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세미나 간증 | 황규완 목사

등록날짜 [ 2004-03-29 13:45:12 ]

실천목회 통해 목회 새힘 얻어 교회 부흥·교회 건축 실현해

1993년 5월 20일 48세의 나이로 대구시 대명동에 20평 교회를 개척했다. 늦게 시작한 목회라 잘 해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사모와 함께 저녁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새벽기도 마치고 집에 와서 집안 일 정리하고 다시 나와서 심방하고 병원 전도하고 매주 한번씩 성도들과 산에 가서 기도하고 처음부터 바르게 잘해 보려고 나름대로는 열심이었다. 오직 교회와 집에만 왔다 갔다 하면서 모임도 끊고 외출도 삼갔다. 개척 시작부터 도움 받지 않고 어려워도 우리보다 어렵고 약한 교회, 고아원, 양로원 돕고 해외선교 지원하고 매월 재정의 30%를 전도와 구제로 사용하기를 7년.

그런데 문제는 남달리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교회는 부흥되지 않고 밤낮 30~40명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서도 자부심을 갖는 것은 ‘하늘의 상은 교인이 많고 적은데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에 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이런 괴변에 만족했으니....

그런 중에 흰돌산수양관 윤석전 목사님의 집회에 대해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기도 많이 하시고 영력 넘치는 목사님이라고. 나는 본래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품이다.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 배우고 알고 싶어서 세미나에 참석해 보면 밤낮 새로운 것이라 소개하지만 별 신통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니며 배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나만 열심히 바르게 하면 되지 방법이 중요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듬해인 1999년 윤 목사님의 집회 소문을 듣고 사모와 함께 참석했다. 참석 첫날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제까지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었다. 하계 세미나에도 참석했었는데 그때도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이제까지 열심히 한다했던 목회가 나 혼자의 열심이요, 나 혼자의 만족이요, 다분히 인본주의 목회였으니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나만의 열심 목회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날이 너무나 후회스럽고 속은 것만 같고 빼앗긴 것만 같고 하나님께 너무나 부끄럽고 염치없어 울 수밖에 없었다.
7년 목회에 고작 30~40명의 교인들, 그래도 잘났다고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자만에 빠졌던 자신이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로 등신짓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해 9월 실천목회에 등록하고 목회방향을 ‘내 중심’에서 ‘예수 중심’으로 바꾸기로 결심하고 전환 하는 중에 엄청난 풍파가 교회에 불어 닥쳤는데 ‘우리 목사님 흰돌산 다니더니 달라졌다, 변했다’는 것이었다. 또 윤 목사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듣고 교회가 술렁거리더니 20여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일어났었다. 개척교회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과 아픔이었다. 그러나 윤 목사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쓰시는 목회자라 확신한 바 있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은혜 받기를 각오하고 목회에 성공해서 우리들의 목회의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실천목회에 다녔다.

놀랍게도 그날 목사님의 강의는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실상을 눈으로 본 듯 말씀하셨고 그때마다 나는 깨닫고 인내하고 기도할 힘을 얻어 목회 현장에서 실천해 나갔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기도하는 시간을 늘리고 주님 심정 가지고 강단에 서려고 애를 쓰고.... 그런 중에 20평 교회를 옮겨야 할 사정이 생겼다. 적은 돈으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라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때 은혜를 베푸시고 도우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구 대명동에 160평 땅을 사게 된 것이다. 교회를 건축해야 하는데 한 푼의 돈도 없었다. 성도들 중에는 집 가진 사람 하나 없고 아무도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축을 앞두고 일부 성도들이 또 교회를 떠났다.

“자신을 내놓아라, 희생하라, 사욕을 버려라” 설교하신 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40일을 밤마다 산에 올라가서 기도 하면서 결심하여 결국 살고 있던 아파트, 자녀들 자동차, 심지어는 자녀들의 피아노까지 주님께 바쳤다. 순종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교회를 짓게 하셨다.

새벽기도 나오시는 다른 교회 권사님이 일천만원을 헌금해 주셨다. 나는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였고 그 돈으로 설계를 의뢰했다. 감사한 것은 공사 중에 주민들의 방해도 없었고 수억의 공사대금을 한번도 미루어 본 적이 없었고 은혜 가운데 공사를 마치고 입당했다.

지금은 많은 성도들이 모인다. 많은 성도들에게 방언이 터지고 해마다 여러 번씩 전도 집회를 자체적으로 진행하면서 전도에 힘을 쓰고 있다.

우리 목회가 이제 10년 남짓 되지만 염려하지 않는다. 연한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능히 그 모든 것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늦게 부르실 때 우리의 나이를 모르셨겠는가? 요즘 연배목사님들이 실천목회에 안 보이는 분들이 계셔서 마음이 아프다. 나의 간증을 듣고 늦게 시작하시는 목회자 분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윤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을! 늦게 만난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대구명지교회 황규완 목사 김화자 사모

위 글은 교회신문 <5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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