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04-08-27 10:51:19 ]
본문말씀 - 요한복음 15:1~14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기는커녕 하나님이 계신 것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세상의 지식이 남들보다 조금 부족할지라도 우리의 육체의 때를 어떻게 살고 있으며 내 영혼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 이하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에덴이라는 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고 하셨습니다. 선악과는 알고 먹어도 죽고, 모르고 먹어도 죽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는 분이시기에 인간을 사랑하사 먹으면 죽으리라고 알려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혹시라도 먹고 죽게 될까봐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된다고 확실하게 일러주셨으니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생존의 본능에 의해 먹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죽는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생명의 자원에서 끊어져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상실한다는 말입니다.
죄인인 인류를 찾아오신 예수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야 할 우리 인간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의로우신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 죄 값으로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의 값에 합당하게 심판을 받고 죄의 질에 따라 형을 치르듯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지옥이라는 감옥에 가서 영원한 형벌 속에 살아야 합니다. 바로 죄인의 주소는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고 손에 잡히지 아니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찾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과 인간은 전혀 만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찾아 오셨으니 먼저는 율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하여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의 성품과 인류 구원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5장 12-14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니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연평도의 조기가 봄이 되면 수만개 정도 알을 낳습니다. 그런데 그런 알을 품은 조기가 만약 지나가던 배에 걸려 죽었다면 그 속에 있는 알도 살아있는 것 같으나 모두 죽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최초의 인간 아담이 죄를 범하는 순간 그 속에 있던 인류도 똑같이 사망에 이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보내서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의 값인 ‘정녕 죽으리라’는 사망을 해결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율법이 죄를 발견케 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23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불순종하여 먹은 죄를 대신하여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 죽음이 해결되자마자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누구나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으며 그 증거로 성령이 구원받은 자 안에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을 자기 안에 모신 자는 예수 안에서 사는 신령한 주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둔 신령한 주소
이사야서 59장 1-3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죄가 바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우리도 죄의 담으로 가로막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분을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바로 죄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의 담을 헐어야 우리가 그분에게 갈 수 있고 그분도 우리에게 오실 수 있습니다.
티끌만한 죄라도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가 만날 수 없으므로 언제나 하나님과 만나는 일에 먼저 어떤 죄를 지었든지간에 회개하고 거룩함으로 그분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 예수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죄사함 받은 우리는 예수 안에 영원히 사는 신령한 주소를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
한낱 하찮은 동물 중에 하나인 가시고기도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될 때 자기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주어 다 뜯어 먹힌 후 뼈만 앙상히 남아 죽어가는 그 모성애를 바라보면 참으로 그 사랑이 잔인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우리 인간이 자식을 낳으면 그때부터 자식을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는 부분이 가시고기와 참으로 비슷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자기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시면서까지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라고 말씀하셨듯이 예수의 살과 피를 마신 자만이 예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주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임의로 정한 주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정해주신 최고의 축복의 주소인 것입니다.
육신이 사는 세상의 주소는 인간이 자기 임의로 정한 주소입니다. 자기가 임의로 정한 주소는 이 세상 살 동안 잠시뿐이나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주소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이 영원한 천국을 주소하여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주소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아무리 많은 재물과 명예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모든 것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 동전 하나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 즉 주를 위해서 한 모든 일은 할수록 내 것이며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누리고 살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주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의 수고를 하늘나라에 열심히 쌓아놓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은 그의 법을 지키는 자의 것
한 나라에 법이 있어서 그 법으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등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도 안전하고 이웃도 안전하며 질서를 지킴으로 우리를 영육간에 평화롭게 만드는 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주님의 법대로 살아서 날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다면 그분께 기도할 때 질병도 치료받고 우리의 불가능도 해결하며 영육간에 그의 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 축복은 그의 법을 지키는 자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즉시 그 죄를 회개하고 빨리 하나님께 붙어서 구해야 그분으로부터 풍성한 생명과 풍성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를 더 많이 맺도록 하나님 자신이 농부가 되어 보존하시고 깨끗하게 관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곧 생명을 말합니다. 열매의 씨가 땅에 떨어져 또 많은 열매를 맺듯이 교회는 계속 수많은 영혼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주소 예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소를 두는 자를 사랑하시며 예수 안에 자기 주소가 요동치 아니하는 자는 주님도 그의 주소를 자기에게서 영원히 옮기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자기의 신령한 주소가 없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떠난 죄악 때문인 것입니다. 바싹 마른 가지는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리듯이 예수를 떠난 자는 영원한 지옥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악착같이 영원한 생명의 공급자인 예수에게 붙어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믿음도 없고, 신앙도 없고, 성령도 없고, 생명도 없고, 진리도 없습니다. 교회는 와서 앉아 있지만 종교생활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무가 살기위해 뿌리에서 진액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에게 붙어 있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예수로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의 주소가 아닙니다. 이곳은 사라지고 없어질 곳입니다. 육체 또한 우리의 주소가 아닙니다. 이 육체는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자기의 영원한 주소를 삼는 자는 세상에 주소가 없다고 슬퍼하지 않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예수 안에 우리의 주소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아들의 생애이며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