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인격적인 감사와 경배

등록날짜 [ 2006-12-12 15:22:28 ]

마태복음 2:1~18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영원히 경배와 감사와 영광을 받으실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영육간의 모든 짐을 해결하셨으니 인류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무한한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육간의 짐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영적으로는 죄 아래서 영원한 저주와 멸망 가운데 지옥 갈 짐, 육적으로는 질병과 저주로 온갖 고통을 당할 짐, 이 짐은 어떤 문명이나 과학이나 물질이나 지식이나 권력이나 그 모든 것을 다 합한다 할지라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는 이천년 전에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짐을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 받은 인간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은 은혜 받은 자로서의 마땅히 행할 바, 신인(神人) 간의 인격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영원히 멸망할 존재입니다(요3:16). 하나님께서는 멸망하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갖은 고난을 받게 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이것이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고난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 고의적으로 육신을 입고 죽으러 오셨으니 천지간에 나를 위해서 대신 죽을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목적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라 하시고 또한 그와 같이 실천하여 인류를 살리셨으니 어찌 그 은혜 앞에 감사하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요1:14)
그가 죽으신 것도 십자가라는 최악의 저주의 형틀에서 최저질의 죄인들과 함께 최고의 고통 속에서 잔인한 저주와 고통을 당하며 죽으셨으니, 이것이 우리 인간의 영과 육의 모든 고난을 담당하신 사건입니다.


성탄을 통한 하나님의 뜻의 성취
성탄은 방종의 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피 흘려 죽으시러 오셨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최악의 지옥의 고통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죽음과 삶이 엇갈리는 교차점인 십자가의 사건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곧 성탄입니다.
성탄은 흰 눈이 와서 좋은 것이 아니요, 휴가를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요, 직장에서 보너스를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나의 지옥 갈 죄로 말미암아 대신 죽으시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해결해 주신 것에 대해 감격하고 감사해야 하는 날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몸부림치며 자신의 고통이 지나가기를 애원했던 아들의 기도를 외면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아들을 죽여서라도 인간을 살리시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그 사랑과 아버지로서의 가슴 절인 그 아픔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버지의 아픔과 그 아들의 고통의 분량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성탄절에 결코 세상 문화에 휩싸여 세상 것으로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난을 대신 받으려고 고의적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성탄은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러 오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아기 예수를 연상해서는 안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살 찢고 피 흘려 신음하시는 그 주님을 나의 심령에 체험으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의 실천을 이루셨기에 인류는 구원을 받았고 그가 부활하셨기에 그는 만왕의 왕이 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역사는 새로운 생명의 창조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한 출발인 것입니다. 이것이 곧 새 길이요, 새 진리요, 새 생명이요,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권리가 부여되는 엄청난 경험이요, 체험이요, 영원한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인격적인 감사와 경배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께 인격적인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과 같이 위선되고 거짓된 외식은 죄악이요, 저주요, 거짓의 아비로부터 나타난 마귀 역사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음모요, 사단적 행위입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2:16).
이처럼 거짓된 외식은 오직 절망적인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경배하려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우리의 경배와 감사는 진정 참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요4:24-25)

우리 기독교는 어떤 의식도 신령과 진실이 빠진 것은 외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자기의 목숨을 던져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은혜 앞에 나도 그 진실의 분량을 가지고 예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수준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평생에 성탄으로 이루어진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그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타락하지 말며 다시는 외식하지 맙시다. 오직 그분의 은혜에 빚진 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참된 성탄의 지식은 주님을 뜨겁게 영접하고, 참된 성탄의 신앙은 주님을 뜨겁게 경배하며, 참된 성탄의 믿음은 주님께 뜨겁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동방의 석학들은 성탄하신 주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부유의 극치를 말함이요, 유향은 영화의 극치를 말함이요, 몰약은 평강의 극치를 말합니다. 동방의 석학들은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대인의 왕인 예수 앞에 이방인으로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으니, 그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빈손으로 맞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시96:6-8)
황금의 부유, 유향의 영화, 몰약의 평강의 극치 속에 우리를 축복하셨으니, 우리는 그분 앞에 황금보다 크고 유향보다 크고 몰약보다 큰,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러 오신 성탄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상의 것으로 주셨으니, 우리도 최상의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최악의 고난을 당하시고 그 고난으로 우리는 최상의 행복을 얻었으니 우리는 최상의 행복을 얻은 분량대로 감사로 예물을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성탄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영원히 누리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 기도합시다
주여, 나의 심령 속에 성탄으로 이루어진 생명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탄이 외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고난을 가슴에 담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1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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