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9-07 21:19:56 ]
누가복음 7장 40~4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회개는 인간이 주께 드리는 최상의 표현
십자가 지신 예수 바라보며 의리 지켜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받을 만한 사람에게 언제나 사랑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려 해도 사랑을 받지 아니한다면 그 사랑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사랑을 눈으로 친히 보여주셨으니 그 사랑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 계획대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뜨겁게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시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이 꺼리고 외면하는 창기와 세리를 비롯한 수많은 죄인을 가까이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어 살리러 오셨습니다. 또 불가능에 매여 어찌할 수 없이 고통당하는 자들을 찾아 그 고통의 현장을 정지시키고 고통에서 당장 해방하러 오셨습니다(요5:2, 5:5-9).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영육 간의 고통을 현장에서 당장 해결해서 평안과 행복을 주고 절망의 지옥에서 구원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자의 구세주이십니다.
죄 많은 곳에 더욱 넘치는 은혜
본문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 집에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서 대접받으시면서 잡수실 때에 한 여인이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자기 머리털로 발을 씻고 입을 맞추며 그 향유를 발에 부었습니다. 그 여인은 죄인 중의 죄인인지라 사람들이 상종치 아니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동네 바리새인들이 그 여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청해서 대접한 바리새인도 속으로 ‘저 여자가 죄인인 것을 예수도 선지자이니 다 알고 있을 텐데 어찌하여 저 여자의 하는 일을 그냥 보고만 있는가’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 사람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눅7:41~42).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자가 각각 탕감을 받으면 누가 더 탕감한 자를 사랑하겠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그 바리새인은 많이 탕감받은 자가 더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죄를 많이 지어 사람으로부터 무시와 멸시를 받는 그 여인의 죄를 단번에 해결하여 주시면서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7:44~48).
많은 죄를 사함받은 자가 그 죄를 사하여준 주님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회개는 신앙양심의 표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대로 지음받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이름을 기업으로 주셨으니 우리 인간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무엇이든 그 이름으로 구하여 얻는 권리를 받은 자며(막16:17~18, 요14:13~14),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절대 권리도 받았습니다(요1:12).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거하며 살게 하신 은혜는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요14:1~3).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같은 큰 은혜,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것은 죄 아래서 영원히 멸망할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대신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그 공로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저버리는 자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거할 수도 없으며, 지옥에 가서 영원히 불타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저주와 수모와 아픔과 고통입니다(사53:5~6). 그러나 이것이 인간을 죄에서 지옥에서 구원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한다면 내 죗값을 갚기 위해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의 현장을 봐야 합니다. 인간이 지은 영원히 멸망할 죄를 십자가의 고통과 맞바꾸려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얼룩진 십자가를 확실히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육간의 멸망의 원인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맞이한 죽음과 인간의 죄가 동격이라는 것을 알고 죄를 내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아픔만큼 확실한 회개라는 대전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구원받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신앙양심상 최상의 표현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기 위하여 죄를 내어놓는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전혀 상관없이 자기 혼자 죄를 내놓는 자책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그 숱한 고통 속에 피 흘려 죽으시는 십자가 앞에서 피 눈물로 죄를 쏟아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는 세상이 말하는 도덕적 수준의 회개도 아니요, 자기 양심의 가책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담당하고 대신 죽으신 그 피 앞에 견딜 수 없는 신앙양심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와 아무 상관 없는 도덕적인 회개를 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고침으로써 자기 자신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적 타락에서 나와 자기 양심을 떳떳하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하는 신앙양심의 회개는 하나님이 내 죄 때문에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의 분량을 넉넉히 알고 내 영혼을 죄에서 지옥에서 영원히 구원하는 것입니다.
일러스트/박철호
회개는 영원히 살고자 하는 열망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입니다(요1:14).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실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죄인이나 불가능을 가진 모든 사람이 임의로 자유하게 접근하여 은혜을 입을 수 있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죄인을 상대하시고, 불가능에 매여 고통당하는 자를 현장에서 도와 해결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사신 공생애의 첫 음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습니다(마4:17).
회개는 살려는 의지요, 천국을 소유하며 영원히 살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또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요구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회개하는 자들에게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강력히 요구하기에 죄 사함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소유한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소유한 자는 죄에서 영원히 자유한 자이며, 죄에서 자유한 자는 목숨을 주신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감사합니다. 또 주님 앞에 겸손하여 주님을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자의 양심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양심은 자기 옥합의 향유를 주님 발 앞에 놓고 머리털로 씻는 여인처럼 감사의 고백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회개합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요구합시다. 십자가 고통의 대가로 나의 죄를 씻고, 나의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과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충성함으로 나를 주께 드립시다.
■ 기도합시다
"주여, 십자가의 피 앞에, 내 죄를 담당하신 그 모습 앞에 진정한 회개로 나아감으로써 신앙의 전환점을 이루게 하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20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