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 일하시게 할 믿음을 가져야
누가복음 7장 1~10절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
말씀이 곧 하나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무형상이시나 존재이시며 인격을 가지고 자유하게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세상은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을 볼 수 없으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독생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셔서 말씀대로 사셨으니, 예수의 움직임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움직임이요, 예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라고 요한복음 12장 49~5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셔서 말씀대로 사셨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성경을 통해서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성령으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을 듣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우리를 움직이게 해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세계를 지으시고 그 말씀으로 세계를 움직여 가십니다. 작은 꽃 한 송이도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내면서 저물었다가 다시 이듬해에 피어납니다. 왜 이렇게 움직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심으로 사는 영, 곧 움직이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은 전부가 움직입니다.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운동력 있는 그 말씀으로 “귀신아, 나가라”고 명령할 때 귀신이 움직이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도록 충성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면서 질병도 귀신도 저주도 가난도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실 때 움직이고 떠나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한 가정의 부부도 에베소서 5장 24~25절에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대로 질서가 움직여 가면 그 가정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충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순간 생명의 공급이 중단되어 그는 결국 정녕 죽으리라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때 하신 말씀이라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13:8).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은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고,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며, 말씀으로 자연 질서를 유지시키기도 하십니다. 살아있는 말씀 앞에 그 어떤 것도 말씀대로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지전능하시기에 모르는 것이 없으시고 못할 것도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하신 말씀은 자기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 말씀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 말씀 속에는 믿는 자들에게 이루실 약속이 있으며 믿는 자에게 주실 응답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미쁘시기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일하시게 할 믿음을 가져야
본문의 백부장은 자기가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된 모습을 보고 백부장이라고 하는 힘과 권위가 질병 앞에는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 전능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진실한 장로 몇을 예수 그리스도께 보내어 죽어가는 자기 종을 살려 줄 것을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지런히 백부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실 때에 백부장이 생각하기를,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수고롭게 자신의 집에까지 오시게 할 필요가 없다 하고, 몇 명의 벗을 다시 주님께 보냈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내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 알았나이다”라고 하면서 그저 주님께서 어디서나 말씀만 하시면 자기 하인이 즉시 나을 것이라며 말씀만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그런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는 순간에 백부장의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눅7:10).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믿음으로 듣는 자에게는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현재성 있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어디서든 말씀만 하시면 능히 자신의 하인의 병을 고칠 것이라는 백부장의 믿음처럼,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마다 현장에서 이적이 나타날 만큼 주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향하여 현장에서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실 때에 중풍병자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침상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말씀대로 된다고 하는 믿음, 주님을 전능하신 분이라고 인정하는 그 믿음처럼, 설교 말씀을 듣는 순간 그 말씀대로 자신의 문제는 해결되며 자유함을 얻는다고 인정하는 자에게는 누구라도 현장에서 이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막2:11~12).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되리라고 믿고 움직여야만 그 말씀으로 인한 전능하신 능력의 결과가 자기 소유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본질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 없이 움직이는 자는 자기 자신의 신념(信念)일 뿐이나 주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자는 주님의 말씀의 내용대로 이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시오, 하나님 말씀 자체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니 우리는 어디를 가도 그 말씀으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 내 이름으로 병을 고쳐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하라”고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주님을 인정하며 사용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움직이는 것은 곧 주님을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소유자를 자를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고통을 몰아내고 축복을 소유하길 바랍니다.
이 시간 축복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라며 축복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삶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기도합시다
주여, 나에게도 백부장과 같이 주님을 인정할 만한 믿음을 주셔서 위대한 이적을 몸소 체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나에게 말씀이 일하시게 할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위 글은 교회신문 <17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