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7-20 14:22:31 ]
성령으로 거듭난 자녀는 흔들리지 말고
하늘나라 소망으로 영원한 축복 누려야
로마서 8:12~1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된 인류를 구원할 거룩한 뜻을 정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이 정하신 그 뜻을 이루어 인류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인간이 당해야 할 최악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게 하시고, 인간을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원한 고통의 지옥에서 해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이 같은 엄청난 축복의 기업을 주셨으니, 곧 계획하신 뜻을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신 것입니다. 그 시행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인류 구원의 대사건은 이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기에 현재는 알 자도 없고, 현 세대 중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할지라도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정욕적이고 이기주의가 편만한 시대에 누가 그 일을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한 사람도 죄와 저주로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신 인류 구원의 역사를 성령을 통해서 인간에게 전하시고 체험케 하셔서 이를 확증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뜻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豫言)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그리고 그 예언하신 내용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천하셨으며, 또 성령으로 직접 전하셨습니다(행1:8).
이같이 멸망하는 인간을 위한 최대의 희소식을 성경으로 알게 하시고, 설교를 통해 우리의 영혼 깊숙이 성령으로 소유케 하셨습니다. 곧 경험의 믿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속에는 나를 구원하시려 고통당하신 십자가의 죽음, 곧 하나님 아들이 당하신 수난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영으로 보내셔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성령으로 거듭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이 엄청난 은혜를 무엇으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후사가 됨에 감사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단적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으니 백번 죽어 마땅하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께 양육받을 권리가 있고 아버지는 자기 자녀가 된 인간을 책임지고 양육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4~16).
일러스트 / 박철호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이어 성령으로 인류 구원의 뜻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후사(後嗣)가 되게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도 얻게 하셨습니다(롬8:17). 이 엄청난 은혜를 무엇으로 감당하고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알고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으로 사역하는 후사, 은혜 받은 자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로 이루신 이 엄청나고 위대한 인류 구원의 뜻대로 구원받은 사람은 인류 역사상 영원히 쇠하지 아니하는 최고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예배하는 우리가 바로 그 축복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입은 우리에게서 ‘내 평생 주님께 감사하며 살리라’는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넘쳐나야 합니다. 천지간에 이보다 더 큰 수확,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 구원의 주여,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영원히 받으시옵소서’ 하는 고백이 넘쳐날 뿐입니다.
예수로 영원한 자유를 누려야
우리는 무엇에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좌절할 만한 사건이 있거든 당신의 좌절을 담당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병들어 고통 중에 있는 자도, 온갖 가난에 얽매인 자도, 모든 환경이 묶여 있는 자도, 죄와 저주로 무너져가는 자도, 마귀 사단 귀신 역사에 묶여 사로잡혀 있는 자도, 세상 의학 문명에 버림받은 자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당신의 문제를 이천 년 전에 이미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계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령으로 당신의 고통을 확실하게 파괴하고 도우실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만이 당신의 수많은 고통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책임을 다하실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와 저주로 말미암아 당신의 영혼이 당하는 고통과 당신의 육체로 나타나는 질병과 당신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는 세상 아무라도, 부모라도, 자식이라도 대신 짊어질 수 없습니다. 또 마귀 사단 귀신의 역사로 오는 초자연적인 영적 문제 역시 인간의 어떠한 수단으로도 대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로만 절대적으로 그것들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 ‘구원주와 구원받는 자’라는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의 불가능의 문제를 상달하여 아버지에게서 자녀의 문제를 해결 받는 너무도 당연한 천륜적 행위요, 언제나 응답으로 나타날 기업입니다. 우리는 이같이 하나님과 부자(父子) 관계가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2~2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 아버지의 후사(後嗣)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의 사역을 제자들 곧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요14:12). 바로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행1:8).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시작한 것 같이, 오늘날에도 성령이 충만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인류 구원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사용합니다. 자기 시간을 사용합니다. 자기 물질을 사용합니다. 자기 지식과 자기 지혜를 사용합니다.
또 성령이 충만한 자는 예수로 구원받고, 예수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로 성령 받고,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재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후사(後嗣)로서 영원한 기업주가 된 것을 감사합시다. 또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맡은 사역에 감사합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