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6-28 23:32:51 ]
누가복음 17장 11~19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1~19)
영육 간의 문제 해결하신 예수의 사랑
그 사랑에 맞는 최고의 감사를 드려야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인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사랑하시는 데 아무것도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하나님이 만든 사람이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위해서는 천지 만물을 주셨고, 영혼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요3: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 인간에게 당연히 영광과 감사를 받으실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큰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여지없이 저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인간이 저지른 영원히 멸망할 큰 죄이며, 은혜 입은 자로서 감히 행할 수 없는 무인격적인 소치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죄는 경중(輕重) 없이 저주요, 죽음이요,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영육 간에 당할 저주와 죽음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해결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절정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라면 아무라도, 어떤 문제라도 무제한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가 섬길 단 한 분 구세주요, 영육 간에 살아갈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한 문둥병자의 감사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멀리서 보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왜 그럴까요? 문둥병은 예나 지금이나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고 온갖 고통을 당하게 하는 아주 고약한 병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해결할 기회를 잡고자 필사적으로 외쳐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질병을 해결하고자 하는 절규의 몸부림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너희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의 상황으로 해석하자면, 병들었던 사람이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고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시대에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은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이 다 나았다는 증서를 써주어야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열 명이 예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다가 보니 어느새 자기들의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때 그 열 문둥병자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인간의 언어로서는 가히 그들의 기쁨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요, 다만 고침받은 그 당사자들만이 알 것입니다. 열 문둥병자가 예수를 만나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자기들이 앓던 문둥병이라는 숙명적인 고통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 열 명 중에서 한 명이 그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문둥병이라는 엄청난 고통에서 치료해 주신 예수께 감사하고자 하여 가던 길을 되돌아 예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를 고쳐주시려고 예수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큰 소리로 감사와 영광을 올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엎드려 사례하며 진실한 감사를 올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 즉 이방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나머지 아홉 명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어보신 것이 아닙니다. 열 사람 모두가 다 똑같은 치료의 은혜를 받았는데, 왜 한 사람만 감사하러 왔느냐는 말씀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은혜를 베푸셨으니 당연히 감사를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진 자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로 그 불가능을 해결하되, 그 받은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로 화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러스트/박철호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 아담을 피조물 중 가장 으뜸가는 존재, 즉 영적인 존재로 지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게 하시고 천지 만물을 임의로 소유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며 사용하도록 최고의 축복의 권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큰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하여 마귀 말을 듣고 하나님을 저버림으로 죄 아래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자요, 영원히 영육 간에 멸망할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 하나님께 배은망덕하고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말을 듣고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인간이 영육 간에 멸망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인간의 죄를 단번에 갚아 주신 것입니다.
이 큰 은혜는 육신을 위해 천지 만물을 주신 은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 같이 미천한 자를 살리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신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주신 것은 최절정의 은혜요, 최절정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로 주신 은혜를 망각하면 더 이상 다른 은혜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도 감사가 없다면 어찌 사람이요, 어찌 인간이라 하겠습니까.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크든 작든, 우리에게 든 병이 중하든 가볍든, 우리가 받는 저주가 참혹하든 덜 참혹하든, 우리가 가진 문제 해결이 어렵든 쉽든, 세상 과학 문명에 버림받은 어떠한 불가능이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 육체로 담당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육 간 고통을 친히 자기 육체로 다 짊어지셨으니 우리는 평생에 감사할 일뿐입니다(벧전2:24, 갈3:13, 사53:5~6). 예수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육체의 고난을 지불하고 죽으셔서 살려주신 은혜를 입고도 오히려 주님의 큰 고난으로 베푸신 은혜를 무시한다면 다른 은혜는 또 없으니, 주님의 은혜를 무시한 자는 전혀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히10:26~29).
죄 사함 받고도 감사하지 아니하면, 주님은 본문과 같이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시며 실망하십니다. 영육 간에 주님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면 주님은 실망하십니다.
주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믿음이요, 예배요, 신앙생활이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은혜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배은망덕하는 자는 배신자요, 배신자는 믿음도 없고 감사도 없는 자요, 믿음 없고 감사가 없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큰 은혜를 무시하였으므로 영원히 멸망할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 찢고 피 흘려 죽기까지 진실하게 은혜 베풀어 생명 주셨으니, 우리도 내 생애 동안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 베푸신 주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니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보전되어 불가능도, 저주도, 질병도, 죽음도 다 주님의 은혜로 파괴하고, 영육 간에 땅에서 하늘에서 영원히 행복과 자유를 누립시다. 그리고 행복과 자유를 누리게 하심에 영원히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 기도합시다
"주여, 그동안 감사하지 못한 나를 용서해주세요. 이제는 감사로 돌아와서 주님 앞에 사례하며 경배할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 없이 입게 도와주시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19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