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
등록날짜 [ 2004-01-12 22:24:19 ]
지금부터 6년 전, 현재 담임하고 있는 포항 열린교회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동료 목사님들로부터 흰돌산수양관에 대해 소개를 받고 그분들과 함께 처음으로 제 12차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윤석전 목사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된 것을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도착한 첫날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은 내게 역사하셨다. 수양관 마당에 들어서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려 혹시 누가 볼까 싶어 얼른 손수건으로 훔치기를 시작했다. 식당에 가서도, 저녁 집회 찬양 팀을 보면서도 흐르는 눈물로 인해 도무지 찬양을 부를 수가 없었다. 첫날 말씀을 들으면서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비로소 회개의 눈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12년만에 받은 방언은사
화요일 오전부터 수요 오전 집회까지 선명하게 은혜로 다가온 말씀들로 영의 포식을 누렸고, 수요 저녁집회는 은사 집회를 열겠다고 광고하셔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며 집회에 참석하였다. 30분 동안 전력을 다해 기도하여 모두가 방언받자고 하시며 기도가 시작되었는데 ‘서른네 살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놀라운 은혜를 받았지만 그 후 12년이 지나도록 많은 목사님들의 이런 저런 방법대로 따라 해보았어도 받지 못한 방언을 어찌 30분 만에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어디 가서 방언을 받을까’하는 생각으로 힘을 다해 방언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땡” 하는 종소리와 함께 전반 15분이 끝났다. 방언 받은 사람 손들어보라고 할 때 놀랍게도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어찌나 그분들이 부러운지! 이번 기회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감으로 남은 15분 동안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온 몸은 땀으로 푹 젖었으나 문제 삼지 않고 기도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내 입에서 생전 처음 듣는 생소한 소리가 들리고 ‘이것이 방언이구나’ 깨닫는 순간, 그 때의 기쁨은 마치 새장에 갇혀 날개를 퍼덕이던 새가 새장에서 벗어나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듯한 그런 기쁨이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기도회에 참석하는 성도면 누구든 방언 은사 받아
그렇게 숟가락으로 떠서 받아먹듯 방언 은사를 받고는 목요일 하산하기 전 윤 목사님으로부터 세 가지 부탁을 받았다. 첫째, 하루 8시간씩만 기도했으면 좋겠다. 둘째, 매일 저녁 기도회하라. 셋째, 실천 목회 연구원을 통해 받은 은혜를 유지하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루 8시간은 빼낼 수가 없어 하루 4시간 기도하기로 하고, 매일 저녁 기도회를 열었다. 저녁 10시에 몇 안 되는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기도회에 참석한 성도 모두가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이런 역사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성도면 누구에게든지 일어났다.
방언을 말하게 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은 또한 치유의 역사를 부어주셨다. 첫 치유의 역사는 이웃 교회에 나가는 권사님에게서 일어났다. 그 분 동생의 소개로 우리 교회 저녁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자궁에 물 혹 두 개가 10Cm 이상 자라서 몹시 고통스러워했으며, 배는 복수가 차서 만삭된 임산부 같은 모습으로 왔다가 그 밤에 함께 기도한 후 돌아갔다. 다음 날 저녁 기도회 때 나왔는데 복수가 다 빠지고 얼굴은 정상인보다 혈색이 더 좋아져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렸다.
손 얹고 기도하자 시력 잃은 여성도 시신경 회복, 폐암환자 치유
두 번째는 야간 운전 중 자신의 실수로 방호벽에 차를 부딪혀 차는 말할 것도 없고 핸들에 안구를 부딪혀 시력을 다 잃어버렸으며, 두개골은 조각조각 금이 간 한 여성도가 치료받은 일이다. “목사님,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두 눈을 못 보고 어떻게 평생을 살아요. 의사가 더 이상 눈으로 볼 생각은 말래요.” 움푹 꺼진 두 눈에서 핏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성도를 보며 “의사 말보다 고치시는 하나님 말씀을 믿으세요!”라고 권면한 후 그를 위해 기도하였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일 개월 만에 여성도의 안구가 정상적 위치로 나오게 하시고 시신경을 되살리어 보게 하셨으며, 퉁퉁 부어올라 보기에도 무섭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와 흠 하나 없이 치료받고 퇴원케 하셨다. 2002년 11월, 후배 목사가 똑같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얼굴만 원상회복시키는데 사천 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세 번째, 한 폐암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그 가족과 4일 밤을 기도드리는 중에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주셨다.
네 번째는 나의 아버님 우영구 목사님이 99년(당시 80세)에 포항 선린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셨는데 의사는 “좌측 하복부에 계란만한 것이 만져지는데 암의 종류는 모르나 암은 확실하니 입원해서 수술 받아야 합니다.” 라며 먼저 초음파 검사부터 하라고 했다. 입원실이 없어 응급실에서 4시간을 대기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암을 제거해달라고 기도드렸다. 4시간이 지나 입원실로 옮긴 후 암 덩어리를 손으로 직접 만지고 확인했던 의사가 다시 와서 진찰했을 때 암은 만져지지 않았다. 초음파 검사에서도 깨끗했다. 의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렸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환자 챠트 기록에 아버님의 암이 있던 부위를 표시해 놓은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2003년 올해는 전세방 교회에서 대지와 건물이 있는 교회로 이사할 준비를 하도록 은혜를 주셨다.
예수생애 부흥단 입단살아 계신 하나님, 그 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전혀 알지 못했던 흰돌산수양관으로 나를 이끄셔서 윤석전 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 98년 가을 학기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이면 실천목회연구원에 참석해 말씀을 들으며 더 큰 은혜를 받고 있다. 2002년 12월에는 예수생애 부흥단에도 입단하게 되었다. 부흥회를 인도할 때 은사 집회를 열면 하나님께서 나같이 부족한 자도 쓰셔서 30분이면 참석한 성도들이 거의 다 방언은사를 받는 은혜도 주셨다. 그들을 바라보며 6년 전 처음 방언 받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여기까지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나도 성도들을 위해 윤석전 목사님처럼 힘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애쓰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