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예수의 수난으로 주신 은혜

등록날짜 [ 2011-12-27 13:47:48 ]

예수는 인간이 당할 고난을 담당하러 이 세상에 오셔
감당 못할 은혜 입은 자라면 그에 합당하게 감사해야

이사야 53장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나 인격(人格)을 지닌 분명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인격이며 존재임을 알리시려고 자기 자신을 말씀으로 나타내셨습니다(요6:53). 하나님의 영과 그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요1:1).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이 되어 자신이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십니다(요1:14; 마1:21~22;사53:5~6).

인간을 저주에 빠뜨린 마귀역사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감사를,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서 천지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 인격을 주시고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서 어떤 피조물보다 탁월하게 하셨습니다. 지구상에 창조된 피조물 중 인간이 가장 복 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른 채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이 어디 있냐?”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것으로 먹고 마시고 살면서, 또 그 자신조차 하나님 것이면서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도록 만들었는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도록 만든 ‘마귀’ 때문입니다.

마귀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기어이 먹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사이를 갈라놓고, 그 결과 죄 가운데서 육체는 땀 흘려야 먹고살게 되었고, 죽은 다음에는 그 죗값으로 지옥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저주 아래 내던진 것이 마귀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옥을 잊어버린 자가 죄짓고, 지옥을 잊어버린 자가 교만하고, 지옥을 잊어버린 자가 남을 저주하고, 지옥을 잊어버린 자가 마귀와 더불어 불의의 병기가 되니,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도 원래는 천사로서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게 지은 피조물이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는 존재인데, 자기도 하나님이 되어 영광을 받아보겠다고 도전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런 마귀에 대해 성경은 마귀를 용서한다거나, 회개하라고 한다거나, 진리의 말씀을 지키라고 한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이미 지옥 보내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듣고 마귀와 더불어 불의의 병기가 되면 마귀와 똑같이 지옥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이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더불어 그 사자들을 위해서 예비된 영영한 불로 들어가라”고 한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육체로 오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시려 자신의 말씀을 친히 육신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이시건만 사람과 같이 육신을 입으시고 오히려 사람 이하의 존재인 것처럼 비천해졌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자신이 저지른 죄인 양 친히 담당하시고 최고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그는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 형제들과 자기 백성이 전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즉 성자(聖子) 하나님이심을 알았더라면 누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셔서 인간이 죽어야 할 죄를 대신 담당하고 해결함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대속물로서 오신 것입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성탄하신 것은 시종(始終) 당하실 고난의 시작이니 곧 인간이 당할 영육 간의 고난을 자기 육체에 몸소 담당하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죽으심이 인간 자신의 잘못으로 당해야 하는 고난의 분량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은 죗값인 고난을 담당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죗값을 대신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염치없는 존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만큼이나 하나님 앞에 애물단지일 뿐입니다.

인간은 육체로 당하는 저주와 질병과 정신적, 환경적, 현실적인 수많은 고통을 스스로 감당할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또 영적으로는 죗값으로 당하는 저 지옥의 형벌을 전혀 견딜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담당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만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난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담당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면 누구든지 죄에서, 마귀 사단 귀신에게서, 질병과 온갖 저주와 고통에서 오는 불행을 예수 그리스도로 다 해결하기를 바라셨습니다(마11:28;요6:38~40).

은혜 앞에 감사로 나아가자
모든 인간을 온갖 방법으로 저주하고 죽이는 사망의 원인인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공로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히9:12). 또 인간이 당하는 고통스러운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고치셨습니다(벧전2:2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出生)은 인간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무시와 멸시와 천대와 심한 매질과 죄의 누명과 십자가의 죽음, 즉 고난으로 시작하여 저주로 마칠 잔인한 생애의 시작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그를 찾고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히 살아야 할 새 생명을 제한 없이 주셨습니다. 이 같은 인간의 구세주인 하나님의 아들을 선지자도 알았고, 천사도 알았고, 마귀도 귀신도 알았으나 자기 백성과 세상은 알지 못하였습니다(마4:1;마8:28~29;요1:10~11).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주시요, 마귀가 역사하는 온갖 고통에서 구원하신 자요, 우리를 영원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놓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녀와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살 신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난 병사와 같이 마귀와 죄와 저주와 질병과 사망과 지옥을 완전무결하게 자기 육체라고 하는 무기로 쳐부숴 파괴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의 대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출현하신 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이 큰 은혜를 입은 우리는 무엇으로 그 공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몸을 드린들, 전 재산을 드린들 하나님 자신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자기 육체로 나의 고난, 나의 고통, 나의 지옥을 담당하신 그 크신 은혜 앞에 표가 나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내 작은 신앙양심을 꺼내 들고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를 찢고 피 흘려 십자가에서 죽으신 큰 은혜에 감사한 분량대로, 자기 자신이 은혜 받은 인격적인 분량대로 마음껏 드려 그분의 성탄을 소유했음을 확인해야겠습니다.

감사는 성탄을 소유한 자의 간증이요, 고백이요, 증거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대속물로 받은 자의 증거요, 죄와 저주와 질병과 사망과 지옥의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결 받은 자들의 신령한 함성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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