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진실한 고백, 감사

등록날짜 [ 2004-01-12 23:11:27 ]

빌립보서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은혜 베푸신 하나님
하나님은 천지의 모든 만물을 우리 인간에게 주시려고 만드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 창조한 것으로 먹고 마시고 입으며, 그분이 창조한 것을 사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 땅에서 호흡하며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를 수도 없고 알면서 배은망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인 공기를 지금 당장 10분 동안만 중단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를 주시고 모든 만물을 주시고 생명을 주셔서 살게 하신 그분 앞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감사를 해도 모자랍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이 크신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이 계시면 나와 봐라 하며 종주먹을 들이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시 말해서 감사를 모르는 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은혜가 누구에게서 왔는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은혜를 알 때 비로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또한 아담과 하와도 만드셔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지배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사나운 맹수라도 그들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을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만약 모르고 먹었다가 죽을까봐 그들을 사랑함으로 미리 일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라’는 말은 안 하면 망하기 때문에 해서 살라는 것이요, ‘하지 말라’는 것은 해서는 안 되니까 하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를 보호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를 망각한 자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런 큰 사랑을 외면하고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배신하여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 결국은 병들고 저주받고 처절한 고통 속에 살다가 마침내 우리 영혼은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배은망덕의 결과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고 선악을 분별하게 될 것이라고 속였습니다. 설령 선악과를 먹어서 하나님과 같은 위치가 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은혜 받은 자라면 먹지 말라고 하신 그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절대로 피조물은 하나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보호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니까 죽지 말라고 하신 말씀인데 마귀의 말을 곧이 듣고 선악과를 먹고 말았으니 이때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찢어질 듯 아프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살리는 말씀이며, 보호받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과 은혜를 망각하게 만들고 은혜 베푸신 하나님과 은혜 받으며 살아야 할 인간을 갈라놓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야 할 자를 영원히 지옥 형벌 받을 자로 만들어 놓았으니, 마귀는 당연히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 인간의 원수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사를 망각할 때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직접 말씀으로 일러주셨건만 그런 사랑의 말씀을 무시하고 결국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인간을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인간을 향한 사랑밖에는 없으신 분입니다. 백 번, 천 번을 범죄해도 회개하고 돌아만 오라는 것입니다.



영혼의 해방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마귀는 우리 인간에게 죄를 짓도록 만들어서 그 죄 값으로 병들고 저주받고 지옥가서 영원히 잔인한 고통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는 순간, 마귀의 일은 무산되었고 우리는 죽음에서 영원히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육신이 속박받는 괴로움도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입니다. 그런데 죄에 갇혀 있는 내 영혼은 더 큰 고통과 아픔 속에서 괴로워 하고 있는데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감이 있고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영적인 답답함을 느낍니다. 죄로 인한 영적인 답답함에서 해방된 것이 얼마나 자유한지 모릅니다. 이 지구상에 죄로 인한 내 영혼의 죽음에서 예수로 해방된 자는 기독교인들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 매여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영적으로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영원한 자유를 얻었다고 하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 행복 때문에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이것 하나로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주시고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해주셨으니, 예수께서 우리의 멸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은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한다 해도 그분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염치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받고도 끊임없이 죄를 짓고 불의하게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욕심과 불만과 불평으로 하나님을 속상하게 하는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그분 앞에 우리는 평생 살면 살수록 더 염치없는 인간이 될 뿐입니다. 이렇게 염치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을 주를 위해 살지라도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그분 앞에는 염치가 없을 뿐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을 만큼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까? 나무 한 그루도 죽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죽었다는 말은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지옥갈 수밖에 없고 고난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 그 아들이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만들어 놓으셨으니 우리는 그 아들로 인해 가치가 바뀐 사람들입니다. 나무가 자랐다면 열매를 내야 하듯이, 예수로 살았다면 그 삶의 작품인 열매를 내서 가치를 표현해야 하는데 바로 최고의 가치는 감사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얽매여서 ‘내가 이렇게 하면 지옥가지’ 하고 억지로 신앙생활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도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은혜 받은 것에 감사해서 하는 것이므로 복음 안에서 너무나 자유한 것입니다.


옛날 구약시대에는 율법의 말씀을 놓고 ‘이렇게 하면 저주받지’ 하며 저주받는 것이 두려워서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주받을까봐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감사해서 자유함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구약시대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누가 자유합니까? 바로 은혜 받은 감사자가 자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유
세상은 지식 있는 자가 지식 없는 자를 지배하고, 재물 있는 자가 재물 없는 자를 지배하고, 능력 있는 자가 그 능력으로 능력 없는 자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전능하신 힘으로 죄와 마귀 역사를 멸하시고 우리를 영생하게 하셨으니 세상 사람이 가진 권력과 하나님이 가지신 권세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때 당장 없앨 수도 있지만 그 권세를 거기에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범죄하게 해서 멸망하게 만드는 죄와 마귀역사를 해결하는 일에 쓰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절대적 부자며, 천국을 가지신 부자입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부유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어 멸망하는 인간에게 영원히 살아야 할 생명을 주시고, 우리가 살아야 할 천국도 주시고, 언제라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해주시겠다고 하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자기의 부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주시며,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는 분입니다. 그 큰 은혜를 주셨는데 그분 앞에 감사할 줄 아십니까? 또한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는 절대적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의 병을 고치시고, 우리를 괴롭히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무제한의 능력으로 인간을 보호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로 지배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육체를 위해서는 천지만물을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생애의 전부를 주셨는데 우리는 주님 앞에 예배시간도 못 드립니까? 삼일예배도 못 드립니까? 금요철야도 못 드립니까? 주일 낮예배, 저녁예배도 못 드립니까? 그분 앞에 그분의 것인 십일조도 못 드립니까? 우리는 주님을 상대할만한 철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생명과 같은 것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주님은 지금도 외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 허물을 담당하기 위하여 육체가 잔인하게 찢기었으니 너희는 허물에서 자유하라.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징계를 내가 대신 받았으니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잔인한 징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평화를 누려라. 너희 육체의 질병을 담당하기 위해서 내 육체가 잔인하고 처절하게 모진 매를 맞았으니 너희는 믿고 강건함을 얻으라. 내 육체가 고통과 아픔 속에서 너희의 죄를 해결했으니 너희는 죄에서 자유하라.” 강단의 목사들을 통해서 지금도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한 사람도 이 은혜에서 떠나지 않도록 믿는 자에게 믿지 않는 자를 향해 전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들을 지불하시고, 아들은 자기 육체의 잔인한 고통과 목숨을 지불하셔서 우리를 질병과 저주와 지옥에서 건지셨으니 평생을 바쳐 감사한들 어찌 그 은혜에 다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봄에 자라나는 새싹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겨우내 언 땅에 묻혀 있던 씨앗에서 새싹이 솟아오르면서 그 무겁고 두꺼운 땅을 뚫고 나오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어떤 핍박이나 억압에서도 이기고 승리하여 그분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도무지 감사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 앞에 신앙 인격을 가진 철든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무엇으로 감당하겠습니까? 성도여, 이 크신 은혜를 자신의 몫으로 소유합시다. 그리고 받은 은혜을 마음껏 고백하면서 우리의 생애 동안 감사에 젖어 삽시다. 후회 없이 감사합시다. 후회 없이 찬양합시다. 후회 없이 그분께 영광을 돌리면서 은혜 받은 자의 고백이 샘솟듯 터져 나와 감출 수 없는 감사가 넘쳐 나게 합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51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