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청년대학동계성회 은혜간증

등록날짜 [ 2007-02-06 13:54:06 ]

모든 걸 잃은 이들에게 꿈 주시길
 
5년 전 수원흰돌산수양관에 처음 갔다. 가출했다가 들어와서 목사님과 사모님께 끌려가다시피 간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나 자신을 용서하게 됐다.
내가 13살 때, 아버지는 사업이 망하면서 많은 빚을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빚쟁이들과 경찰들이 찾아왔고, 엄마는 다시 암에 걸렸으며, 할머니는 치매, 셋째동생은 장애판정을 받았다. 난 생활비며 병원비을 벌기 위해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빚쟁이들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게 되면서 대인기피증과 남자 혐오증이 심각했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죽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자살 시도만 여러 번 했다. 그렇게 4년을 살았으니 벗어날 방법도 몰랐다. 그런데 윤석전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실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수님께서 나 같은 사람 옆에도 과연 계실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쓰레기인데, 그 아비에 그 딸이라고 말하는 나인데.... 마지막 날,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내가 울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눈치만 보느라 힘들어도 아파도 울지 못했었는데 그날은 실컷 울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약속을 했다. 칼과 수면제와 4년간의 모든 것들을 다 버리겠다고....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4년제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뒀으며 엄마는 암이 다시 재발하는 등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난 아주 열심히 살 것이다. 나한테는 돌봐야할 6명의 동생들과 하나님께서 든든한 빽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세상엔 나처럼 모든 걸 포기한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윤 목사님께서 그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셨으면 한다. 나처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한다.
김수현

 
초라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난 유명한 또라이였다. 나의 최대 죄목은 도둑질, 그것도 헌금. 처음에는 엄청 떨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돼 버렸다. 교회에서 수련회에 간다고 하기에 왔는데 잠자다가 깨어보니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예수님을 헛것으로 생각하지마라. 니들 성탄절 때 뭐했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러 오셨을 때 너희는 그저 이성친구가 좋아서 히히덕거리고 놀았느냐. 너희는 믿음의 의리도 없냐?”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울고 또 울었다. 이틀째 저녁, 술과 담배와 음욕과 부모에 대한 효와 목사님에 대한 예의에 대해 말씀하셨다. 목사님이 생각만 하는 것도 죄라는 말씀에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지은 죄들이 0.1초마다 스쳐 지나갔다. 헤아릴 수 없었다. 은사집회 때도 난 울었다. 이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속 썩여 드려서. 목사님도 속썩여 드리고,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도 모두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내 모습을 발견했다. 계속 울면서 기도했다. 나 좀 살려달라고, 용서해달라고... 말씀을 듣는 중에도 계속 눈물이 났다. 드디어 은사집회 시간. 난 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죄인 중 대역 죄인인데, 그런데 갑자기 뭔가 입에서 뭔가 터져 나왔다. 입이 제 맘대로 움직인다. 갑자기 뜨거운 게 가슴에 떨어졌다. 너무나도 뜨거웠다. 내 입에서는 감사하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수십 번 그 말이 튀어나왔다. 할렐루야! 나 영원히 주를 찬양하길 원합니다. 변치 않게 하옵소서!
권혁주 (대구평강교회)

 
심장이 터질듯한 체험의 시간들
 
세 살 때 부모님이 동시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중고생이었던 두 오빠들은 나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았고, 난 사랑없는 고모들의 손길과 입양된 양부모의 손아래서 자라게 되었다. 그후 오빠들의 보살핌 아래서 성인이 되기까지 무사히 자랐지만 내 삶의 여건은 항상 불만투성이었고 신앙생활 역시 빈껍데기뿐.
그러던 중 목사님인 큰오빠의 소개로 흰돌산수양관을 찾았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다시는 연약한 믿음에 의심이 생기지 않도록 증명해달라고 무릎을 꿇을 때마다 반항했다. 그런데 은사집회 시간 목사님의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설교가 갑자기 내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에도 내 기도는 하나였다. “하나님, 성령이란 분이 있다면 내게도 의심할 여지도 없는 믿음을 한번이라도 보여주세요.”
갑자기 심장이 터질듯 뛰기 시작했다. 강한 추위에 떠는 듯한 입의 떨림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방언이 터졌다. 방언으로 처음 기도를 하는 순간, 머릿속에 태어나 단 한 번도 기억에 간절함이 없던 부모님에 대해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들었고, 내가 이렇게 자라기까지 밤낮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큰오빠와 새언니의 사랑에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들었다. 심장이 이렇게도 기쁘게, 그리고 두렵게 떨려오는 느낌은 내 안에 정말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주었다. 이젠 무릎을 꿇을 때마다 방언과 함께 눈물이 나온다.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미선 (상주함께하는 교회)

 
생각의 방황을 바로 잡고
 
“세월 속에서 세월에 끌려 다니지 말고, 세월 밖에서 세월을 사용하라, 육체는 생각의 노예이며, 생각도 방황을 한다. 너희들은 방종자이다!” 내 몸에 뼈와 살 사이를 가르는 듯한 예리한 말씀이 번뜩 지나쳐가는 순간이었다. ‘내가 방종자라니 말도 안 돼’ 지금까지 교회-집-학교 외에는 관심도 없이 주의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실상은 죽은 생각의 방종자였다니!
작년 2월부터 담임 목사님이 개척하시면서 신앙의 혼란을 겪었고 어떻게 하면 교회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질까 하는 생각의 방황이 시작됐다. 나의 상태를 안타까워하신 목사님이 흰돌산수양관성회에 꼭 가야 한다기에 야속한 마음을 안고 성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준비해 두셨다. 셋째날, “니가 죄인이고 니가 방종자다” 하시는 말씀이 내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나는 사망으로 치닫고 있으면서도 나 잘났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나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한 순간 다시 예수님의 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북받쳤다.
“부모님과 목사님께 팍~ 무릎 꿇고 그 사랑을 배신한 것 회개하고 고백하라” 하시는 말씀에 하염없이 울어버렸다. 어쩌면 윤 목사님은 내 속내를 저리도 잘 아시나.
성회 참석 이후 내 마음은 날아갈 것 같다. 나는 믿는다. 나에게 보여주신 비전대로 나를 만드실 하나님을. 성령에 순종하여 나를 고품격으로,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실 때 무한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박숙정 (대구새소망 침례교회)

 

위 글은 교회신문 <10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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