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소망을 둔 자는 영광의 부활에 절대 참여할 수 없어
씨앗이 썩어야 새싹 나듯 주님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할 믿음 가져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전혀 없으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죄에서, 저주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영원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니,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다시 사는 부활의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의로운 분으로서 그토록 잔인하게 죽으심은 자기 목숨을 누구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요, 자기 스스로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17-18). 이와 같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심은 다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능력이자 권리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시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으며,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막10:33-34). 제자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말씀을 듣고 예수를 향해 ‘그리 마옵소서’ 하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예수를 따라다녔으나 이 땅에 예수가 오신 목적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심으로 우리를 성전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직접적으로 혹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자기 자신이 다시 산다는 확신과 보장이 없다면 어떻게 그토록 담대하게 자기가 인류의 대속물로 죽으러 왔노라고, 삼일 만에 살아나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말씀하신 그대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막16:9, 요20:19).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순간에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다시 사는 새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만약 이런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세상이 전혀 모르는,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이 있기에, 영생이 있기에 신앙생활에 희망이 넘치며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핍박당하고 고난당하고 수고하고 충성하는 것이 만약 그분이 죽었다면 누가 보상 하겠습니까? 그분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육신이 끝나고 부활해서 그분을 만날 때 우리가 주를 위해 충성한 만큼 영원한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다시 사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을지라도 이 천 년 전에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정녕 죽으리라고 했던 죽음을 그분이 대신 정녕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을 밑천을 해결하셨으니, 우리는 합법적으로 죽음에서 부활한 자들입니다. 합법적으로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많은 돈을 소유하고 권력과 세도를 부리는 것을 축복으로 알고 있으나 그 육체가 끝나는 순간, 만약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십자가의 피의 공로가 없다면, 그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우리의 썩을 육체가 영원히 변치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그날이 오리니, 정말로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
작은 씨앗 하나를 심으면 그것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나무가 됩니다. 그 나무가 성장하면서 가지가 나오고, 또 그 가지에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나면 드디어 열매를 맺습니다. 처음의 작은 씨앗과는 얼마나 모양이 달라졌습니까?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어 없어지는 것 같더니만 이처럼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말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씨를 뿌렸는데도 싹이 나오지 않는다면 농부가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만약 약속대로 부활하지 못했다면 누가 그를 믿으며 그에게 무슨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의 죽으심으로 내가 죽어야 할 죄가 사라졌고, 그가 내 안에 계심으로 그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니, 그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요, 그의 부활은 나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그 씨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 같이, 우리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 안에서 살 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아들을 씨와 같이 세상에 심으시고 그의 죽으심으로 인해 그 씨에서 수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아셨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아들 예수의 절규를 들으시고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외면하셨습니다.
모든 씨앗은 일단 썩어야 싹이 나오고 새로 나온 싹은 나무와 전혀 다른 형태인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한 영광의 부활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이 확실히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이라고 하는 엄청난 영광을 알기에 자기 앞에 닥쳐오는 어떠한 고난과 환난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기쁨을 나타냈습니다(롬8:17-18).
부활의 영광
성도여, 우리 모두 부활의 법을 믿고 부활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러워하면서 바라만 보는 구경꾼이 되지 말고 드디어 나에게도 부활의 영광이 허락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소유합시다. 그 증거로 성령은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롬8:11).
율법은 죄를 발견케 하고 죄인은 죽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법입니다. 죽어야 한다는 이 법을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고 죽으시는 순간 죽어야 한다는 법도 이루시고 우리가 다시 사는 법도 이루셨으니 우리는 율법 아래서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부활의 영광과 생명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은 부활을 모르기에 부활을 아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죄를 대신해서 죽어주셨으니 그 사실을 믿으라고, 그러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외치며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우리를 향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여,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부활이라고 하는 그 위대한 영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부활의 그날이 현실로 다가올 때까지 육신이 있는 동안 부활의 믿음을 굳게 지킵시다. 이 땅에서 죽는다고 하는 절망이 아니라 인간은 영원히 산다고 하는 부활의 은총을 믿음으로 소유합시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생에 이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음으로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갖기를 열망하는 이들이 그 부활의 영광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가 주님이 강림하시는 그 날, 부활에 참여해야 합니다. 땅에 소망을 두는 자는 롯의 처가 소금기둥이 되듯 절대 부활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닫아 놓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열린 이 부활의 은총이 모든 성도에게 충만하여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의 나라로, 영광의 나라로 함께 갑시다. 할렐루야!!
■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에게 권세 있는 부활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능력 있는 부활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
위 글은 교회신문 <15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