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4-17 13:48:18 ]
세상은 불가능한 사건들이 산재해 있는 곳
모든 고통의 문제, 기도로 해결할 수 있어
마가복음 10장 46~52절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인간의 모든 사정을 아시지만 기도라는 채널을 통해서 인간의 어떤 불가능에도 개입하시며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적들의 어떤 돌진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기도로 응답을 끌어내어 하나님을 일하시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기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통로를 열어놓으신 하나님
세상은 과학문명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건들이 산재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이 세상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 때문에 어이없이 좌절하고 처절하게 망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요, 또 해결하실 분도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많은 신 중의 하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다 같다고 말합니다. 또 각자가 다 자신들의 신을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불가능을 해결해 달라고 빌어도 응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하시고 전능하셔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자유롭게 주관하시는 하나님조차도 그렇게 무능한 신으로 잘못 알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사는 것입니다.
또 예수를 믿노라 하는 교인 중에도 하나님을 종교적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어떤 고통이 와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또는 의학이나 과학이라는 인간적인 수단에만 매달리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과학문명이 할 수 없다고 내어버릴 때에 속수무책으로 불가능 앞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도우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의 공생애를 통해 무제한의 능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우실 수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장에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나병환자를 현장에서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중풍병자를 일으켜 걸어가게 하시고, 소경을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걷게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육체로 당하는 모든 고통을 확실하게 해결해주셨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문명이나 현대 의학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의 문제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능히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불가능한 문제로 고통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언제나 도울 의지가 있으니 “너희는 기도만 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기도하는 자의 문제를 해결하여 응답을 주시겠다는 것을 자기 명예를 걸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불가능을 해결하는 능력은 믿음의 기도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불가능의 고통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당신의 고통을 해결해주고 싶으셔서 “내 명예를 가지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나의 크고 작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하나님께 올려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올려 드린 분량만큼 응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또한 응답하실 하나님과 응답받을 인간의 만남의 절정이 기도입니다.
세상의 불가능한 수많은 문제는 마귀 사단 귀신의 역사요, 죄에서 오는 저주요, 질병이요, 사망이요, 그 결과는 영원한 지옥입니다. 이 같은 악한 영적인 문제를 알고, 보고,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수많은 사람이 예수께 간구하여 자기들의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한 가나안 여인은 자기 딸이 귀신들렸을 때, 예수께 간절히 애원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마15:21~28). 나병환자 열 명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인류 역사 속에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눅17:11~14). 물고기 뱃속에서 소화됐어야 할 선지자 요나도 회개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욘2:1~2, 욘2:6~10).
본문에는 바디매오라는 소경이 예수께 큰 소리로 부르짖어 소경의 신세를 면하고 고침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소경이었기에 별다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길바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푼 던지면 그것으로 먹고살던 거지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병자든, 어떤 문제든 만나기만 하면 해결된다더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예수께서 여리고를 지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목청껏 외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어도 소용없습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와 같이 절박하고 간절하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부르짖음에 주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게 해야 합니다.
드디어 예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바디매오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대답하셨고, 바디매오는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실 때 바디매오가 엉뚱한 대답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보지 못함’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방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원수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잡생각으로 유혹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올리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 잡생각을 이겨야 합니다. 오직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실 하나님을 올바로 겨냥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만일 바디매오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그가 과연 볼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가 절박하게 소리친 그 부르짖음은 바로 믿음의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도 부르짖되 믿음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응답이 오도록 부르짖어야 합니다. 바디매오처럼 주님이 들으실 때까지, 응답하실 때까지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가장 소중한 기업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 교회에 명령하신 ‘전 교인 40일 작정 기도 그리고 10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고 약속하신 최고로 기쁜 시간이요, 나의 불가능을 해결하실 하나님께 응답받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 육신의 요구, 육신의 소욕, 육신의 정욕과 세상 풍속, 세상 환경과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무제한 주시려고 하는 기도 응답을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요나가 불순종하여 물고기 뱃속에서 고기밥이 될 뻔했을 때 기도로 그 위기를 모면한 것같이, 우리도 세속적 생각에서 오는 무지로 말미암아 기도 응답이라는 엄청난 기업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나와 내 가족과 나라와 민족에 닥친 위기를 오직 기도로 넘어가야 합니다.
‘40일 그리고 10일’ 동안 꼭 기도하여 현재와 미래에 있을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기업인 기도를 절대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권리를 사용하여 주께서 우리의 불가능에 개입하시게 하고 해결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로 영육 간의 모든 것에서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며 완전한 쉼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5호> 기사입니다.