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청년회는 청년·대학부연합하계성회를 통해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간증공모전을 열었다.
간증공모전에 입상한 주인공들은 모두가 이번 성회가 ‘생애 최고의 감동적인 성회’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
“마음과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저에게는 큰 핸디캡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청력이 떨어지는 것. 핸디캡으로 인해 권고사직 당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 청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시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더욱더 하나님을 외면하면서 한 달여 정도를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 안에만 있었습니다. 저를 외면하는 세상이 저에겐 너무나 버거웠기에 제 안에 저를 꽁꽁 묶어 두고 있었습니다.
교회 친구 진성이와 나영 차장이 집 앞까지 찾아왔지만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제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를 발견하고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부원의 결혼식으로 교회에 갔다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대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시간. 역시나 목사님의 설교는 제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지… 도무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기도 시간에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생각하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모르던 제가 그냥 눈을 감고 제 자신을 생각하며 주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상처투성이인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어… 주님께서 나에게 이 정도만 해주셔도 난 됐어…’
그렇게 전 하계성회 전까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예배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청년성회 일주일 전… 이제야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저에게는 성회에 가자는 부원들의 말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벌써 접수를 했다는 말에 할 수 없이 가게 되었습니다.
성회 가기 전날인 주일 모임 시간에 부원들이 서로에게 롤링페이퍼를 썼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에 조용히 그 페이퍼를 꺼내 들어 찬찬히 읽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몰랐지만 너무나 가슴이 따뜻해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난 여태껏 그걸 왜 몰랐지?’ 내가 우는 것을 보신 엄마는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를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날 그 느낌과 엄마의 말씀을 내 마음에 안고 수양관으로 출발했습니다.
첫날, 교회를 다닌 후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내가 내 곁에 있던 하나님을 오히려 등지고 있었구나. 내가 하나님을 외면하며 거절하고 있었구나’를 깨닫고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정말 성회 내내 매달리기만 했습니다. 이제 깨달아서 죄송하다고, 제 손을 놓지 말라 달라고, 주님 앞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삼 일째 되는 날, 진성이에게 들었습니다. 오늘 밤은 회개의 밤이 될 것이라고, 회개의 영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그날 밤 예배 시간에 회개의 영을 달라고 애절하게 그리고 한참을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은사를 달라는 첫 번째 기도를 마쳤는데 방언 은사를 받지 못했지만 주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회개의 영을 제게 달라고 또다시 통곡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큰 죄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아! 그 죄가 그렇게 큰 죄인 줄 몰랐습니다. 산부인과에서 4개월 정도 일한 것뿐이고 난 그냥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 전 그 죄를 주님께 고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제 손으로 주님께서 보낸 그 작은 영혼들, 주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그 작은 영혼들, 그때는 그게 이렇게 큰 죄인지 몰랐습니다. 이 어리석고 못난 죄인을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제발 이 못난 영혼을 용서하여 주세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발 주께서 이 죄를 씻어주셨으면 하는 애절함만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제가 방언은사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주님께서 날 용서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회 가기 전에 병원에서 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성회기간 내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제게 달라고. 전 그 대답을 들었습니다.
‘넌 마음으로 내 말을 들을 수 있지 않느냐. 그런데 무슨 걱정이 있는 것이냐. 걱정하지 말아라. 넌 어떠한 소리도 네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느니라.’
성회를 다녀온 후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안 좋다고 한 귀 상태가 성회 후로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삶은 살아 계셔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기쁨과 이 큰 은혜를 모든 사람과 나누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10년의 방황을 끝내고
내 뜻과는 상관없이 점수에 맞춰 가게 된 대학은 기독교인인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불교종립학교였다. 차츰 주일이란 단어는 내게 일요일로 변해갔다. 하루가 멀다고 술을 마셨으며 무분별한 이성교제와 틈나는 대로 담배를 물고 살았다. 세상 속에서 방황은 끝없이 이어지고 대학에서 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하나님을 등져버렸다. 몇백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고 승려들에게 합장했으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짓은 골라서 하는 시절을 보냈다.
첫날 오후 흰돌산수양관에 들어섰다. 짜증이 마구 밀려오기 시작했다. 숙소가 없어서 대성전에서 잠을 자야 했던 것도, 씻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것도. 그 무렵 한 형제가 말을 건네왔다. “형제님 담배 피우시죠?” 끊는다는 각오로 난 담배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담배 있으세요?” 그리하여 우리 둘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줄담배를 피워댔다.
저녁을 먹고 목사님의 첫 설교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준비찬양을 할 때부터 속이 좋지 않기 시작하더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눈물 없기로 유명하던 내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긴 설교말씀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 맘속에 마구 꽂히기 시작했다.
내 나이 서른. 순수했던 20년간의 신앙을 등져버리고 살아온 내 20대의 10년이 통성 기도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보이는 것에 대해 주님께 회개기도를 했고 어느새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되어갔다.
목사님의 설교말씀처럼 내 생각과 내 눈과 내 입술이 그동안 나를 얼마나 저주하며 살아왔는지 무섭기도 하고 두려워서 하나님께 엎드려 연이어 회개기도를 했다.
성회가 진행되는 동안, 세상 친구들보다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신앙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대화들이 즐겁고 마음을 터놓게 되었다.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들은 죄를 이겨냈던 방법들을 말해주고 함께 기도해 주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하지만 은혜를 받기 위해 잠시 꺼두었던 전화기를 켜는 순간 세상 친구들로부터, 함께 술 마시고 춤추며 놀던 여자들로부터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계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수양관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참았던 담배 생각도 간절해졌다. 밤에 눈을 감으면 클럽의 화려한 사이키 조명이 돌아가고 술병들이 허공에 떠다녔다. 직분자들의 말이 다 짜증 나고 식사를 위해 줄을 설 때나 공동 샤워장에서 씻는 것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새가족반의 성극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등장하는‘믿을까’ 형제 얘기는 꼭 나를 보는 듯했기 때문에 부끄러웠다. 웃음보다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날 위해 기도하는 청년회 지체들과 오늘도 밤잠 안 주무시고 금식과 철야기도를 하시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십자가에 못 박혀 날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보혈과 부활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10년의 믿음을 앞당기고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하나님이 보실 때 가치 있는 아들로 만들어 주세요. 세상의 도구가 아닌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해주세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다시금 회개를 하고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이제는 내 우선순위는 하나님이시다. 그동안은 교회를 가방 들고 다니기만 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 말로만 고백한 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믿는다. 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러 나온다.
성회를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났다. 요즘 직장의 동료나 세상의 친구들은 나를 두고 수군거린다.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여자 얘기도 안 하는 날 두고 “적응이 안 된다, 변했다, 미친 거 같다”라고들 한다. 그리고는 가치 없어진 형, 동생, 친구, 오빠라며 씁쓸해한다. 세상사람으로 가치 없어진 사람,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일까!
또 새가족반 시절 함께 했던 어느 자매가 다가와 주일 오후예배도 드리느냐며 놀라워한다. 이렇게 이번 성회는 내 신앙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하나님으로 시작된 새로운 세상
매년 가는 성회, 우리 교회에 다닌 지 몇 년 된 나는 처음에는 성회에 대해 별 사모함이 없었다. 왜냐하면 성회에 참석해 은혜는 많이 받았지만, 정작 나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선등록을 미루다가 부장님의 지속적인 권유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등록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저녁 합심기도 시간에 성회에 대한 사모함과, 내 삶이 크게 달라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3일 금식하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러나 3일을 금식하기에는 환경이 너무 힘들었고 휴가 또한 성회에 맞춰서 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일이기에 믿음으로 금식을 시작했다. 금식 첫날 직장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 금식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지쳐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하소연하듯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주시면서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이 아닌가. 3일 금식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치고 나니 여름휴가를 성회기간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성회 첫날, 나의 기대감은 다른 장애를 맞게 되었다. 다름 아닌 충성. 말씀에 크게 은혜는 받았지만 차량 안전관리 충성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몸이 피곤하여 짜증이 밀려왔다. 어떻게 준비한 성회인데, 포기할 수 없어 나는 또다시 기도했다. ‘내가 충성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누군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또한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은혜 받는다면 내가 은혜 받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리라!’ 기도하던 중 이런 생각이 들면서 짜증스런 마음이 감사로 바뀌었다.
몇 년 전 나는 무릎수술을 받았다. 오랜 시간 앉아있으면 무릎에 심한 통증이 왔고 은혜받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겼다. 또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잠시 짜증 났던 마음을 회개하고 아픈 무릎으로도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함으로 기도했더니 무릎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과거에 참석했던 성회와는 달리 편안하게 말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그 충격에 쓰러지셔서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나의 어려운 상황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 앞에서 늘 자신감이 없었고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상처와 외로움은 나를 언제나 짓눌렀다.
윤석전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지었던 죄를 모두 회개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속 깊이 뿌리박혀 있는 상처와 외로움을 치유해 주셨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셨다.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지켜주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큰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구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동료와 손발이 맞질 않아서 직장에서는 늘 인상을 썼고 자주 화를 냈다. 내 잘못을 찾기보다는 동료의 잘못된 모습을 먼저 지적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회개시키셨다. 하나님은 죄인 된 나를 먼저 사랑으로 받아주시지 않았던가! 나는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심정으로 동료를 사랑으로 품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성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하나님! 이제는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제 달라진 모습으로 살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셨는지 다음날 직장에서 일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동료들과 손발이 척척 맞기 시작했고 평소보다 일도 일찍 끝마칠 수 있었다. 더는 외롭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릎 꿇고 단 10분도 제대로 기도하지 못했었는데 금요철야 때는 2시간이 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을 자녀 삼아주시고 내 모든 삶을 변화시키신 주님! 앞으로 차장으로서 맡은 일에 더욱 충성을 다하기를 바라며, 더욱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영혼 살리는 일에 마음껏 쓰임 받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