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5-19 09:43:12 ]
참된 행복의 첫째 조건은 오로지 ‘예수’
영원히 보장된 축복으로 화목한 가정을
사도행전 16장 31~32절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하나님은 제한 없는 복을 가진 영원한 부자요, 행복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에는 목숨을 유지하고 살아가기에 충분한 천지만물을 주시고, 영혼에는 영원히 살아갈 하나님의 말씀과 영원한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영육 간의 모든 복을 제한 없이 주신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것은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는 복 중의 복이요, 영원히 제한 없는 최상의 복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가정은 영육 간에 영원히 누릴 영생과 천국이라는 영원히 쇠하지 아니하는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이스라엘을 얻은 야곱의 승리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로 더불어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냥 쉽게 낳은 아들이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이삭이 자라면서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고, 그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삽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복을 받았습니다. 후에 리브가와 결혼하였는데, 아기가 없자 이삭이 기도하여 아기를 가졌는데, 쌍둥이였습니다.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뱃속에 두 민족이 있다. 앞으로 작은 자가 큰 자가 되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리브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달이 차서 아기가 나오는데, 에서가 먼저 나오고, 야곱이 뒤에서 자기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옵니다. 어쨌거나 에서가 먼저 나왔으니 형입니다.
에서는 자라서 활을 잡고 칼을 쓰는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 성격으로 집안에 머물며 어머니를 돕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형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데, 야곱이 밖에서 팥죽을 쑤고 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던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을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장자의 복을 사모했던 야곱은 ‘기회는 이때다’라며 대범하게도 “형의 장자권을 내게 주면 팥죽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농담으로 여긴 에서는 흔쾌히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소홀히 여긴 에서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6~17).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며, 야곱과 같이 사모함을 갖고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중단 없는 복을 받으려고 갈망했던 야곱은 결국 그 복을 받아내려고 별미를 준비하고 형 에서로 변장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이삭에게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어이 받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형의 분노가 두려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피신했습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살면서 큰 재물을 모아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습니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에서는 아직도 복을 빼앗긴 분노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 받은 자를 절대로 해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야곱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자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이름, 축복의 이름, 이스라엘이라는 그 이름으로 야곱의 후손이 지금도 저 중동 지역에서 승리자로 복되게 살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께 복 받은 조상은 후손에게도 그 승리의 복이 그대로 내려갑니다(신30:19~20).
일러스트 / 박철호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큰 복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영육 간에 수없이 괴롭히는 죄와 저주와 질병과 죽음과 지옥을 파괴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또 영육 간에 제한 없는 자유와 평안과 영생과 천국을 인간에게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있어 복 중의 복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부를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최상의 기업입니다(막9:23).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해주셨으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의 권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예수께서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로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기업주인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 이름으로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벌떡 일으키고 유유히 걷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일을 기이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라고 당당히 외쳤습니다(행3:11~16).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천하에 아무도 줄 수 없는 복을 언제 어디서나 제한 없이 공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예수 믿는 부모 자식이 있다면 그를 통해서 천대의 복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주신 복은 금세와 내세에 영원히 줄 수 있는 복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여 나이 먹어 죽을 때에도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가려 합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기의 명예와 부유를 자손에게 상속하여 그 자식이 잘살기를 바랍니다. 이같이 육신의 것이라도 땀 흘리고 몸 바쳐 수고하여 얻은 것을 한 가지라도 자식에게 더 남겨주려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자기 인생을 다 바치면서도 더 못 줘서 못내 아쉬워하며 눈을 감습니다. 예수를 믿는 부모는 그 이상의 것, 곧 영원히 사는 영생을 유업으로 주려 합니다. 이것이 곧 신령한 복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부모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하는 믿음과 불가능이 없는 믿음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가족사랑은 영혼구원부터가 시작
예수를 믿는 부모의 자식은 신령하고 영원한 생명의 복을 받기로 작정하고 태어난 자녀입니다. 참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같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또 영원히 불타는 지옥의 고통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복된 자녀라면 자기를 죽을 뻔하고 낳아서 평생토록 키워주고 교육하고 자기 인생을 다 쏟아 키워준 부모가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 참된 효도입니다. 내 부모가 구원주이신 예수를 몰라 저 영원한 고통의 현장인 지옥에 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수를 전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불효는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자녀에게 예수를 주어야 하고 예수 안 믿는 부모에게도 예수를 주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자녀 사랑, 부모 효도는 없습니다. 부모는 대부분 이 땅에서 자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들에게 반드시 예수를 구원주로 받아들이게 그래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또 자식도 부모가 자기보다 먼저 세상 떠날 것을 알고 부모가 이 땅에 계실 때에 꼭 예수 믿게 함으로써 진정한 효도를 실천하여 부모가 처절한 지옥의 신세를 면하게 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이 원하는 사랑과 효도는 어떠한 것도 아침 이슬처럼 순간에 사라질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는 사랑과 효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일 비참한 자가 구원주 예수가 없어 자기도 멸망하고, 자식도 멸망하고, 부모도 멸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주 예수가 있으니 감사합시다.
그 구원주 예수를 부모와 자식 온 가족이 함께 모시고 영원히 보장된 축복으로 육신의 때와 영혼의 때를 행복하게 사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