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2-20 17:10:24 ]
예수 탄생은 온 인류에게 최고 기쁜 소식
죄와 저주, 질병에서 자유해졌음을 알려야
마태복음 1장 18~25절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하나님은 죄를 지어 그 죗값으로 지옥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신을 입혀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히 형벌 받는 원칙을 피할 수 없는 잔인한 파멸의 자원(資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누구라도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과 멸망의 현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영적 현실을 실제 사실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죄인으로서 죗값의 요구에 의하여 최후에 당해야 하는 절망적인 영적 사정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 푹 빠진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지식만 있으면, 권력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 가졌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멸망하게 하고 도적질하고 죽이는 마귀 사단 귀신의 역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요10:10). 그것이 영육 간에 사는 길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죄 아래서 영원히 피치 못할 절망적인 지옥의 고통이 곧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일생 사는 동안 그 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세월만 가면 그 죄가 없어지는 줄 압니다.
그러나 죄는 절대로 자연적으로 소멸하지 않습니다. 큰 죄든 작은 죄든 죗값은 경중 없이 사망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태어나서 살다 죽고, 또 설령 안다 할지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냥 속수무책으로 살다가 멸망으로 끌려갑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운명입니까?
영원한 행복의 기업, 예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멸망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에게 멸망할 죄에서 나와 영원히 행복할 권리를 누릴 기업을 주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3:16, 벧후3:8~1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서 죄를 없애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니, 흥분 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8~13).
이처럼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죄 때문에 모두 지옥으로 가야 할 인간들을 위해 피 흘려서 죄를 사하시고, 이 사실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충만케 하여 거룩하다 인치시고, 그들을 마지막 때 신부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또 그의 이름을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죽이는 죄가 있느냐, 죄 사함 받아라. 너희를 죽이고 도둑질하고 멸망하게 하는 마귀역사가 있느냐, 내쫓아라. 너희에게 질병이 있느냐, 고쳐라.”
이처럼 신랑은 자기 신부에게 아낌없이 다 주기를 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힘을 합해도 할 수 없는 일을 신랑이 주는 그의 이름으로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 예수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습니다(사7:14). ‘임마누엘’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살 자격이 있습니다. 죄인은 누구든지 예수 만날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의 피 공로를 만나서 그의 피로 속죄함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가 죽으심으로 내 죄를 갚았으니 나는 자유할 자격이 있습니다.
성탄의 목적을 모르는 인류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聖誕)은 온 인류에게 들려진 최고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과 함께하심은 죄인에게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하심입니다(막10:45).
일러스트 / 박철호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신 목적은 누구든지 죄를 가지고 나와서 살기를 원하는 자에게 자기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시고 그를 구원하려 하심입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셔서 죗값으로 당할 인간의 영원한 고통을 해결해주시고 임마누엘 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려 하신 것이니, 어찌 그 감사를 인간의 말로나 힘으로나 재물로나 목숨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성탄은 우리에게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계심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소경을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시며 영육 간에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심이니 우리는 실로 감개무량하여 그분을 최고로 영접하고 그분께 최상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구세주를 알지 못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잔인하게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오히려 그것이 우리와 함께하신 임마누엘의 은혜요, 영원한 죄와 저주와 질병을 담당하신 사역입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가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2~24)
이런 사랑을 받은 자가 신랑 되신 주님 앞에 아까운 것이 있겠습니까? 이는 성령으로 증거 되고, 성령으로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 곧 우리가 가진 경험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사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고난당하시고 죄와 저주와 질병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셨건만 오히려 예수를 떠나 성탄을 방종의 날로, 육체의 방탕의 날로 일삼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멸망으로 치달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영원히 멸망할 자와 저주로 갖은 고통을 당하는 자와 질병으로 육체의 최후를 맞이하는 자와 함께하며 인간이 가진 영육 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는데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방탕과 타락에서 돌이키자
성탄절에 오히려 성탄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하여 우리 인간을 살리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잔인하게 학대하고 있으니 이 같은 교만과 무지와 방탕을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셨건만 세상은 구세주를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탄을 교묘하게 방탕과 타락의 날로 만들어서 구세주 예수를 무시하고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알고 임마누엘 하셔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며 죄와 저주와 질병에서 구원하시는 대작업을 시행하시려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영원히 예수로, 임마누엘로 역사하실 것을 믿으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최상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