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04-07-24 11:59:15 ]
본문말씀 마태복음 27:27~44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우리 인간은 영적 존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할 인간을 대신하여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과연 영생이라는 커다란 축복이 주어졌을까요?
이 세상에 만약 20년 더 살게 하는 약이 있다면 그 약값은 아마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20년이 아니라 영원히 산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무 크기에 아마도 실감이 나지 않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확실히 믿기에 예수에게 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죄의 정도에 따라 사형도 당하고 무기징역도 받고, 어떤 사람은 벌금정도에 끝나는 수많은 죄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때 “죄의 삯은 사망(롬6:23)”, 여기서의 사망은 곧 영원한 지옥을 말하며 죄의 경중 없이 사망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육체는 아무리 버티고 살아도 70년- 80년을 살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짐승과 달라 죽으면 끝이 아니라 영혼이 있어서 그 영혼은 세상에 육체가 가지고 살아온 날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육신만이 내가 아니라 바로 내 속에 있는 육신을 움직이는 인격적인 영혼도 바로 나인 것입니다. 육신은 70년- 80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속에 있는 우리 영혼은 영적 존재이기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이 영혼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은 말씀의 법대로 가는 곳
우주에도 질서가 있어서 그 질서의 법대로 만물이 움직여 갑니다. 세상에도 법이 있어서 법대로 다스릴 때 그 법이 우리를 보호합니다. 천국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법대로 가는 곳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천만 원의 빚을 진 사람은 천만 원을 갚아주어야 빚쟁이에게서 자유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태양도 주시고, 공기도 주시고, 물과 흙도 주시고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만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최초의 인간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거역하면 그 죄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죄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죄, 하나님의 것으로 살면서 감사하지 못한 죄, 불순종한 죄,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로 영원히 지옥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그 죄로 죽어야 하는 죽음의 값을 갚아주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는 순간, 우리의 죄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죽음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께서 우리의 죄 값 때문에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순간, 우리는 죄 값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이토록 사랑하셔서 자기의 육체을 죽음으로 내어 주면서 우리를 죄에서 저주에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셨는데 그 큰 사랑을 받았다면, 안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를 위해 나의 시간을 아끼고 나의 소유를 아끼며 나의 목숨을 아낄 수가 있겠습니까? 신앙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분 앞에 아까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숨겨진 비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가장 낮은 죽을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만약 왕궁에 태어났다면 누가 그를 감히 매로 치며 침을 뱉으며 채찍으로 때리겠습니까? 그분은 일부러 종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온갖 모욕과 멸시를 받으시며 인간의 육체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죄목으로 잔인하리만치 모욕과 저주를 퍼붓고, 옷을 벗겨 채찍으로 때리며, 가시관을 씌우고 개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분이 능력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당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당해야 우리 인간의 질병과 저주와 고통의 죄악을 짊어지고 죽으실 수가 있기 때문에 그 죽음으로 가는 길에 자기 절대 권세를 완전히 감추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그저 시큰둥하게 받아들입니다. 그에게 예수가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그 사실을 믿고 구원받으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죄 때문에 지옥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몰라서 지옥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빨리 예수 믿는 그 일입니다. 제일 먼저 해 놓아야 할 일이 바로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에 죽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주실 분이 달라고 시켰으니 이것은 애원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찔리시고 상하시며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죽으시기까지 우리의 질병과 죄악과 저주와 영원한 지옥형벌인 죽음까지도 다 갚아 주셨으니 그것을 자기 것으로 갖는 순간 모든 죄악으로부터 자유 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돈의 가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성경 속의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다 주셨는데도 내가 그 은혜를 내 것으로 소유하여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일
예수께서는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베스다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으며, 죽어서 나흘씩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시체도 일어나라고 명령하실 때 벌떡 일어나 그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또한 나인성에서는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상여에 실려 나갈 때 상여를 멈추고 그를 살려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능력이 많으신 분이 왜 그토록 잔인하게 매를 맞고 저주를 받고 채찍에 맞으며 끝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을까요?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야 우리를 위해 매를 맞고 죽으셔서 우리를 질병과 죄악에서 구원하실 수 있기에 묵묵히 참으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당시에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생각에는 나사렛에서 태어난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그 신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믿음으로 볼 때에는 예수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너무나도 큰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죽이는 것이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일이요,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좇던 제자들도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언대로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삼 년간이나 예수를 쫓아 다녔으면서도 그렇게 쉽게 그를 부인했을까요?
예수를 믿는 것은 참으로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의 권세를 가진 사람을 안다는 것도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인데 그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보내어 나의 죽을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시고 지옥에서 건져내셨으니 그분을 믿는다는 이 믿음이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몰라서 잠시 부인하고 떠나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도무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 고통을 감당하려고 예수를 부인하고 떠납니까? 우리는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의 사랑 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인격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져야하는 중대사를 앞에 놓고 『아버지---, 이 쓴잔이 나에게서 비켜 넘어갈 수만 있으면 비켜 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몸부림을 치며 기도했는지 모세혈관을 통해 세포에서 피가 밀려 터져나와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몸부림치며 『아버지, 안 죽으면 안 됩니까?』 라고 할 때 어떤 부모가 그 자식을 죽이고 싶겠습니까? 예수께서 몸부림을 치며 아버지를 향해 부르짖을 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죽지 않으면 우리가 지옥에 가야 하기에 그 쓰라린 아픔을 가슴에 묻으시며 아들의 죽음을 결행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채찍에 맞아 살이 찢기고 피가 터지며 그 아픔에 신음할 때, 또한 가시관에 머리가 찔려 처철한 아픔 속에 얼굴로 흘러내리는 그 피를 바라보면서 아들을 죽이는 일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독생자 아들을 죽이면서까지도 『내 아들이 너희의 죄를 담당하고 죽었으니 너희는 그 예수를 믿고 구원 받으라』는 이 애절한 절규의 전도소리에 모두가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그래서 평생을 주를 위해 살아도 모자랄 만큼 여러분의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그저 막연하게 교회에 나와서 축복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축복하시고 영원한 지옥에서 건져 주셨으니 날마다 감사하며 전도하며 충성하며 사는 삶이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에 부족하고 초라함마저 느껴지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며 주를 위해 사는 삶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셨다면 나도 주님의 일을 위해 죽고자 작정하는 의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신앙인격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철든 자가 되어 평생 그분 앞에 의리를 지키며 그분만을 위해 죽고 그분만을 위해 사는 철든 신앙인격을 가진 사람이 됩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