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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누가복음 12 : 13 ~ 21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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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육간의 복
하나님께서는 인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거저 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공기와 물을 마시고 그가 만드신 씨앗으로 곡식을 거둬 밥을 지어 먹습니다. 그가 만들어 주신 육체로 그가 만들어 놓으신 땅을 밟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의 은혜로만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은혜 받은 자의 당연한 인격인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29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나도 하나님의 것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 자식들도 하나님의 것이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움직이는 모든 생물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모든 나무도 우리 인간에게 주어 식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고 누리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육체가 있는 한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분초라도 없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대 최소의 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 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 살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게도 무제한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육신은 아무리 먹고 아무리 가져도 죽음으로 마감을 짓고 말지만 우리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히 사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삶의 목적
이 지구상에 20년을 더 살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 값이 과연 얼마나 나갈까요? 그런 약은 없겠지만 만약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값으로 계산이 안될 만큼 비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온 날은 상상할 수 없는 값으로 살아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인 지옥의 형벌을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너무나도 비참하고 처절한 지옥의 고통이 도무지 표현되지 않을 만큼 지옥은 너무나 참혹한 곳입니다. 이곳은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권력과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루어 주셔야만,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수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 이것이 우리 영혼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늘나라 역시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5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니고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기의 독생자를 죽이시고 우리에게 천국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에 전력을 다하여 영적으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 성령으로 보호되고 양육되고 인도 받아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 복을 가진 사람이 세상의 무엇이 부러울 것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부럽습니까?
그런데 본문의 젊은 청년은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모르고 단지 형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며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가 넉넉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소출이 풍성하여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자 라고 할 때 오늘 밤 그의 영혼을 불러 간다면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인가를 확실히 일러 주셨습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도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하여’라고 말입니다.
삶의 애착
주일이 되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공휴일이라 하여 이리저리 놀러 다니거나 자신의 취미생활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 나라로 인도됩니다. 세월은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운반하는 수레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영생을 가졌기에 그 나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생의 애착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육체의 것이냐, 아니면 영적인 것이냐가 다를 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살고 싶어서, 영원히 살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월을 주시고 어느 누구도 그 세월을 초월할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면 육신은 결국 죽도록 되어 있는데 이 육체에 무슨 꿈과 소망이 있겠습니까? 이 땅에 목숨을 바쳐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젊은 청년에게 내가 네게 주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인데 왜 그것은 구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지 못할 것을 구하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재산보다 더 큰 것은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식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썩어질 육신, 썩어질 물질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육신 보호하느라 새벽기도도 못나오고 주일날 헌금할 때 거지 동냥하듯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삶의 의미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도 결국은 흙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땀 흘리며 수고하면서 먹고 살려고 가는 곳이 결국은 썩어서 없어질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삶의 법칙입니다. 그런데도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서는 그렇게 몸부림을 치다가 쌓아 놓은 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가는 사람들이 좀 많습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물질과 육신을 어디에다 써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을 값지게 써야 합니다. 목숨을 바쳐 번 돈이거든 당신의 목숨보다 큰 일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존재이기에 우리는 주의 일에 값지게 쓰임받고 우리의 물질을 주의 일에 값지게 쓸 때에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영혼의 때를 위한 기회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생사의 권한을 가진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대단한 존재인 것 같지만, 내가 가진 재물이 굉장한 것 같지만 그것은 바람 같아서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며, 봄눈 같아서 언제 녹아 사라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내 인생을 맡기고 목숨을 걸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입니까?
전도서 1장 2-4절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또한 14절에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붙들고 살려고 해도 시대가 가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귀영화의 극치에 있었던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이처럼 육체와 재물을 의지하는 믿음은 곧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육체는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단 한번의 절호의 기회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극과 극의 만남은 대문 하나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자는 좋은 옷에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사는데 나사로는 거지인데다가 병까지 들어 부자의 대문에 누워서 부자가 먹다 남긴 음식으로 배불리려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나사로는 보잘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후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 그들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채 부귀영화로 살아보려고 했던 부자는 음부의 고통속에서 울부짖고 있으며, 거지 나사로는 비록 세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부유는 없었어도 그의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부유, 곧 영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육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이렇게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에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바로 이때가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며,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에게 주어진 세월은 내 영혼의 때를 복되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세월을 낭비하지 말자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았습니다. 그곳은 우상의 도시였으므로 영적으로는 아주 저주받은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그곳에서 생활기반을 닦아서 먹고 살아가는 일에는 안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버리고 즉시 떠나라는 것입니다(창12:1-3). 우리도 우리가 가진 세상 것 움켜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빨리 나를 먼저 예수에게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자기 손으로 벌고 창고에 저장하는 복을 찾으려다가 아까운 세월을 모두 낭비하고 맙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의 문제는 언제나 뒤로 미룹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소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사는 동안 목숨이 다하기 전에 목숨보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합시다. 죽도록 전도하고 죽도록 사랑합시다. 만약 죽도록 충성한 나의 죽음보다 더 큰 보상이 없다면 어떻게 죽도록 충성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에 확실한 면류관으로 보상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자연수명에 죽지 말고, 병들어 죽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죽도록 충성하다가 죽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죽음에 대한 값을 지불해 주실 것입니다.
썩어질 육체의 노예가 되지 말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생명의 면류관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어차피 죽어야 할 목숨을 주를 위해 죽었더니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이렇게 축복하시는구나 하는 고백이 하늘나라에 갔을 때 절로 입에서 흘러나올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여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0-21).
우리는 자신의 영혼의 때를 위하여 수고와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자신이 수고한 것은 자신의 것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마6:19-20).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하게 삽시다. 나사로와 부자는 이 땅에 살았던 이들로 영혼의 때에 대한 결과의 증인들입니다. 일백 자손을 얻고 천만금을 쌓아놓고 호의호식한들 자기 영혼의 때를 준비하지 아니한 자는 부자와 같은 비참한 날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는 이 땅에 왔다가 썩어져가는 것이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는 부활의 몸으로 바뀔 때에 이 땅에서 당신이 당신의 영혼의 때를 위하여 하늘에 재물과 수고와 충성과 전도와 기도로 쌓아놓은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당신의 것으로 최고의 변리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우리의 영혼의 때에 최고의 신령한 부유를 만들기 위해 열심을 품고 주를 섬깁시다. 썩어질 육체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권력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당신의 육체를 신령한 영적인 말씀과 은혜의 노예가 되어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지게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죽도록 충성하여 영혼의 때에 자기의 부유를 만들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 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신령한 기업의 주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