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믿음으로 구하라

등록날짜 [ 2011-08-16 13:12:15 ]

기도는 불가능을 하나님께 해결받는 유일한 수단
죄에서 오는 온갖 고통을 예수 이름으로 이겨야

야고보서 1장 5~8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인 우리 인간을 도와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하나님은 편벽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려고 “구하라” 하신 약속을 알고 믿고 구하는 자에게는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어김없이 응답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수많은 불가능을 ‘기도’라고 하는 수레에 실어 하나님께 운반하여 상달(上達)하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도라는 채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수많은 불가능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까닭입니다.
또 기도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했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어서 ‘아무나 기도한다고 되겠느냐’며 자기 스스로 기도 응답으로 살아야 할 축복의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지에서 오는 너무도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회개가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주고받는 직접적인 대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었고, 기도로써 허용되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죗값으로 멸망할 절망 속에 있는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회개하라 하셨으니, 인간의 첫 기도가 바로 회개입니다(마4:17). 죄는 마귀에게서 왔고, 그 죗값으로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사망이 오고, 종국에는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해집니다. 인간이 당하는 모든 불가능과 불행은 마귀에게서 죄를 도입한 순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영육 간의 불행을 해결할 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돈으로도, 명예로도, 권세로도, 윤리.도덕으로도, 박애주의로도 전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와서 “회개하라” 선포하심은 인간이 영육 간에 당할 모든 고통을 해결하실 하나님의 개입을 알리신 것입니다.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종의 형체로 오셔서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근본 하나님이신 분이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셔서 해결했을지라도 각자 자신의 죄를 그 십자가 앞에 내놓는 회개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회개는 나의 죄를 짊어지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죄에서 해방되어 영육 간에 자유를 누리는 절대적 경험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중대사가 고통을 가하는 데도 스스로 해결하려 몸부림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자기 중대사를 내놓고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자에게는 예수께서 “내 이름으로 구하라 시행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자기가 약속한 범위 안에 있는 자, 곧 기도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응답하실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기도하셨다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에 자신의 중대사를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시는 고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신데, 굳이 절규하면서까지 기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기도는, 자신의 불가능을 하나님께 상달해 해결 받는 오직 하나의 채널로서, 곧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단일 창구입니다.

기도는 무엇을 구하든지 절대 자유가 있고, 제한이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영적인 것이나 육적인 것이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정욕은 버려야 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2~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해, 자기 환경의 변화를 위해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한 것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은 구하면 준다고 약속하신, 기도에 응답할 절대자를 믿지 않는 행위입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의 불가능을 능히 해결하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아버지께 기도로 맡기는 순간 나의 책임은 사라집니다. 이제 기도로 나의 고통을 들으사 하나님께서 해결하고 응답하실 차례인 것입니다(약1:5~7).

마귀와 죄로 말미암아 영육 간에 수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구하지 않는 것은, 구하면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소치입니다. 또 구하지 않는 것도 구하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며, ‘내가 구한다고 해서 네가 응답하겠느냐’ 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하나님 앞에 교만 중의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곧 불신앙과도 같습니다.

최상의 기도는 오직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원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에게 주신 사명대로 죽도록 충성하여 영혼의 때에 주와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상급입니다(계2:10, 고전4:1~2). 또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마귀는 택한 자라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쉼 없이 유혹합니다. 밤낮 쉬지 않고 해치려는 악한 원수를 이기는 능력은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벧전5:8~9, 딤전4:1~2, 벧전4:7).

천국 갈 때까지 해야 할 기도
우리가 빌 바를 무엇인지 모를 때에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롬8:26~27). 그러므로 성령으로 기도하고(유20), 기도하게 하신 성령으로 날마다 충만해야 합니다. 육의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지요, 교만이요, 사망에 이르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8:5~9).

악한 마귀는 육신의 정욕을 이용하여 사망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생각으로 기도하여 영원히 평안을 누릴 생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죄에서 오는 온갖 고통을 해결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의 불행한 환경을 행복한 것으로 바꾸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충성과 전도와 순종과 섬김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영을 이기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 기도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지옥의 신세를 면하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 그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살전5:17). 쉬지 말고 숨을 쉬어야 살듯, 쉬지 말고 기도해야 중단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중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원수를 이기고, 그 나라에 임할 때까지 기도로 승리해야 합니다.
이 땅에 마귀가 존재하는 한, 불행이 존재하는 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응답을 자원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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