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성회 간증공모 수상작

등록날짜 [ 2005-08-04 15:33:07 ]



“이젠 부모님 목회에 도움되는 딸로”
 
자장면 집 딸은 자장면을 지겹도록 싫어하듯이 나는 목사님이신 아빠가 싫었다. 신앙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은 목사님, 사모님과 상의하지만 나는 사춘기 고민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싫었다. 항상 아빠한테 불만이 가득해서 대들고 교인들 앞에서 짜증을 냈다. 전교 35등에서 98등을 오르내리는 내 성적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산봉우리 형.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핸드폰 요금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 이유는 남자와 친구 때문이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배운 플롯으로 남녀 혼성합주단 단원이 돼 그들과 어울리며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기도 했다.
내 둘도 없는 친구 소라와 함께 이번 성회에 참석했다. 청주로, 양구로 때로는 춘천으로 늘 가출 생활하는 소라에게 “교회 가자”고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술만 마시면 “너 이제 날 위해 울면서 기도하지 마!”라며 오빠들과 노는 게 좋고 교회 사람은 보기도 싫으니까 다시는 찾지 말라던 소라. “난 네가 돌아와서 흰돌산수양관에 갈 수 있도록 끝까지 기도할 거야.” 소라를 기다리는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갔지만 애타는 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소라를 불러주셔서 같이 은혜 받고 돌아왔다. 윤석전 목사님께서 부모님에 대한 설교를 하실 때 한 달 분량의 약을 가져다 놓고 드시면서 늦은 밤에도 설교준비 하시는 아빠의 모습, 두통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엄마의 모습, 눈물 흘리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나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이제 절대로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않고 나 때문에 목회에 지장이 없도록 기도하며 공부 잘 하겠다고, 그동안 너무 죄송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나쁜 친구들도 완전히 끊었다. 학생부 임원의 직분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할 것을 다짐했다.
내 꿈은 한국무용의 우수성을 알리면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세계적인 무용교수가 되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진학해 꼭 그 꿈을 이룰 것이다.

사랑감리교회 염다솔
 
이제 피어싱을 빼고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외모에 치장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엄마가 그렇게도 말리시던 피어싱을 온몸 이곳저곳에 하기 시작했다. 처음 배꼽에 피어싱을 했을 때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자식 몸에 상처 나면 부모의 마음은 아픈 법이야. 그런 거 하지 말고 다른 애들처럼 그냥 다니면 안 되는 거야?” 그러나 한귀로 흘려듣고, 코에, 입술에 피어싱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당황도 했지만 엄마에게 더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부모님 속을 썩혀드린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욕하며 세상 풍속에 이끌려 다니던 모습을 말씀을 통해 발견하고는 하나님 앞에 뜨겁게 눈물을 흘리며 회개 했다. 목사님 말씀이 나를 바꿔 놓았고, 부모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해 주었다.
수양관에 다녀온 뒤에 그 전에는 전혀 하지 않던 안방 청소를 했다. 그때 아빠가 돌아오셨는데 ‘허허허’ 웃으시는 것이었다. 가족의 사랑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방학 때면 공부도 안하고 늦게까지 놀다가 오후 3-4시가 돼야 일어나던 내가, 아침에 7시면 일어나서 부모님 속 썩인 만큼 효도하기위해 공부하러 독서실에 간다. 이제 아빠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해도 화내시기보다 웃으신다. 성회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고 돌아온 사람이 바로 나였다.
윤석전 목사님! 타락에 빠진 많은 청소년들이 목사님을 통해 꼭 구원받기를 바래요. 목사님께서 성회 하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고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현교회 조은혜
 
일진 ‘짱’을 접고
 
난 모태신앙이다. 어려서부터 쏠티와 성극을 하면서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다가 13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늦둥이를 낳으셨다.
한참 사춘기였던 나는 참 많은 방황을 했고, 그때부터 누군갈 원망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애를 떼라는 모진 말과 수없이 심한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아이를 낳으셨다. 난 늙은 나이에 늦둥이를 낳으신 어머니와 그 아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죽이려고 알리바이를 짜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난 내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한 것이 소위 일진이라는 집단을 만들게 되었다. 그때부터 선배, 남녀 친구들, 심지어는 다른 학교 남자 아이들과도 함께 술을 먹고 담배도 피우며 온갖 타락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싸워서 경찰서도 자주 가고,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고.... 그런데 나는 이런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나를 욕했다는 아이를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때리고 밟고 무릎을 꿇고 빌게 했다. 한번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불러다가 낮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때렸다. 나의 파워는 점점 세졌다. 그래서 돈을 빌리면 갚지 않고 아예 돈을 빼앗기도 했다. 이런 나의 모습에 회의를 느껴 다시 교회라는 곳을 다니기는 했지만 여전히 술 마시고 싸우고 친구들을 왕따시키는 생활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40차 중고등부 성회에 참석하면서 나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목사님께서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 설교 하실 때 정말 충격을 받았다. 가인이 마귀에 속한 자라서 아벨을 죽였다는 말씀을 하실 때 그동안 동생들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고, 수없이 나쁜 짓을 한 것은 모두가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왕따시켰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회개하고, 함께 수양관에 오신 어머니를 붙들고 울면서 회개하고, 동생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 것도 다 회개했다. 생각나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하는데 어느 순간 나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나는 흰돌산수양관에 다녀온 후 많이 달라졌다. 술, 담배를 완전히 끊고, 동생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나를 이토록 새롭게 변화시켜 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를 드린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친구들은 ‘일진’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도둑질을 하고, 술과 담배에 싸움질이 기본이었다. 성적으로 타락하여 임신하는 것이 허다했고, 틈만 나면 가출을 일삼았다. 목사님 딸이었던 나는 맘이 불편했지만 어느새 나는 그들과 함께 했고,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큰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일진’이라는 것이 영웅처럼 보였고, 세상 것이 너무 좋아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형식적으로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렸고 반주를 했다. 이런 나를 지켜보시던 아버지께선 흰돌산수양관에 다녀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아버지는 매 성회마다 참석할 것을 부탁했고, 집안의 골칫거리로 낙인찍힌 나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교회 반주 덕에 콩쿠르에서 2등상을 받았고 특목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주님 은혜였는데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다.
‘예수님 싫어요. 제발 교회라는 울타리에 날 구속하지 마세요. 나는 나대로 살래요.’
예수님은 묵묵히 지켜보시며 3년 전면 장학금이라는 축복을 안겨 주셨다. 그러던 중 흰돌산수양관에 갈 날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죄도 지을 만큼 졌고, 부모님 눈물도 뺄 만큼 빼었고, 예수님 가슴에 못도 박을 만큼 박았기에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 저를 좀 변화시켜 주세요.’ 첫 시간부터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엄청났다. ‘주님 나를 용서해주세요. 주님 정말 죄송해요’ 예배시간마다 울며 뜨겁게 회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주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크게 들어 쓰리라. 너를 축복하리라’
너무 죄송하고 감사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하나님께선 내게 많은 은사를 주셨다. 집에 돌아와 공부를 하는데 예전엔 그토록 모르겠던 것들이 깨달아지고 알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이제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음 전하는 자로 쓰임받기 위해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한편 동생 준영이도 지난 동계성회 때 10년째 고통받던 왼쪽 눈의 약시가 교정시력 0.7로 치유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동생은 방언은사와 지혜의 은사도 함께 받아 중하위권이던 학교성적이 반 1등, 전교 5등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정말 흰돌산수양관성회는 우리 남매에게 절대로 잊지 못할 새로운 삶의 장을 열어주었다.

반석교회 이영혜
 

위 글은 교회신문 <7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