이 충만한 사람, 하늘의 소망이 충만한 사람, 이런 사람이 의(義)에 주려 의의 부유를 누리려고 몸부림친다. 우리는 항상 영의 본능으로 충만해야 한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면, 우리는 천국을 열망해야 하는데 천국을 열망하지 않고 육신의 소원인 세상 것을 열망하고 말로만 영의 것을 열망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첫 번째로 들려준 복음이 “너희 복의 실상은 육의 것이 아니야, 바리새인들처럼 명예와 권세와 돈이 아니야, 오직 내가 복이야”라는 것이다. 본문의 일곱 가지 복 전체를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로 충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천지만물을 만드셨다. 그 영혼을 위해 말씀을 주셨다. “먹지 마. 먹으면 정녕 죽어.” 아담이 그 말씀에 순종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영원히 살았을 텐데,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가난했던 정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다. 우리는 살기 위해 예수 믿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말씀은 살리는 영이라 했으니 살리는 자 앞에서 살려고 예수 믿는데 왜 살지도 못할 육신에 그렇게도 인생을 퍼부어 대는가. 당신이 육신을 위해 사는 인생은 아무리 퍼부어 대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남는 게 없다.


내 영혼을 예수로 부요케 하라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교회 오면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천국’이었다. 가난해서 이 땅에 아무 소망 없는데 천국은 굶주림도 없고 아픔도 없고 죽음도 없고 영원히 산다니 그냥 믿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교회에서 그저 세상 것 잘된다고 말하고, 정욕을 부추겨 육신을 위해 살도록 설교한다. 아담을 위해, 영혼을 위해 살라고 설교하면 성도들이 반기를 들기도 한다.

하나님 말씀은 내 영이 살아가는 질서요, 생명이요, 능력이요, 천국 가는 길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부유로 삼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지도 않으면서 천국 간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당신 심령의 가난을 알고 천국으로 채워가졌다면, 이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내 영혼의 갈망하는 요청이 천국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천국을 열망하지 않는가. 보이는 부유는 허상이고 보이지 않는 부유가 실상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천국을 가졌다면 하나님이 볼 때 그는 부자다. 천국 가는 조건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다. 기도에 가난해서, 기도에 미쳐서, 기도의 부자 되려고 해봤는가. 내가 진짜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에 천국을 소유하지 못해서 애통해 본 적 있는가. 영적으로 기도에 갈급한 사람은 기도하는 데 마음과 시간을 쏟으니, 그 응답받을 분량이 얼마나 부요한가. 그런데도 갈급해서 계속 기도한다. 이 갈증을 느끼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주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으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화평해야 복이 있다. 그 화평의 주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 그 피의 공로로 속죄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이 화평이다. 이것도 천국을 주시기 위함이니,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 하나님과 화평을 위해 십자가에서 죄의 담을 파괴시켜 버리고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이 열렸다”(히10:20). 즉 아담부터 하나님과 죄로 불목한 것이 예수 피의 공로로 화평을 이뤘다. 천국 가게 됐다는 말이다.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영적인 은혜를 받아들여라. 육신이 끝나면 기회가 없다. 그런데 육신이라는 이놈은 밤낮 먹고살려고 돈 번다. 가지면 가질수록 가난한 놈이 육신이다. 여러분의 영혼이 제발 영적인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난함을 느끼고, 예수로 채우려는 영적 본질이 계속 생산되기를 바란다. 기도하라는 말이다. 그런 열망이 없으면 하나님이 복을 줄 수 없다. 조건이 심령이 가난해야, 애통해야, 온유해야,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청결해야 한다. 이게 전부 다 “예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이 청결하려면 마음에 범죄한 모든 죄악이 떠나가야 하는데, 예수 피의 공로로만 가능하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허물어져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와 계실 수 있다. 인류 누구나 예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려는 복을 육신 탓에 제한받지 말라. 복을 준다는데 행동하지 않는다. 응답을 준다는데 기도하지 않는다. 약속을 이룬다는데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로막는 주체가 자기 육신이거늘, 어째서 모르는가.


복을 주실 주님 앞에 그 복을 못 받으면 절망이니까, 목숨 걸고 죄를 대적하고 그의 말씀에 거역할 의사가 없이 겸손하게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온유’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어 순교까지 한다. 이 지구상에 어떤 것도 아담이라고 하는 나의 영적 본질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것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서 우리를 충족해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 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려 죽어야 할 만큼 불쌍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만하고 건방지게 죄를 짓는가. 하나님과 화평해야지 어떻게 더러운 불의를 갖는가. 시종일관 이 복의 주체, 근원은 예수란 말이다. 하나님 말씀은 내 상황이 어떻든 듣는 순간 무조건 움직여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말씀대로 살려는 열망이 불타지 않고 왜 듣기만 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가. 이것이 육신의 본능이다.


내 육신을 영혼의 만족을 위해 써야

예수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주신 것이다.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저주받고 잔인하게 십자가에서 매달려서, 6시간이나 피 흘리면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평을 이루셨다. 내 마음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 내가 그 앞에 무릎 꿇어 온유하게 하기 위해, 내가 의에 주리고 목마를 때 ‘내 피를 받아 마셔, 내 살을 받아 먹어’ 하시기 위해,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해, 애통하는 자에게 속죄의 은총을 주시려고 아들을 주셨다.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났다는 말이다. 보여진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다. 그를 내가 소유하고 가져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말해도 안 갖는다. “아들의 살을 통째로 받아먹어라, 피를 마셔라” 하면서 줬는데도 우리는 거기에 감격과 감동이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우리에게 안 주면 안 되는 절대적인 복이다. 그 예수가 없으면 지옥 가니까 우리는 예수를 열망해야 한다.


러므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우리 죄 때문에 울고, 주님 뜻대로 못 살아서 울고, 내 영혼이 충족되지 못해서 울고, 주님이 피 흘려 죽어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해서 운다. 이렇게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에게 충만한 위로를 받는다.


자기 육신을 영혼의 열망을 위해 써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려고 사용하라.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영광은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를 이기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이기는 것이요, 세상 임금인 마귀를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승리는 아들의 피요, 목숨이었다. 죄 아래 살다 영원히 멸망할 우리를 불쌍히 여겼다는 말이다.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하고,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배부르게 했다. 아들로 했단 말이다. 남이 볼 때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실패 같으나, 우리의 죄를 도말하기 위한 영적 대승리였다. 승리자가 우리를 살리려고 죽었으니 나 살고 주님 부활하고 마귀와 죄가 멸망당했으니 영광 중의 영광이요, 승리 중의 승리다. 우리의 모든 복이 이뤄졌다.

이뤄진 복을 가지라는데도 육신이 거부하는 까닭은 육신은 영적인 복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생활도 사업도 우리 삶의 모든 목적이 아들을 줘서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기 위해, 이 뜻을 수용한 다음 이웃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다. 이런 뜻을 이루려면 내 육신에는 손해가 온다. 교회에서 겨우 찬양 하나 하고, 뭐 하나 맡고 “난 교회에서 이렇게 충성했어”라고 자부한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서 아들의 생명으로 나를 구원하셨고, 우리가 죄를 지어도 끝없이 회개를 받아 주시는 그 은혜 앞에 너무 초라하지 않는가. 여러분은 교회에서 영적으로 손익 계산 했을 때 밑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익을 남기는 사람이 되라. 그 흑자는 내 영혼의 것이다. 육신의 것은 아무리 가져도 내 것이 아니다.


당신의 신앙생활은 아담이 주체인가, 육신이 주체인가. 말로는 “주님께 은혜받았으니 충성하며 감사하며 살아야죠” 하면서 실상 그렇게 살라고 하면 “바빠요, 어려워요, 이래서 안 돼요” 한다. 하나님이 여러분 영혼의 때 복 주시려고 건넨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어둠의 주관자 마귀는 이 사실을 모르게 해서 아담을 위해 살지 않고 육신을 위해 살다가 그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려 한다. 하나님 아들의 피의 공로 앞에 성령의 본질로, 초대교회와 같이 사도행전을 재현해야 한다. 내 영혼이 정말로 갈망하려면 내가 애통할 만큼 심령이 가난하라. 하나님 앞에 절대 복종할 만큼 온유하라. 정말로 그가 내게 주신 은혜를 사모해서,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내 영혼이 목말라 죽겠으니 살기 위해 예수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애절한 열망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정리 이연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3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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