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3:16~2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이 가지신 최고의 자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생명이 있고 영원히 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생명이 약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요12:5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곧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짓지 말라, 멸망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영원히 멸망할 자를 살리고자 하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우리가 가진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이 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재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공급받아야 합니다. 밥을 먹어야 육체가 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우리의 영혼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모두 단 한 사람도 편벽됨 없이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천지만물 속에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바로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의 문제, 저주의 문제, 인간이 가진 모든 고통과 고난의 문제를 담당하시고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어주심으로 죽음의 값을 지불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영육간으로 주신 축복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가지신 인격의 축소판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지정의와 희노애락을 느끼는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서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려 먹고 마시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은, 육체가 있는 동안은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영육간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만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주시고 그 아들로 주신 구원의 은총과 영육간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자기의 영혼이 영원히 사는 축복을 소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산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육체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서 살고 있으나 영혼은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이신 예수
이미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순간, 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 신앙양심의 발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2절에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가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그들에게 예수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안에 생명이 넘치는 자는 죽어가는 이웃을 바라보며 전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무에 핀 꽃을 꺾어 수반에 꽂으면 처음에는 싱싱해 보이지만 수 시간, 길게는 수십 시간 내에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또한 수반에 꽂은 꽃은 절대로 그 나무의 생명인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겉에서 보면 꽃에서 열매가 맺는 것 같지만 실상은 뿌리에서부터 진액을 공급받아 열매를 내는 것이기에 열매는 뿌리에서 맺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어디서 옵니까? 생명의 뿌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 생명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수반에 꽂은 꽃과 같이 생명 없이 시들어 죽는 순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지만, 생명의 뿌리이신 예수께 붙어 있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의 사랑
기독교인의 영혼 구원의 사랑은 천사라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권리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실천을 영혼 구원으로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제를 해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쳐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세상 지식을 갖는 것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명예를 갖는 것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교회를 짓고 예배하는 것도 모두가 영혼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기독교인의 모든 행위는 위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며, 아래로 멸망하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사업은 하나님께서 천사에게도, 천지의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하셨으니 영혼 구원의 사업은 천지간에 제일 큰 기업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예수의 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혼 구원의 기업을 주신 것은 천사보다 한 영혼이 큰 것이기에 최고의 위대한 기업을 자기 자녀에게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전도는 이방종교와 같이 사람을 많이 모아 과시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죄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영혼을 살리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사랑은 자기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영혼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전도자가 되자
세상의 사랑은 그 종류가 다양할지라도 인정이나 애정이나 감정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육체라고 하는 한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사랑은 자기 육체와 혈육을 위한 것이며 자기의 육체와 혈육을 사랑하기 위해서 물질과 명예와 부귀영화를 애타게 구하지만 자기의 육체만 낡아져 갈뿐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무덤이 부귀영화를 구하다 간 흔적입니다.
인간의 목숨은 돈보다 부귀영화보다 월등하게 천하에서 가장 큰 것입니다. 가장 큰 자기의 목숨을 투자해서 목숨보다 적은 것, 자기의 목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위해 값진 목숨을 투자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소치며, 최후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이렇게 목숨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지만 목숨보다 더 큰 것이 바로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5-26).
기독교인의 자기 삶의 투자, 곧 자기 목숨의 투자는 인간의 육체의 목숨보다 영원히 큰 영혼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영혼을 사랑하고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여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서 고통당하는 숫자를 줄여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면 당연히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도 영혼을 살리겠다고 하는 진실한 예수의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며, 그 설교를 듣기 위해 앉아있는 사람도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자는 사람을 찾아서 사람을 모으는 자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생명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잔인하게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의 죽음을 대신한 것이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와 같이, 자기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순교를 통해 영혼을 살린 바울과 제자들 같이 어떤 것도 제한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여 멸망하는 영혼을 살려냅시다. 그들을 죄와 저주에서 건져내는 전도자가 됩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7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